[호주동아인터뷰] 고직한 선교사 - “한국교회는 작지만 능력 있는 교회 모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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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동아인터뷰] 고직한 선교사 - “한국교회는 작지만 능력 있는 교회 모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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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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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석원 논설위원

김석원 논설위원: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 선교사님은 기존의 대학생사역단체중심의 한국 개신교 청년운동을 교회로 끌고 오신 개척자였는데, 지금까지의 사역을 잠시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고직한 선교사: 저는 한국대학생선교회(IVF)에서 훈련간사, 대표간사로 일하면서 ‘학원복음화’(대학생전도)에 대한 비젼을 품어왔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 중반 학원복음화운동에 원래 일어났던 영어권 나라들과 한국 상황의 차이점을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됬지요. 영미의 대학생전도단체들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캠퍼스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기존 교회 사역과 중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주로 통학생들로 이루어 있어 지역교회와 중복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캠퍼스 사역의 부흥과 지역 청년부의 부흥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만 했습니다.

이 와중에서 1978년경 사랑의교회를 개척하신 옥 한흠목사님께서 성경적 교회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지요. 무형 교회를 더 강조해온 학생단체사역자가 유형 교회, 지역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발견한 것입니다. 특히 그동안 청년사역을 하면서 느껴온 청년사역단체의 (사회적 책임이나 세대차이를 극복하는 교제같은) 공동체의식 부족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중반 동생들이 이민 와 있었던 호주에 유학 올 기회가 있었는데, SMBC(시드니선교성경신학교)에서 성경적 교회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해볼 기회를 가졌고, 이후 사랑의 교회 청년부 사역자로 복귀하면서 청년 스피릿을 진정한 성경적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 사이에서는 너무 청년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많은 청년들이 방치되는 모습을 보고, 교회 밖으로도 눈을 돌려 범교회적으로 ‘선교한국’, ‘학복협(학원복음화협의회)’등을 조직, 청년사역의 붐을 일으켜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개교회 청년부가 바로 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아, 결국 전국 5만교회내 20명에서 80명 사이의 청년부를 가진 일만교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젊은이 사역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고 선교사는 옥한음 목사 정년퇴임과 궤를 같이해, 2년전 그동안 일하던 사랑의 교회를 나와 현재는 신촌의 한 작은 교회를 돕고 있었다. 그는 여러차례 목회안수의 기회가 있었지만, 평신도 전문사역가의 자리를 고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명칭은 아직도 ‘선교사’다)

청년 스피릿을 되살리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릴 것

김 위원: 선교사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가 청년 스피릿을 가져야 한다고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젊음을 우상시하는 현대문화도 기독교인이 경계해야할 문제가 아닐지? 더구나 교회가 모든 세대와 문화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면 이런 강조는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싶은데요?

고 선교사: 제가 말하는 청년 스피릿이란 청년들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생명력, 영적으로는 성령님의 역사가 살아있는 분위기를 가르킵니다. 그런의미에서 반드시 청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요. 청년들은 이상적인 비젼을 제시하면 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쉬운 세대입니다. 사실 신앙이라는 것에는 이런 요소가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요구됩니다. 불행히도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처럼 이미 심각한 ‘조로화’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커지고 자라서 이미 노년기의 피로감이 조직, 사역, 사고방식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청년 스피릿을 되살리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질 것입니다.

실제로도 교회가 청년이란 구룹자체에 대한 강조가 더 필요합니다. 그동안 지역 교회들은 청년들을 '뜨거운 감자'처럼 취급했지요. 일군이 필요하니까 청년부를 두지만, 막상 기회를 주면 교회에서 시비나 걸고, 대안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말만 많은 이상주의자 구룹처럼 인식했습니다. 더구나 교회성장 위주이 문화에서는 청년부사역은 돈만 많이드는 짐 이상이 아니였지요. 청년들의 미성숙한 모습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포기하기엔 교회는 너무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장년부가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자본의 논리’, ‘사역 불특성화’, ‘성공주의 신화’를 극복해야

김 위원: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제 한국교회에서는 청년사역이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많은 능력있는 사역자들이 청년사역을 지망하고, s교회 j 목사같이 청년사역을 대형교회를 이룬 케이스를 널리 홍보되기도 합니다. 청년사역품이 일어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를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고 선교사: 초창기 한국 청년사역은 첫째로 절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했지요. 교회 지도층의 무관심이 심각했습니다. 덕분에 청년사역은 대부분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전도사들이 임시직으로 거쳐가는 자리로 인식되었고, 그나마 청년사역에 꿈이 있는 사람도 이일에 집중하는데 지원을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문제로 이어지는 바로 청년사역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든일이 그렇지만 정말 헌신하는 사람이 없는 분야는 비젼이 없습니다. 비젼이 있어야 헌신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으니 일종의 빈곤의 악순환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세 번째 문제인 청년사역에 필요한 자료나 도구 개발이 미진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선교단체 자료들은 내용이 너무 어려웠고, 다른 여러 가지 업무에 시달리는 청년사역자들에게는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스타 청년목회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젼이 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었지요. 그래서 학복협과 몇몇 기독교 미디어 관계자들과 힘을 모아 몇몇 청년사역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도서출판, 강연기회 부여 같은 집중적인 지원을 해주었지요. 이를 통해 “청년목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지요.

그동안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먼저 많은 지도자들이 청년부를 ‘자본의 논리’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비용에 비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만 너무 집착하지요. 그러나 청년목회는 장기 투자에 속합니다. 당장 결과를 보려고 해서는 안되지요.

청년목회자들의 특성화도 아직 멀었습니다. 당회장에게 너무 집중된 목회문화 때문에, 아직도 지역별, 캠퍼스별, 특성 사역별로 맞는 청년사역을 개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사역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불특정다수를 위한 사역을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또다른 문제는 청년사역을 성공주의 신화가 오염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청년사역자들의 외형적인 성공은 청년사역 지망생들에게 청년사역이 마치 물질로나 명예면에서 성공의 지름길인 것 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나름대로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청년사역이 너무 무너져, 이를 일으키기 위해서 성공사례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동안의 많은 개선에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 ‘사역 불특성화’, ‘성공주의 신화’를 극복하는 숙제가 남아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공동사역은 주최측이 자신을 숨기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김 위원: 고 선교사께서는 청년사역자의 성공주의 신화가 문제라고 지적하셨지만,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큰교회, 외적으로 성공한 청년사역자 외에는 모델로 제시된 청년사역이 없는 형편입니다. 한국교회가 전체적으로 외형적 성장에 집착하는 것도 보다 건강한 작은 교회의 모델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런점에서 학복협등의 스타 사역자 양성 같은 것은 그 자체로 한국교회의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고 선교사: 그런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청년사역 자체가 황무지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특별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조치의 결과를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좀 더 겸손한 자세를 보이지 못한 것도 문제를 악화시켰지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교회는 대교회의 청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체교인의 1-2%도 섬기지 못하는 이 교회들의 사명은 모델의 역할이 아니라 교계를 이끄는 것입니다. 이들 교회가 가진 자금력과 인력으로 다른 교회들을 섬기고 돕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이들은 청년부를 개척한 성공모델이 아니라 잘 관리한 모델들입니다. 개척상황에 있는 일반 교회들의 현실과는 유리되어 있지요. 사실 우리 주위를 보면 보다 건강한 모델을 제시하는 청년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내수동 교회의 경우, 교인 천명에 삼백명 가까이되는 청년부를 20년가까이 어떤 개인 사역자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잘 유지시켰습니다. 대구의 아양동 교회, 답십리의 서문교회 등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이고 내실있는 청년부 사역을 잘 개척해온 경우들이지요.

그래서 젊은이 사역연구소와 기타 청년사역자들은 이제 스타 사역자를 양성하는 것 보다는, 성실한 개척 성공사례를 들을 발굴하는 데 더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청년부 개척에 필요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지요. 여기에 일환으로 최근 몇 년간 ‘에클레시아’라는 청년대학부 연합수련회를 만들어, 군소교회 청년부들이 서로 자원을 나누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김 위원: 물론 그런 개척 사례로 개발해야겠지만, 만일 작은 교회, 작은 청년부들이 대형교회, 대형 청년부 사역을 지향한다면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결국 서로간에 협력 분위기를 만들고 서로 자라는 일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현재 한국에서는 협력과 연합사역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고 선교사: 사실 중소교회는 중소교회는 큰교회가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큰교회는 그룹별, 계층별, 나이별로 구룹이 나뉘어져 서로간에 실제적인 교제가 거의 없지만, 작은교회는 나이, 계층, 남녀에 상관없이 서로 섞이고 실제로 부딪기는 성경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는 사역이나 성공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의식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알고 속했기 때문에 생기는 보다 따뜻한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지지요. 저역시 그런 장점 때문에 작은 교회들에게 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의교회를 나온 뒤에는 대학로에 있는 교회를 섬겼고, 조만간 평촌에 있는 또다른 작은 교회로 가게 되는 것도 다 그런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현실은 무한 경쟁분위기와 한국특유의 ‘흑백논리’ 덕분에 연합이나 협력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좀 더 신경을 쓰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1) 주최측은 자신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2) 일을 별로 놓고 나면 사라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항상 자신이 해 놓은 일들을 계속 손에 쥐고 있다가 보면, 협력사역을 통해 개인이 득을 보고 있다는 오해를 받게 되니까요. 셋째로 3) 사역에 있어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원리를 조화시켜야 합니다. 구심력이 좋은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이라면, 원심력은 좋은 방법들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입니다. 넷째로는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결국 원칙을 놓치면 사역은 장기적으로 자기 붕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적용해 나간다면 결국 단위별 청년부와 전체 기독청년 문화가 서로 윈윈(win-win)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유학생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비젼을 제시해야

김 위원: 시드니에서도 유학생으로 한동안 계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유학기간 중에 많은 청년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거나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제로 교민교회들 중에서는 유학생선교를 모토로 삼는 교회도 있지만, 교민사회가 같이 참여하고 설득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비전을 내어 놓고 있지는 못한 형편입니다. 한국청년운동도 유학생의 역할이 무시못하는 현실에서, 고선교사님은 유학생들의 영적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고 선교사: 예나 지금이나 유학생들은 귀국 후 조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신선한 영적 영향력을 공급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국 교회에 ‘정서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를 주입시키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배워와도 영향력을 미치려면 대상과 공감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해 비판하는 눈만 가지고는 조국 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없으니까요. 이런점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다시금 이런 ‘적응’의 필요성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로 접한 새로운 것들 속에서 배워야 할 원칙과 버려도 되는 방법론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conversion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원칙을 제대로 배운 뒤, 이것을 상황에 맞춰 적용시키는 기술이 있을 때, 유학생들의 외국 경험은 영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직한 선교사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숙제로 ‘청년 스피릿’이 회복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안정과 풍요에 이상을 잃어버리는 조직은 결국, 외부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기 보다는 조직을 유지하는 데 있는 힘을 다 쓸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교회, 청년운동이 좋은 방법, 프로그램을 쫓아다니는 풍토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청년사역자 지망생들에게 보다 철저히 원칙으로 무장하되, ‘아이를 씻은 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는 일’이 없도록 적응성을 길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교회가 조로화 되었다는 지적 앞에서, 어쩌면 한국의 청년조차도 ‘청년 스피릿’이 회복되어야 할 만큼, 전체적으로 닳아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한국 교회의 개혁은 이러한 역동성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는 것, 그 역동성은 진정한 이상을 위해 자기를 포기하는 문화를 만들 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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