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속이 좁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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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속이 좁아서야 되겠는가?
  • 강성봉 기자
  • 승인 2010.12.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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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규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재외동포에 관심이 거의 없을 때인 1960년대부터 동포문제를 연구해온 분이다. 이 전 이사장으로부터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강연을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이 전 이사장은 사할린동포와 관련한 일본정부의 속 좁음을 통박했다. 무슨 말인가?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전후 소련에 할양된 사할린 땅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귀국시키기 위해 일본정부는 소련과 협상을 하게 된다. 1차로 일본인을 귀국시키고, 2차로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을 기족과 함께 귀국시키게 된다.

이 전 이사장이 분노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배로 귀환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승선 기간 동안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 때 일본정부는 일본인 여성과 자식에게는 도시락을 줬지만 조선인 남편에게는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무국적자인 조선인에게까지 밥을 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사태가 외교부가 입법예고한 ‘재외국민보호법’이 확정돼 시행될 경우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외교부가 도렴동 청사에서 개최한 ‘재외국민보호법 제정 공청회’에서 정부가 입법예고할 예정인 재외국민보호법안이 큰 결함을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외교부가 입법예고한 이번 재외국민보호법안은 의원입법안보다 치밀하고 좀 더 포괄적이어서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역시 정부는 다르구나’라는 감탄을 하면서도 재외동포 문제를 다룰 때 그동안 보여온 외교부의 한계가 엿보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필자는 재외동포문제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외교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재외동포를 전담하는 기구를 외교부의 하위에 두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왜냐? 외교부의 공무원들은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훈련받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외교부가 입법예고한 재외국민보호법에도 외교부의 이런 한계가 잘 드러나 있다.

정부의 재외국민보호법안 6조 3항에는 “재외국민으로서 체류국의 국적을 아울러 취득한 자는 이 법률에 의한 체류국 영토상에서의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라고 명문화 돼 있다.

‘재외국민보호법 제정에 관한 정부입장’이란 해설 자료에는 ‘재외국민의 범위문제’라는 단락에서 “이중국적자의 경우 국회안에서는 언급이 없으나 정부안은 보호상에서 제외한다는 점을 명시하였으며 외국의 입법례도 유사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선 이 자료를 받아보고는 이미 복수국적이란 용어가 법제화된 상황에서 해설 자료에 이중국적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도 문제라 생각했지만 ‘복수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은 재외국민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크게 들어 관련 항목을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체류국의 국적을 아울러 취득한 재외국민은 체류국 영토상에서는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점에서 일견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았다. 자칫 우리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지 국적자를 도우려고 할 때 외교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속지주의 국적법을 택한 많은 나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2세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복수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이 경우 부모는 한국 국적자지만 자식은 복수국적을 가지게 된다.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와 화재 붕괴 전쟁 내란 테러 납치 항공기 및 선박 등의 사고가 복수국적자인 자식은 피해 가고 한국국적을 가진 부모에게만 일어날까?

이 경우 현재의 정부안대로 법이 만들어지면 우리 정부는 부모는 구조하고 복수국적을 가진 자식은 구조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체류국의 국적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자식을 구조할 책임은 체류국 정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상황이 마치 사할린의 일본 아내를 따라 가는 조선인 남편에겐 법에 따라 도시락을 주지 않은 협량한 일본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재외동포문제를 다룰 때 외교부는 타국의 입법례와 선진국 사례를 전가의 보도처럼 제시하지만 외교부가 주장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선진국 사례도 있다.

여성으로 콜롬비아 대통령 후보였던 베탕쿠르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서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었는데 프랑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게 7년 가까이 인질로 붙잡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출됐다. 구조되기 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베탕쿠르의 석방 협상에 나선 바 있다.

만약 프랑스법에 ‘체류국의 국적을 아울러 취득한 재외국민은 체류국 영토상에서는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지난 5월 4일 공포된 개정 국적법에 따라 선천적 복수국적자만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복수국적이 허용될 것이다. 올해 국적법을 개정한 취지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많은 사람을 우리 국민으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재외국민보호법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보다 많은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속이 좁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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