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동철 아랍에미리트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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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동철 아랍에미리트 한인회장
  • 이석호 기자
  • 승인 2010.10.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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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상인들과 당당히 겨루고 있지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일컫는 말이 있다. ‘유명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두바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의 인공 섬 ‘팜 아일랜드’, 전 세계 2곳밖에 없다는 7성급 호텔 ‘부르즈 알 아랍’, 높이 828m의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두바이 실내스키장 ‘스키 두바이’ 등.

2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을 앞세워 두바이는 중동의 금융, 관광의 허브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1990년대부터. 셰이크 모하메드 현 국왕이 총지휘자로 등장하면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램프의 요정 지니가 마술을 부리 듯 황량했던 모래평지를 초현대식 건물로 수놓은 것.

이런 두바이의 생성과 발전을 목격한 한상이 있다.

주인공 신동철 아랍에미리트 한인회장을 만난 곳은 지난 1일 ‘두바이 크릭’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한 사무실.

“세계에서 가장 무역을 잘 하는 5대 상인이 있지요. 화상, 인상, 페르시아상, 아랍상, 유태인상인을 말합니다. 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한상(韓商)을 알리고 있지요.”

전통 직물시장 골목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옆에는 나란히 인도, 중국인들이 회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아래에는 수백미터도 넘게 뻗은 텍스타일 시장이 있었다.

인도인들을 비롯해 여러 민족들이 일본어, 중국어를 섞어가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곳이다. 회사 옆 부두에는 우리 돈으로 300원 정도로 건널 수 있는 중국식 통통배가 기다리고 있고, 3분 거리 맞은편에서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금시장 골목이 나란히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87년 선경 종합상사에서 사우디 지사로 먼저 발령을 받았고, 92년 두바이로 오게 됐어요. 요술처럼 변한 두바이지만 제가 일하는 곳의 모습은 예전과 변함이 없지요.”

신 회장이 중동으로 발령받았을 때 선경은 잘 나가는 기업 중 하나였다. 세계에 약 50군데에 지사장을 보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 나름 초고속 승진이었던 것.

하지만 그는 갑자기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당시 한국에 보내는 직물 대부분을 인도인 에이전트가 독점하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은 영어도 그리 능통하지 않고, 거짓말도 솔솔 잘하는 사람이어서 약이 올랐지요. 왜 우리나라가 외국인들을 통해서 거래를 해야만 할까 생각했지요.”

그는 95년 ‘리오 트레이딩’(Rio Trading)을 설립해 성공가두를 달리게 됐다.

평범한 지사장이 96년부터 약 1억 달러를 한국과 거래하는 에이전트로 화려하게 변신하게 됐던 것. 하지만 세계 최고의 상인들이 모두 모였다는 두바이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말로하기 힘들었다고.

“인도 상인들은 빠른 계산, 페르시아상인은 끈질김, 아랍상인은 유연함을 자랑하지요. 그렇다면 한국인으로서 나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는 이후 직물을 ‘중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물건을 직접 사서 한국에 수출하는 유통 사업에 뛰어든다. 회사 이름은 드림 홈 커튼(dream home curtains).

그리고 최근에는 욕심을 더 내 두바이 시내 한복판에 설립한 1004마트를 경영하고 있다.

“두바이는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과 산업이 집결한 곳입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중동과 아프리카를 공략하기 위해 이곳에 대표부를 설립하지요.”

하지만 최근 그의 사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시장과의 싸움이 시장된 것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하는 저는 진짜 프로들만이 뛰는 최고의 경기장에서도 생존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 시장을 뚫었다는 게 가장 큰 긍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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