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글, 한국의 정신이 사라져 가는 한국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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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글, 한국의 정신이 사라져 가는 한국땅
  • 김영자 본지 칼럼니스트
  • 승인 2010.02.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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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칼럼니스트
필자는 한해에 두서너 번씩 한국을 찾는다. 최소한 한해에 두 차례는 내 돈을 들이든 초청을 받든 한국에 가지 않으면 몸 어디엔가 좀이 생기는 듯하다.

해외에서 생활한지 40여년이 넘었건만 날이 갈수록, 늙어갈수록 향수병은 짙어간다.

필자의 방문목적 1위는 한국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다. 별다르게 고급식당을 찾고 싶지도 않다. 길거리에서 호빵(요즘은 녹차 호빵)이 보이면 얼른 쫒아가 사먹는다. 붕어빵도 먹어야 하고 가끔 김밥도 사먹어야 한다.

 독일 제자들과 만나면 그 애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잘 사준다. 맵다고 난리를 부리면서도 이 녀석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나의 한국 알리기는 충분하게 전달이 된다. 음식명칭에서나 한국말이 들린다. 김치, 된장, 두부찌개, 매운탕을 좋아한단다. 쌈장, 불고기, 비빔밥은 맛이 있는데 소주는 싫다고 하네. 녹차, 대추차, 오미자차 등 한국말로 차의 이름도 잘 외운다. 간혹 외래어의 한국어만 안 한다면 대답은 한결같다. “한국인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니 따라하지요.”

그렇지만 가다가 나도 막히는 한국말이 상당하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한국어가 이 녀석들을 통해 ‘영어처럼 들리는’ 외래어로 튀어나올 때이다. 열쇠 어디 있지 하면 “키 찾으세요” 한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어디서 살고 있나 물으면 ‘OOO호스텔’ 또는 ‘인터내셔날하우스’ ‘풀옵션원룸’에 산다고 한다. 영어인가 외래어인가 꼭 틀린다고 꼬집을 수는 없지만 어딘가 씁쓸하게 들린다.

한국인들과 대화를 해본다. 참 희한한 한국말이 많다. 다시 물어봐도 못 알아듣는다. ‘신생 한국어’를 ‘구 한국말’로 번역을 해준다. 친구네가 “리모델링 한 집으로 이사를 했단다.”

우리말에 리모델링에 대처할 단어가 없는가? 현실에 알맞게 ‘개조한 집’ 얼마나 듣기에 좋은가? 평창동사무소가 평창동센터로 변했다. 동사무소에서 센터로 바뀌면서 달라진 내용이 있는가? 정부, 시 기관을 지칭하는 데 구태여 외래어가 등장을 해서 이익이 되는 점은 무엇인가? 세종문화회관이 세종문화센터로 변해야 할 이유를 알려줄 수는 없을까? 질문이 꼬리에서 꼬리를 이어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점심을 먹으러 친구들과 한 식당집을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죄송한데 지금 자리가 없으시거든요”라며 기다리란다. 몇 분 뒤 “자리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로 안내해줬다. 이런 사물존칭어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내국인은 깍듯이 존대말을 하는 직원 때문에 기분이 좋다고 묵인한다. 나 혼자에게만 사물존칭을 쓰는 모습이 거슬렸을까?

한 식당에서 “물 좀 주세요”에 날아온 대답은 “저기서 직접 떠가세요”였다. 무안해서 물을 찾아 갔더니 앞에 붙은 쪽지에 ‘물은 셀프입니다.’ 이런 기가 찬 일을… 이런 말을 감히 적어 붙인 사람들이 한국인, 한국의 얼을 가진 사람일까? 하긴 대통령까지 영어교육에 치중하기 위해 재미 및 재영어권 동포 2세를 한국 청소년교육자로 ‘모시’는데 일반인들이 한국말에 영어 좀 섞어 쓰는 게 뭐 별일이겠냐는 셈이다.

한국의 얼이 아주 사라지기 직전까지 온 국내의 현실이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아파트촌 지역을 지나면서 내가 공책을 꺼내 외래어 아파트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집에 까지 오면서 거짓말 안 하고 100 개쯤 적었다. 최소 일부를 내 ‘카페’에 넣었다. ‘아나벨리스빌’ 누가 알아들을 수 있나? 순수한 우리 글 아파트 명칭인 현대아파트, 청림아파트는 구식이라고 젊은 층은 아예 회피한단다. 외래어 아파트명칭이어야 각광을 받는다니 참으로 이 나라의 언어정책을 어디까지 탓해야 할 지. 한국말과 한국문화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려고 하고 있는가?

한글이 야금야금 영어몰입교육속으로 먹혀들어가고 있는데도 아주 최소의 기관(국립국어원, 문화관광부,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등)에서 간혹 한마디 던진다. 해외 한국어교육을 제대로 하겠다고 말이다. 해외 한국어교육은 국내에 비해 오히려 알차다. 한국내 한글, 한국어교육에만 주력을 해준다면 우리 재외동포는 뒤를 따를 용의가 다분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에 간절히 바란다. 한글, 한국어 교육과 영어교육의 지침을 똑바로 세우고 국내에서 올바른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민족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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