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러시아 타운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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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러시아 타운 In Seoul
  • 남혜경
  • 승인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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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8일 수정본

“아이-, 그런 거 말고요, 오늘은 무엇을 했느냐? 어디엘 갔느냐? 뭐 이런 것을 물어보는게 좋은 것 같은데...”
“ 아니야. 나한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는 이번 결혼에 내 인생을 걸었다. 그러니 당신도 그런 결심이 필요하다. 앞으로 정말 잘해 주겠다. 이런 걸 전하고 싶다니까...” “그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딸 아이가 하나 있는 23살의 우즈베키스탄 여성(러시아 민족)과 결혼을 한 한국인 중년남성이(이도 이혼경력이 한번 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아가씨에게 핸드폰 수화기를 넘겨주고선 계속해서 “사랑한다. 잘 해 줄게“ 만 반복하니 뭔가 둘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터줘야겠다 싶어 한국 아가씨가 제안을 하지만 남성은 마음이 급하기 만 한 모양이다.
#그림4
2주일 전 동대문운동장 역 부근 어느 호프집에서  “우즈베키스탄 번개 모임”에서 이들은 만났다. 우즈베키스탄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 주선한 모임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관심이 있는 이들 십여 명이 상면을 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 구상 중인 사람, 여행을 다녀온 사람, 가려고 하는 사람, 예전에 우즈베키스탄 대우자동차 공장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 등이 참석했다.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결혼은 했지만 말도 안 통하는 신부와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야 할지 막막해 혹시나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없을까 하고 나온 이가 위에 소개한 중년남성이다.
한 두번 얼굴 만 보고 결혼한 한국남성을 따라 들어온 우즈베키스탄 여성들만도 3천명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들의 모임장소는 러시아 음악이 흐르고 러시아 아가씨들이 써빙을 하는 동대문운동장 역 부근 호프집이었다.
일명 먹자 골목으로 불리우는 광희동1가를 중심으로 을지로 6가와 7가.  
이 주변은 늘 구소련 지역에서 들어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리고 어두컴컴해질 무렵이 되면 먹자골목엔 샤슬릭(양고기나 돼지고기를 이용한 고치구이)을 굽는 냄새와 연기가 잔잔히 퍼지고 삼삼오오 러시아말을 하는 사람들의 그룹이 찾아든다.
이 부근에 만도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음식점이 10개 이상이 되고 2개월 전엔 러시아 빵 만 전문으로 구워 파는 베이커리 겸 카페도 생겼다.
그리고 러시아 상호가 범람한다. 그들이 직접 차린 회사도 있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국 회사들도 이곳에 밀집해있다.

이곳에 오면 한국말을 몰라도 물건을 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가 있다. 한국을 드나드는 봇다리 장사꾼들, 그들을 상대로 하는 의류회사나 가게에서 일을 하는 교포들. 중앙아시아나 몽고에서 온 노동자들. 그리고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러시아 아가씨들이 이 지역 주민이다.
관할파출소에서는 이 지역 외국인 거주자가 약 150명이라고 하지만 이는 회사 등에서 일을 하는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의 숫자일 것이다.
물건을 사러 와 1주일을 이 부근 여관에서 머무는 사람, 한 두달 노동 일을 하다 가는 사람 등등을 합치면 이에 몇 배는 되는 인구가 이곳을 거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본다..

서울에 이런 러시아 타운이 형성된 것은 1990년도 중반 이후 이다.
1994년 서울과 하바로브스크 간 항로가 열리면서 모스크바, 사할린, 타슈켄트, 알마티, 우란바틀간 직항로가 줄을 지어 개항을 하고 현재는 어느 지역이든 1주일에 적어도 2편 이상의 항공편이 뜨고 있다.
배편을 이용하던 시절에는 부산이 러시아 교역의 중심지였고 부산역 건너편 뒷골목에 러시아 타운이 있었다.

그러나 장사꾼들이 점차 항공편을 이용하게 되면서 상권이 자연히 서울로 옮겨졋다.
장사꾼들이 항공편을 이용하게 된 것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하는 점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국내환경의 변화였다.

러시아의 예를 들면, 90년대 중반까지는 국내 세관 관계법규가 미처 정비가 안 되어 누구나  냉장고 같이 덩치가 큰 상품들까지도 거의 관세 없이 가지고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세관법이나 그 시행이 엄격해 지면서 봇다리 장사들이 가볍고 부피도 적고 부가가치도 높은 의류(사할린의 경우 도매가격의 3배)를 주로 취급하게 되었다.

왜 동대문인가? 동대문 주변에는 영세 봉제공장이 많다.
초창기 그들은 국내 수요자용으로 만들어진 의류를 사 갔다. 그러나 체형이나 취향이 한국인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늘 그것이 불만이었다.
모스크바 멀리는 중앙아시아 몽고에서도 장사꾼들이 찾아 들면서 독자적인 하나의 상권이 형성되어 그들의 요구대로 주문생산(소량의)을 하는 시스템이 구축 되어갔다.
그러면서 봉제공장이 많은 이 지역에 더욱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 것이다.
또 한국을 오가며 봇다리 장사를 하던 사람들 중에서 아예 한국에 회사를 차린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가 가장 좋았다는 98, 99년경에는 교포들이 차린 의류회사가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국립의료원 옆에 있는 오래 된 한 빌딩을 들어가 보니 층층마다 3,4군데의 교포들이 직접 운영하는 의류회사가 있었다.
한 곳을 들어가 벌이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이구-요즘은 어려워요. 러시아에 싼 중국물건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다, 똑같은 원단과 디자인으로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물건을 만드니까 한국으로 오던 사람들이 그리고 가 버려요. 중국으로 공장들이 많이 옮겨졌어요. 그래서 문 닫는 회사가 많아졌어요.  장사가 잘 될 때는 모여서 놀기고 하고 했는데 요즘은 다 어려우니까 잘 안 만나게 되네요. 중국 사람들 무서워요. 러시아 말도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잘 해요. 통역 같은 거도 필요 없어요.”
하면서 혀를 찬다.

또 러시아 타운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것이 숙소다. 동대문 밀레오레나 광희동 먹자골목 주변에는 장급 여관들이 많다. 봇다리 장사꾼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물건을 사서 날라야 하니 자연히 봉제공장이나 의류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을지로 6 가 부근에 숙소를 정하게 되고 장기 체류자들도 걸어서 일터에 나갈 수 있는 이 부근 여관에서 살림을 차린다.
방 하나를 한달에 4,50만원에 빌려 부부나 친구가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2003년 1월 현재 한국내 외국인 거주자 수는 63만명이다. 그 중 29만명이 불법체류라고 한다. 그 중 러시아 국적을 가진 이가 4626명, 우즈베키스탄이 7540명, 몽골이 1만 3638명이 있다고 한다.
구소련지역 출신 불법체류자들의 증가가 러시아 타운 주민 얼굴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이 지역 선주민은 사할린 교포들이다. 그들은 비교적 한국어에 능통하여 일찍이 한국을 드나들며 통역 일이나 장사를 시작했고 회사를 차린 사람들도 사할린 교포들이 대부분이다. 또 사할린 출신 사장은 사할린 교포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수교 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인들 중에도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도 늘고 하면서 교역대상 범위가 확대되어 교포가 아닌 순수 러시아인들 또는 중앙아시아인들도 이곳을 쉽게 찾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러시아 식당이 늘어나고 있는 데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사할린 교포들은 한국음식을 즐긴다. 된장찌개 같은 순 한국음식을 늘 사할린에서도 먹어 왔기 때문에 한국인들과 다름없이 생활한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교포들이나 러시아인들은 한국 식당에 가면 말도 안 통하고 입맛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인구가 늘면서 그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몇군데의 식당을 돌아보니 정말 손님 대부분이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런데 식당 운영자도 대부분 교포다. 임대를 하려면 한국인들의 명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에 연고가 있는 교포들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2개월 전에 오픈 했다는 베이커리와 카페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온 교포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구소련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의류업계의 불황과는 관계없이 러시아 타운은 자리매김을 탄탄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사할린 교포들이 비우고 간 자리를 중앙아시아 출신 교포가 채우고 또 중앙아시아나 몽골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 고유의 색을 띠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색을 찾아 이들 지역과 인연을 맺은 한국 사람들이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이 타운의 변화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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