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재외동포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작시카고 한인 이민사 -② 한인사회의 태동

2005-03-01     박신규

◇전쟁과 이민 침체기 1940~50년대=1930년대에 서서히 자란 시카고 한인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다시 침체하게 됐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 새 유학생이 전혀 안 온 데다가 가족을 가진 사람들은 재미 일본인들이 집단 수용소로 가면서 남긴 일자리를 얻어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카고 한인회 출범과 1960년대 한인사회=1960년대 들어서 한인감리교회 산하조직으로 활동하던 시카고 한인학생회가 독립적인 단체로 주체성을 찾기 시작하다가 한인회로 변신하여 독립해 나갔다. 당시 학생회 회장이었던 심기영씨는 학생회와 감리교회는 40년간 운명을 같이해 온 밀접한 관계이지만 학생회는 독립단체임이 헌장에 명시돼 있는 만큼 교회와의 관계를 선명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와 함께 당시 주요행사를 할 때나 대외관계에서 과거의 이승만박사 지지측과 그에 반대하는 측이 갈등을 겪는 등 한인사회의 분파요소를 통합할 목적과 교회로부터 독립하여 시카고 한인들을 대외적으로 대표하기 위해 시카고 한인회가 마침내 발족했다.

1963년 1월3일 한인감리교회에서 한인회 창립총회를 갖고 최다수 득점자인 손원태 박사를 초대 이사장에 선출하고 초대회장에는 정보라 박사를 선출했다. 이어 1964년 1월에는 제2대 시카고 한인회장으로 김봉오 박사를 선출했으며 1965년에는 다시 정보라 박사가 한인회장을 맡아 초창기 한인회 창립기를 주도해 나갔다.

초대 한인회장 정보라 박사는 1963년 시카고 네이비 피어에서 열린 ‘국제 민속제’(International Folk Festival)에 처음으로 참가해 대외적으로 한인회가 시카고 한인사회 대표적인 단체라는 상징적 행사를 했다. 그후 1970년대까지 한인회는 이 국제 민속제에 참가해 한국의 민속품을 전시하고 불고기와 만두등 한국음식을 판매하고 고유무용을 선보이는등 주류사회를 향해 한국을 알리는 주요한 역할을 하게됐다.

시카고=박신규기자  skpark@koreadail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