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떠나고' 있다

2003-03-05     오마이뉴스
[중국 장춘 = 글 박현숙 / 사진 노순택 기자]

지난해 연말, 서울 가리봉동과 구로공단 등 조선족들이 밀집해 있는 세칭 '조선족 타운'의 세밑 분위기는 '엑소더스'(대탈출)를 방불케 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이었다.

국내 모 일간지는 "2평 크기의 '벌집'들이 모여 있던 이 일대 쪽방촌 거리 곳곳마다 붙어 있는 '세놓음'이란 쪽지는 동포들의 '조선족 타운 엑소더스'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라고 전하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어야 할 세밑과 새해, 그러나 이들 한국의 조선족 동포들은 또 다른 '시린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불법체류자 전원 추방, 산업연수제 확대를 골자로 하는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시민사회단체의 반발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재검토 요구가 잇따르자 지난해 11월 말 수정안을 내놓았다. '불법체류 기간이 3년 미만인 외국인 노동자는 출국을 1년 유예하고, 3년 이상된 불법체류자 14만 9000여명은 3월까지 전원 출국해야 한다'는 것.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 성남, 일산 등 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3월 강제출국 시행을 알리는 공고문이 속속 나붙는 한편으로 지난해 연말부터 대규모 단속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이번 방침에 따르자면, 현재 한국에 불법체류중인 약 11만명 정도의 조선족 동포들 중, 체류기간 3년을 넘긴 약 6만명 가량의 '불법 장기체류자'들이 올해 3월말까지 한국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떠나야 할' 그들 대부분은 강제출국 대신, '피난'을 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야 할 '돈'을 아직 다 못 벌었기 때문이다.

거액의 '장리돈'(빚)을 얻어 한국으로 간 조선족들에게 보통 2-3년은 빚갚는 기간이고 3년 이후라야 알곡 같은 돈을 모을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 정부의 강제출국 방침은 그들에게는 곧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가 강제추방을 밀어붙이면 가스통을 메고 정부시설에 뛰어들겠다"는 모진 마음을 먹고서라도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오긴 와야 할 것인디…"

중국 길림성 길림시 룡담구 아라디 (조선족) 관리구 마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동곤(65) 할아버지가 집 뒷마당에서 마른 볏짚단을 긁어 모으고 있다. 김씨 할아버지 옆에는 예닐곱살 정도 돼보이는 어린 손자가 시커먼 집개를 동무삼아 아무렇게나 놀고 있다. 개를 동무삼아 노는 모양새가 퍽이나 심심하고 무료해 보인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할아버지가 볏짚단 모으던 손길을 멈추고 반갑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왔소? 우리 딸하구 사위도 한국에 있는디. (어린 손자를 가르키며) 쟈 엄마 아빠요. 저거 막 돌 지나고 갔으니깨 이제 한 5-6년 되는가. 쟈는 지 에미애비 얼굴도 모르고 컸어요."

엄마아빠 얼굴도 모른 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에서 자란 손자 설홍이는 벌써 일곱살이 되었다. 작년 가을에 소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아빠' 얘기를 꺼내는 김씨 할아버지가 잠시 설홍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하지만, 설홍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마치 '엄마아빠'라는 단어를 못알아 듣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설홍이를 김씨 할아버지가 내내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다.

"거 여기저기서 말들을 들으니깨 한국정부에서 5-6년 이상 장기체류한 조선족 노무자들을 올해 안으로 다 강제로 내쫓는다고 하던디 그게 참말이요? 그러면 우리 딸하고 사위도 조만간 돌아와야 할 것인디. 지금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이요. 5-6년 동안 돈도 크게 못 벌었나 봅디다. 얼마 전에는 애 아버지가 크게 차 사고가 나서 그나마 얼마 안되는 돈도 다 까먹은 모양이요. 여기서 갈 때 (브로커에게)소개비조로 인민폐 10만원(한화 약 1500만원)을 주고 갔소. 그것도 다 빚이었제…."

김씨 할아버지는 딸과 사위가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통' 모른다고 한다. 그저 일년에 몇 번 전화로 안부나 전하는 게 고작이라고. 그래도 '일이 잘 풀렸으면 좋으련만', 돈은커녕 그만 차사고에 몸까지 상했다고 하니 김씨 할아버지의 '속'은 속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는 강제출국까지 당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갑갑하기만 하다고.

"오긴 와야 할 것인디 돌아와도 살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요. 뼈빠지게 농사지어 봤자 한해벌어 한해 먹기도 바쁘니 누가 농사를 지을라고 하겄소. 이 마을의 조선족들도 다 농사를 안 지을라고 하요. 젊은 사람들은 다 돈벌러 나가고, 있는 땅뙈기는 그냥 놀리기 아까우니까 한족들한테 소작을 줘요. 이러다가는 땅도 잃고 중국사람들 노예되는거 아닌지 몰러. 그래도 어찌 살길을 찾긴 찾어야 할턴디…."

100년 전과 100년 후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20세기 초반. 수많은 '조선인'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의 만주와 간도(지금의 연변)지방으로 '이민'을 떠났다. 계속 되는 자연재해와 민란의 급증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조선인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강을 건넜다.

1910년, 일본의 조선 강점은 이러한 피난행렬을 가속화시켰다. 대부분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를 한 조선인들은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당시 황무지나 다름 없었던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어 중국의 항일투쟁과 혁명운동을 도왔다.

1949년, 중국땅에 사회주의 신중국이 건립되면서 이들 '조선인'들은 당당한 '중국공민'이 되었다. 1952년 9월 3일에는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1954년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개칭)가 성립되면서부터 조선인들은 중국 56개 민족성원 중 하나인 '조선족'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조선족들은 다시 '떠나고' 있다. 100년 전에는 이곳 중국땅으로 떠나 왔지만, 100년 후에는 역으로 고국인 한국땅으로 향하고 있다. 100년 전과 100년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떠나는' 이유이다. 100년 전 1세대들은 말 그대로 굶어죽지 않기 위해 중국땅으로 이주해 왔지만, 100년 후 2-3세들은 '한국으로 떠나면 부자 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믿고 너도 나도 꿈의 나라, 한국으로 가고 있다. 이를 일컬어 '코리안 드림'이라고도 한다.

100년 전, 중국땅으로 이주를 했던 1세대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황무지를 개척해서 지금도 중국 농업 발전사에 기적으로 일컬어진다는 수전(水田: 논농사)개발과, 조선족 자치주 형성이라는 꿈 같은 일을 해냈다. 그렇다면 100년 후, '아무리 고달픈 가시밭길이어도 한국행만 성공하면 부자 된다는 코리안 드림'의 전설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지난해 8월, 중국내 대표적인 조선족 신문인 '흑룡강 신문'에서는 한중수교 10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보도-재한 중국 조선족 집중조명'이라는 기사를 연재했다. 이 기사 중 '코리안 드림의 허와 실'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다.

"과연 한국이란 우리가 중국에서 생각하듯이 돈을 갈퀴로 긁을수 있는 천국이었을까? 당초 자신의 계산과 맞아 떨어지는 조선족 '심마니'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친척방문 등으로 한국행에 물꼬가 트이고 그후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본격화된 '한국바람'은 무수한 현대판 조선족 '심마니'들을 양산해냈지만, 이들 중 정말로 '심'을 봤다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내용이다.

"한국에 도착해서 처음 1∼2년은 무거운 빚더미나 높은 이자를 줘야 하는 사채의 부담 때문에 '짠돌이'가 되고 '짠순이'가 되어 열심히 벌고 돈을 저축하지만 3년 이상 넘어갈 경우 '본전' 압력에서 해탈되어 소비취향이 한국화 되어가기 때문에 돈을 별로 모으지 못하는 실정이다"라며 사정이 이러니 "수중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중국에 와서 창업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계속 남아 있자니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형세에 점점 뒤떨어져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건강이나 기타 여건도 허락되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라고 코리안 드림의 '허'를 찌르고 있다.

결국, '한국 가면 부자 된다'는 꿈 하나만 믿고 떠났던 현대판 조선족 '심마니'들은 현재 한국이나 중국 모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계속 떠돌고만 있는 셈이다. 이들이 떠도는 동안 중국 내 조선족촌들은 서서히 해체되고 붕괴되고 있다. 100년 전 그들의 선조들이 일구었던 '꿈'들도 무너지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들에게는 정말로 한국 이외의 '대안'은 없는 것일까.

2003년 새해 벽두. 여전히 한국땅을 떠돌고 있는 수많은 조선족들이 강제출국을 모면하기 위해 '피난'을 가는 동안,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서는 새로운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들이 한결같이 내세운 대안은 바로 "우리의 살길은 중국에 있다"이다. 그리고 또 말하고 있다. "100년 전 선조들이 개척해주었던 '땅'에서 다시 시작하자"라고.  

이 기사는 모두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