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긍정의 언어

2018-11-28     조현용 교수

새벽에 일찍 깨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새벽에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은 온통 잡념(雜念)입니다. 잡념과 씨름하다가 일어나면 하루가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저는 잡념이 가득할 때면 주로 복식호흡을 합니다. 예전에 배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보는 건데 잘 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의 호흡과 반대로 하는 것이어서 약간 힘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나 반대로 하는 건 어렵습니다. 습관을 거스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복식호흡에는 잡념이 조금씩 사라지고 스르르 잠이 다시 드는 효과는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복근이 생기는 부수적 효과도 있습니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으면 꽤 오랜 시간을 복식호흡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뜻밖에 배의 근육이 단단해졌습니다. 뱃살도 좀 빠졌고요. 잡념도 때론 긍정적입니다. 몸 깊은 곳에 에너지가 모이는 뜨거움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인가 또 새벽에 깨어 괴로운 생각 속에 떠돌다가 문득 긍정적인 어휘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긍정적 어휘가 우리 몸에 밝은 에너지를 줄 수 있겠죠.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책에서 감사한 일을 일기처럼 적는 일만으로도 심리의 회복탄력성이 생긴다는 연구를 본 적도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측면에서 본다면 좋은 어휘를 떠올리는 건 나의 상태를 가볍고 밝고 맑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어휘가 먼저 떠올랐을까요? 저에게는 ‘행복하다’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잠깐 미소가 입가에 생겼다가 씁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늘 행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잠깐의 행복과 긴 괴로움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복하다의 뒤로 ‘기쁘다, 고맙다, 반갑다, 좋다’ 등의 단어가 줄을 잇네요. 얼굴에 미소가 커집니다. 긍정적인 단어가 참 많네요. 기쁜 일이 많다면 행복하겠죠. 고마운 일이 많은 것도 좋은 일이죠. 반가운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 다 좋은 일이네요.

그런데 예쁘다, 사랑하다에서 단어를 잇지 못하고 잠시 멈췄습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사랑하다는 긍정적인 단어일까요? 당연히 긍정적일 것 같은데 왜 사랑을 떠올리면 아프기도 할까요? 사랑하는 일은 기쁘면서도 아픈 일입니다. 사랑은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프기도 합니다. 곧이어 ‘보고 싶다’, ‘그립다’는 단어가 이어집니다. 분명히 긍정적인 단어인데 점점 더 아파옵니다. 긍정이 늘 기쁜 건 아닙니다.

그립다는 말에서 ‘슬프다’로 넘어갑니다. ‘아프다’로 넘어갑니다. 이제 ‘서럽다’도 따라옵니다. 힘들다는 말도 어렵다는 말도 눈물과 함께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고맙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다시 행복하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우리의 긍정에는 아픔과 고통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긍정의 언어에 담긴 슬픔을 만나고 나서 긍정이 더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