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고?

2016-02-23     조현용 교수

경제가 어렵다. 이 말 참 오래 들었다. 취직이 안 된다. 이 말도 오랫동안 듣고 있다. 경기가 좋은 시절이 다시 오기는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는 세상이 휙휙 변하고 경제도 빠르게 성장해 갔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러한 단계를 지났기에 성장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공장을 해외에 짓는 시절이니 새 일자리는 더 생기기가 어렵고, 많은 일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으니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기지 않는 한 취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면 가난은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현대에도 이런 자연 재해에 의한 고통은 비슷하겠지만 세계정세에 따라 그야말로 휘청거리는 게 경제다. 한쪽에서 기침을 세게 하면 다른 쪽에서는 앓아눕는다. 경제는 유기체 모양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만 잘 해서 되는 세상이 아니다. 가난이 단순히 한두 명의 책임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연재해로 가난이 닥쳤을 때 무작정 임금을 욕할 수는 없다. 물론 잘 대비해 놓지 못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라님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래서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속담이 나왔다. 어느 정도의 대비는 가능할지 모르나 이미 닥친 가난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럼 가난은 누가 구할 건가? 이런 속담은 나라님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가난은 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속담일까?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까? 나는 이 속담이 들려주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본다.

 가난은 굳이 말하자면 막기가 어려운 일이다. 대비도 열심히 해야 하고, 닥쳤을 때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면 ‘서로’가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게 있다. 평상시에는 필요 없는 말이지만 가난할 때는 힘을 발하는 속담이다. 나와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을 사람이 있다면 배고파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가 힘이 되어야 가난을 이긴다.

 신경림 선생의 ‘가난한 사랑 노래’에 보면 마지막 부분에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읊고 있다. 시인은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을 가난하기 때문에 버려야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가난하더라도 꼭 지켜야 하는 우리의 감정을 보여준다. 가난해도 외롭지 않아야 한다. 가난해서 더 두려운 일은 없어져야 한다. 가난하더라도 서로를 그리워해야 한다. 가난하기에 서로를 더 사랑해야 한다. 서로가 힘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따뜻함이어야 한다. 서로가 위로여야 한다. 서로가 어깨를 기대는 버팀목이어야 한다.

 가난은 나라님이 구하는 게 아니다. 물질적으로는 나라에서 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은 ‘마음’으로 구해야 하고, ‘정’으로 구해야 한다. 가난해서 외로우면 안 되고, 가난해서 두려우면 안 되고, 가난해서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된다. 가난할수록, 세상이 어려울수록 더 따뜻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가난해서 사람들이 외롭다. 아무도 찾지 않아서 홀로 세상을 떠난다. 가난해서 사람들은 두렵다. 나를 돌보는 이가 없고, 나를 위로해 줄 이가 없다. 가난해서 그리워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랑을 잊는다. 가난해서 사랑을 버린다.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사람들이 외로운 것은, 사람들이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사랑을 버리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주변을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