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나잇값을 해라

2016-01-11     조현용 교수

보통 나잇살은 ‘먹고’, 나잇값은 ‘한다.’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 될 때마다 생각나는 표현이다. 나잇살이라는 단어는 ‘나이’와 ‘살’이 합쳐진 단어이다. 같은 뜻의 단어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복합어를 ‘동의중첩’이라고 한다. 나잇값은 ‘나이’와 ‘값’이 합쳐진 단어이다. 나이에 값이 있으랴마는 우리는 나이에도 값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표현을 만들어 냈다.

 ‘나잇살’이라는 단어는 말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뜻하는 ‘살’과 합쳐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릿속은 배에 달라붙은 ‘살’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는 먹는 것이니 당연히 살로 가지 않을까 하는 유추까지 가능하다. 재밌는 연상이다. 아무튼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는 살도 붙는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데, 그대로 먹어대니 살로 갈 수밖에. 하지만 나이가 들면 살이 찌는 것도 뭔가 섭리(?)가 있지 않을까 위안해 본다.

 ‘나잇값’은 나이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경우는 나잇값을 한다는 말은 잘 안 하고, 나잇값을 못 한다는 표현을 한다. 하긴 나잇값을 하는 것은 정상적이니 비정상적인 상태에 대한 표현을 주로 할 수밖에 없겠다. 나잇값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 해야겠지만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나는 나잇값을 하고 있는가? 나이는 먹는 것이고, 나이는 먹는 만큼 가치가 높아진다. 각자의 나이에 걸맞은 가치가 있음도 물론이다. 

 우리는 앞의 두 표현을 합쳐서 ‘나잇살이나 먹어서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도 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가치가 높아짐을 보여주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어떤 경우가 나잇값을 못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나잇값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알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이 들어도 존경받는지, 존중받는지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나이를 먹어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나잇값을 못하는 거다. 나이의 무게만큼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다른 세상으로 갈 날이 날마다 가까워 가고 있는데 나의 곳간이 점점 쌓여간다면 불행한 일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뿐 아니라 다른 욕심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되지 않아야 한다.

 공자께서 70살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하여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허튼 욕심을 갖지 않는 태도도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공자께서는 40살도 불혹(不惑)이라고 하여 욕심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모든 욕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욕심을 찾는 것은 평생 기쁜 일이다.

 나이를 먹었는데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나잇값을 못하는 거다. 여전히 내가 모임에 가면 제일 말을 많이 하고, 여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어리다고 무시하고 있다면 제대로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면 일단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사람으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에게 다시는 진언(進言)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것을 공자께서 경계한 것이 나이 60살을 가리키는 ‘이순(耳順)’이 아닐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배려가 깊어져야 하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이에 걸맞은 가치가 생긴다. 나이는 거저먹는 게 아니다. 나잇값을 하려면 자신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 새해 우리의 나잇값을 생각해 보자. 나는 나잇값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