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위해 마지막 일생 바치고 싶어요”

스페인 태권도 대부 김제원 회장

2011-06-20     이석호 기자

“어머니는 몸이 아픈 누이를 위해서 북한에 남아계셔야만 했어요. 10살 때 일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요. 보고싶은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을 거예요. 누님만은 다시 만나고 싶어요.”

6.25동란 때 김제원 회장은 3명의 여동생 손을 잡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폭격으로 정신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보따리를 싸야 했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치료가 어려워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누님을 남겨둘 수 없었다.

남쪽 학교에서 그는 매일 같이 싸움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온 ‘촌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어쩌면 그가 태권도를 배운 이유는 이때문인지 모른다.

그가 스페인으로 떠난 지가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태권도 대부라는 칭호를 듣는다. 한국에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다녔지만, 돈을 벌기 위해 태권도를 정식으로 배웠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여동생 3명 뒷바라지를 이곳에서 했다. 어떤 동생은 교수도 됐다.

“오래된 얘기지요. 젊은 시절 20년은 스페인이 태권도 강국으로 거듭나도록 일했어요. 그다음 20년은 동포들을 위해 노력했지요. 북쪽에 계신 어머니를 잊을 수 없었어요.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한반도통일연구회에서도 일을 했어요.”

그는 “5년 전 개인 사재를 털어서 마드리드 인근에 약 32만평 규모의 땅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30년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다. 통일이 되었을 때 오갈 때 없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마련한 땅이라고 그는 말했다.

“살아 있을 때 통일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땅을 사둔 것은 잘한 일이에요. 유럽한인 차세대들이 회의를 하고, 노인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거든요.”

6월 20일 광화문에서 만난 김제원 회장은 최근 스페인한인회총연합회 회장선거와 관련한 논쟁으로 많이 지친 듯 보였다. 스페인 회장이 누구인지를 놓고 벌이는 이야기를 말한다. 지금까지 고광희 회장은 총회에서 진행된 선거에 부정이 없었다고 말하고, 김제원 회장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 회장은 2월 다시 진행한 투표에서 본인이 스페인총연 회장에 당선됐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스페인사회에서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사람이에요. 국왕을 비롯해 높은 관직에 있는 많은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모두가 마스터라고 부르며 저를 존중해줍니다. 한인회장으로 하고 싶은 마지막 일이 있어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데 마지막 일생을 바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