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공관장 부정부패’ 직원들이 내부고발

2004-01-13     조선일보

  
  [조선일보] 2003-12-19 (종합) 05면 42판 1808자    
  
    
재외공관 근무경험이 있는 외교부의 몇몇 직원이 부(部) 내부 통신망에 공관장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충격적인 ‘고해성사’ ‘내부 고발’성 글을 게재,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공금으로 밥 먹고 술 마시고… 밥 장사도”
외교부 행정직원인 H씨는 ‘우리 부 혁신방’이란 토론방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여러 과장·국장·대사·총영사 밑에서 일하면서 그 상사들 중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가져본 대상이 극소수였다는 점에 슬픔을 느끼고 있다”면서 “사적으로 친구들과 만나 저녁 먹고 술 한잔 하고는 법인카드 전표를 총무에게 내미는 상사들.
우리 부하 직원들도 ‘당신이 하는데 우리는 못할 게 있느냐’고 작당해 공금으로 밥을 먹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1박2일 출장 예정인데 2박3일로 출장비 끊어 가서는 차액을 챙기는 상사, 겸임국 신임장 제정을 위해 동부인 출장시 딸을 동반하기 위해 출장계획서와 지불결의서에 총무 직원 이름을 함께 올려 출장비를 타서는 직원 대신 사랑하는 딸을 동반하는 대사” 등의 사례를 언급한 뒤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예, 예’하며 면종복배(面從腹背)하지만 속에선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아실 겁니다”라며 하급 직원의 심리적 갈등을 털어놨다.
H씨는 또 “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사람 수 몇 명 부풀려 챙긴 몇 백달러가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요. 아래 직원들이 그 추잡함을 모르겠습니까”라고 외교공관에서의 ‘밥 장사’로 뒷돈을 챙기는 상사들을 비판했다.
그는 “고급 음식점에서 직원들을 외국인으로 둔갑시켜 기름진 음식을 대접하는 상사보다는 우동이나마 자기 주머니에서 낸 돈으로 먹으면서 직원들과 웃으며 담소하는 그런 상사가 좋습니다. 향기나는 상사들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당사자 “외교부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
H씨의 글이 뜬 후 직원들 사이에서 찬반의 ‘리플(댓글)’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한창이라고 한다.
“선배의 지적에 감사드린다. 차제에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관 근무를 몇 번 하셨기에 전 공관장을 매도하느냐. 그런 공관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의견이 분분하다.
아시아지역 공관에 근무 중인 H씨는 통화에서 “이미 외교부에서 자체 개혁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가 과하게 지적한 부분도 있지만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자는 취지였다”며 “누구를 고발하거나 해 끼치려는 것은 아니었으며, 좋은 방향으로 투명하게 해서 자성의 기회를 갖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동부인 출장시 딸을 동행했다는 부분과 관련,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고 하소연하는 전화를 통해 들은 것이며, 과거의 일이었다”면서 “외교부가 한 걸음 발전하는 모습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외교부 조영재 기획관리실장은 18일 “올 초부터 공관장의 부적절한 경비집행 사례 등에 대해 내부 사이트를 통해 고발할 수 있게 했지만 과거 사례들이 공개돼 곤혹스럽다”며 “신임 공관장 부임자에 대해 도덕성·지도력을 종합 평가, 철저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외교부는 “글을 쓴 직원을 조사하면 누구도 실명으로 내부 비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H씨에 대해 구체적 조사는 않되 자체 감사에 따라 해당 공관장들의 비리 사실이 확인되면 인사조치 등을 취할 방침이다.
그러나 관행상 묵인됐던 재외공관 비리를 차제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들이 외교부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동남아 국가와 중국 등의 공관 직원들이 한국에 들어오려는 현지인·브로커로부터 돈 받고 비자 발급 서류 등을 위조해 밀입국시키는 ‘비자 장사’, 공관장들의 카지노 등에서의 도박행위, 공관 경비를 ‘활동비’로 유용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행위 등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권경복기자 kkb@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