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포럼] “종교를 종교답게 하려는 각성과 개혁 펼쳐야”

2009-08-24     강성봉

이글은 지난 7일 희망포럼 광화문홀에서 정진홍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종교 문화의 이해’라는 주제로 행한 116번째 희망포럼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얻은 직업이 성경 교사였다. 그 때까지 필자는 기독교 안에서만 자랐다.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첫 수업을 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한 아이도 듣지 않는 거였다. 어떤 아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 젊은 나이에 무얼 못해 성경선생을 합니까?”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왜 필자의 얘기를 듣지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기독교의 언어가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과 놀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부터는 ‘하늘이라는 게 뭘까?’, ‘물이라는 게 뭘까?’, ‘왜 시험은 보아야 하는가?’ 등을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열심히 들었다.

필자는 성경시간이 성경을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10계명이나 주기도문을 가르치진 못했다.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종교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미국에 가서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신학책을 잘 읽지 못한다. 신학자들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책을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종교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고백의 언어이다. 인식의 언어가 아니다. 인간의 삶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로 끝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내 여자가 예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란 무엇인가, 사회 속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 종교와 관련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은 종교가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와 관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가 삶의 구체적 현실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종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물론 그 해답은 문화와 역사에 따라 다른 언어로, 다른 몸짓으로, 다른 제도로 나타난다.

종교의 또 다른 특성의 하나는 사람들이 그 해답을 절대적인 것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이 마련하는 규범에 따라 삶을 다듬으며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란 그것이 어떤 문화권에 있는 것이든, 어떤 시대에 있는 것이든 ‘물음에 대한 절대적인 해답’ 또는 ‘그 해답이 실제 삶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문화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음에 대한 해답의 문화’ 또는 ‘해답의 상징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를 이처럼 ‘해답의 상징체계’라고 정리하는 것은 종교를 이해할 때 범할 수 있는 과오, 곧 독단론이나 환원론에 근거한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종교들은 제각기 자기가 처해 있는 역사적 시기와 문화적 특성에 따라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키워왔다. 모든 종교가 그 나름의 ‘종교성’ 또는 ‘종교로서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성 또는 속성의 다름을 옳고 그름의 척도로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속성을 가진 종교가 어떻게 이러 저러한 역사문화적 상황에서 해답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는 어떤 의미로 현존할 수 있는가 살피는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종교인이 되면서 사람이 달라지고, 스스로 어떤 역경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기를 희생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정반대의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어떤 종교인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자기 탐닉적인 경우도 있다. 나아가 자기 세계만을 절대시하고, 자기와 다른 모든 것을 정죄하거나 저주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광기와 광신은 돈독한 신앙과 앞뒷면을 이루고 있는 종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종교가 총체적인 삶속에서 균형 있게 수용되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종교의 가르침과 종교의 현실성이 가지는 괴리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종교란 또한 사회에 있는 다양한 제도들 중의 하나다. 종교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회적 실체’ 또는 ‘사회적 힘의 현존’이 드러난 하나의 모습이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종교는 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전통적으로 사회 안에서의 종교의 역할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로, 종교는 참된 가르침, 또는 이념적 지표의 제시를 통해 사회 전체의 바람직한 조화를 유도하는 사회통합기능을 갖는다. 둘째로, 종교는 자신의 주장이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사회제도나 관습, 가치를 부정하는 사회변혁기능을 갖는다. 세 번째로, 종교가 독선적이 되면, 정치적 전제와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영향을 공동체에 끼치는 사회 해체 기능을 수행한다.

미래를 전망할 때 종교가 지닌 사회통합기능보다 사회해체 기능이 더 강하게 현실화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우리의 종교문화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이다. 우선 종교인들 스스로 자신을 종교인답게 하고, 종교를 종교답게 하려는 커다란 각성과 개혁을 펼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종교문화가 병들지 않도록, 그래서 건강하게 꽃피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종교에 대한 지적이고 비판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자칫 우리의 관심이 ‘너무 늦었었노라’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려운 일이다.                            

정리=강성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