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3ㆍ1절, 그 날의 역사 현장

2008-03-06     조범래 독립기념관 해외사적지관리팀장

지금으로부터 89년 전인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은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일제에게 강탈된 조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한 거족적인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바로 3ㆍ1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날의 역사적인 3ㆍ1운동은 국내에서 시작되어 우리 한민족이 살고 있는 해외 모든 곳에서도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그 현장은 아직도 세계 여러 곳에 남아서 89년 전, 그날의 뜨거운 겨레의 함성과 독립의 소중함을 말없이 웅변해주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한민족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중국, 미주,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 각지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을 조사. 발굴하였고, 그 중 중국 상하이와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현장 복원하는 성과도 있었다. 2007년 말 현재 독립기념관에서 조사한 해외 각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는 모두 900여 곳이 넘는다.

이 많은 사적지 중에서 3ㆍ1운동과 관련된 사적지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먼저 중국지역의 경우를 살펴보자. 중국지역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3ㆍ1운동 관련 사적지는 용정촌의 서전대야와 3ㆍ13반일의사릉을 들 수 있다. 서전대야는 1919년 3월 13일에 용정지역의 한인동포들이 연길지역 최초로 독립선언 포고문을 낭독하고 용정시내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한 사적지이었다.

일제는 중국관헌과 교섭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저지하도록 하였으나 여의지 않자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고, 이 날 순국한 분 13분의 애국지사의 묘와 기념비가 현재 용정에 조성되어 있다.

미국의 뉴욕에는 1921년 3월 2일에 3ㆍ1절 기념식을 거행한 타운 홀이 현재도 남아 있으며, 필라델피아에는 미주지역 3ㆍ1운동으로 불리는 제1차 한인회의(한인자유대회)가 열렸던 리틀극장이 지금은 플레이 앤 플레이어 극장(Plays & Players Theater)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남아 있다.

일본에는 3·1운동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2·8독립선언과 관련된 사적지가 있다. 도쿄의 재일본한국YMCA회관 입구에 2·8독립선언기념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2·8독립 만세시위운동을 벌인 히비야 공원 공회당은 현재 히비야 공원의 대형 꽃시계자리가 들어서 있다.

1919년 3·1운동은 단순한 만세시위운동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3·1운동은 우리 한민족 모두가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우리 민족의 절대독립을 요구한 독립운동이었다. 그 결과 3·1운동으로 표출된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한 곳으로 결집시킨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에 수립되어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정부로서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기관으로서 1945년 광복때까지 한민족을 대표했다.

해외 각지역에는 이 밖에도 독립기념관에서 아직 조사, 발굴하지 못한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금년에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지역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들 지역은 1937년 한인들에 대한 강제이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독립기념관은 앞으로도 국가보훈처 등 유관부처와 협의하여 해외 각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의 조사와 발굴에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적지의 보존과 관리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적지 곳곳에는 아직도 애국지사들의 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안위와 편안한 삶을 포기한 채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신 애국지사들의 혼과 얼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