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석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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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석가탑
  • 천원주
  • 승인 2007.03.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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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주(한국언론재단 교육1팀장, 본지 편집위원)
북한이 핵실험을 전격 감행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난해 10월 9일. 중남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발행하는 콜롬비아 최대 일간지‘엘띠엠포’는 이날자 1면과 2면을 북한의 핵실험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채웠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 나라가 한반도 핵문제에 이같이 깊은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당시 보고타를 방문하고 있던 필자 일행에게 엘띠엠포의 국제담당 편집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콜롬비아는 한국전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유일한 중남미 국가다. 많은 국민들이 파병을 기억하고 있고 참전용사중 2천명 가량이 아직 살아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켰다는 자긍심이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만큼 비중있게 다룬 것이다.” 실제로 콜롬비아는 보병 4천300여명과 해군 300여명, 그리고 군함 1척을 파병했던 나라이다. 1951년 금성전투에서 금성을 탈환했고 인제전투, 연천전투 등에 참가했다. 1954년 철수할 때까지 실종자를 포함한 사망자가 200여명, 부상자가 400명에 이르렀다. 사상자 대부분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막다가 한반도의 추운 겨울속에서 쓰러져 갔다는 기록이 있다.

나이 80이 넘은 참전용사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보고타의 지휘참모대학 교정안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기념비 앞에서였다. 석가탑 모양의 이 기념비는 1973년 우리 정부가 콜롬비아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정부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한 참전용사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경제를 발전시킨 한국민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도 성장한 경제력만큼 보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콜롬비아 청소년들을 초청해 한국의 높은 기술을 전수해주길 바란다. 기업 진출과 투자도 늘려주길 바란다”  이 발언은 만성적인 일자리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콜롬비아 현 경제실상을 나타내는 것이었지만 한국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롬비아는 친미우익 우리베 대통령이 2002년 집권한 이후 외자유치액이 급증하고 경제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지만 아직도 이 나라에는 농업과 광업 외에 이렇다할 산업이 없다. 또한 콜롬비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여전히 마약문제다. 1년에 30억 달러가 마약밀매를 통해 콜롬비아로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해 경제 성장률 5.5% 가운데 1%는 마약 밀매가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콜롬비아의 젊은 피 200여명이 지구 건너편 이국땅 한국에서 비명해 갔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는 한국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치면서도 한국인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콜롬비아에게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주고 있는 지 자문해 봐야 한다.

대통령 두 명이 한국을 방문했지만 우리는 어느 대통령도 아직 답방한 적이 없다. 2006년 콜롬비아 국제 영화제를 한국주간으로 설정해놓고 ‘올드 보이'를 비롯한 한국영화를 상영하며 한국 영화인들을 공식 초대했지만 누구도 오지 않았다고 그곳 영화 관계자들은 실망감을 표시했다.

지난 주 임채정 국회의장이 콜롬비아를 방문했을 때 우리베 대통령이 무역 역조의 심각성을 제기하며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콜롬비아 진출을 직접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꼭 콜롬비아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우리의 시각은 지나치게 서방 위주다. 중남미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중남미를 상품을 내다파는 시장 정도로 인식할 뿐이지 긴밀한 협력과 보은을 유지해야하는 국가로는 대우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젊은이들의 넋이 묻힌 한반도에 핵 위기감이 감돌고 있음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콜롬비아인들, 성공적인 6자회담 개최가 불러오고 있는 평화의 무드를 지금 가장 반기고 있는 혈맹이 바로 이 나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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