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kg짜리 원폭 2세 환우 인권위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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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kg짜리 원폭 2세 환우 인권위 진정
  • 시민의신문
  • 승인 200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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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날짜: 2003/08/06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네. 할아버지가 히로시마에 살고 계셨다네. 내 왼손가락은 태어날 때부터 한 덩어리로 붙어 있었죠. 언제나 주머니 속에 숨어있던 나의 왼손.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때 우린 무엇인지도 몰랐지. 할아버지의 피 속을 통해 전해 내려온 피.내 왼손가락은 한 덩어리여서 제일 불쌍한 새끼손가락. 봉숭아 물 한번도 못 들이는 내 손가락.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난 90년 KBS 주말드라마 '달빛가족' 안에 삽입됐던 '새끼손가락'이란 노래이다. 당시 인기 가수 김승진씨가 노래를 부르는 막내아들로 출현,  드라마상 자선공연에서 자주 부르던 이 노래는 1945년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후 그로 인해 대대로 피해를 입고 있는 원폭 다음세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폭2세 환우 이야기가 드라마 속 노래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5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층에서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원폭2세 환우공대위)' 주최로 열린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발족 및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형률(34·원폭2세 환우)씨의 체구는 163cm, 37kg에 불과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 숨이 끊길 듯한 기침을 연신 해대고 있었다. 김 씨는 지금까지 15차례 이상 폐렴에 걸렸으며 이로 인해 폐가 30%밖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량의 객혈을 지혈제로도 감당하지 못해 '기관지 동맥 색전술'이라는 수술을 지난해부터 2번이나 받았다. 항시 숨이 차고 언제 객혈을 쏟아낼지 몰라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다.

1945년 히로시마의 비극 대물림

이러한 비극은 지난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시작됐다. 그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김 씨의 모친은 6살의 나이였고 이후 원폭 휴유증으로 인해 한평생 악성종양과 피부병에 시달려왔다.

몇 십년이 지나 김 씨는 어머니에게 X염색체상의 열성 유전자를 물려받으면서 일란성 쌍둥이 동생과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났고 동생이 생후 1년 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진 이래 그는 '면역 글로블린M의 증가를 동반한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작년 겨울에 계속 감기에 걸렸드랬죠. 한 번 감기에 걸리면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보름 이상을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심하게 걸리는데 그걸 몇 번씩 반복하다 보니 원폭2세 환우 문제는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965년 한일기본협정으로 성장을 도모하며 우리들을 희생시킨 한국 정부와 그로 모든 것을 책임졌다며 외면하는 일본, 그리고 승전국인 배상을 하는 일은 없다고 말하는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들이 저지른 반 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한 배상을 이제는 받고 싶어요."

대부분의 원폭 피해자와 원폭2세 환우들이 사회적 제도 미비와 원폭 피해자라는 낙인으로 인한 차별을 두려워해 침묵하고 있는 사이 사회는 이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김 씨는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 낸 천형과도 같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모순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작은 몸을 일으켰다.
  
원폭피해 관련 정부배상 전무
사회적 낙인 우려 피해사례 보고 안돼

원폭2세 환우의 수는 어느 정도이며 그 피해사례는 왜 보고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원폭2세 환우공대위'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원폭피해자 1세의 수는 2천1백61명(2001년 9월 기준)으로 사회적 지원 미비, 낙인에 따른 차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을 감안, 대략 1만 명을 웃도는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1991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대상이었던 1천9백82명의 피해 1세들이 평균 3.72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으며 응답자의 41.1%가 1명 이상의 자녀에게 원폭후유증이 있다고 밝혔다.

이광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는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대략 추정해도 원폭2세 환우의 수는 최소 2천3백여 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에 대한 인권 보장과 의료 지원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상당히 많은 수의 원폭2세 환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이들이 수면 위에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는 원폭2세 가운데 후유증 등이 없는 이들이 정부 등지에서 아무런 보상도 없는 상태에서 원폭 피해자의 자식이라는 낙인만 찍혀 사회 생활에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해서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원폭2세 환우들의 허약한 체질 등이 '방사능에 의한 유전 가능성 때문'이라고 명백히 입증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원폭 피해자들이나 그 자식들이 사회에 당당히 배상 요구를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02년 5월 7일자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따르면 '강한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경우 나타나는 돌연변이가 3대까지 유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지난 1986년 인제의대 내과학교실 백용균 교수팀이 발표한 '원폭피폭자와 그 자녀들에 대한 임상적 및 염색체 이상에 관한 연구' 결과도 원폭 피해자의 자식에게까지 DNA손상이 대물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원폭2세 환우공대위'는 "이러한 연구 결과만 봐도 원폭 피해자는 물론 그들의 자녀들이 보이는 몸의 이상징후가 원폭과 연관됨을 알 수 있고, 지금 아무런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은 원폭 2세들의 자식에게도 손상된 DNA 유전자기 대물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 환우에 대한 대책 마련 시급

일본 정부는 1945년 원폭피해 발생 직후부터 원폭피해자 조사, 검진, 의료 등을 실시하며 전문 병원을 설립했다. 또 1968년에는 원폭피해자에 대한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들에게 건강관리수당·특별수당 등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의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지난 1965년 한일기본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에 제공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 금액의 5%만을 민간 보상액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신고대상을 제한해 원폭피해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민간기구 중심으로 지난 1967년 사단법인 한국 원폭 피해자 원호협회가 결성,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아 피폭자 보상요구운동을 전개, 일본이 1989년부터 치료비를 보내왔으며 1990년 40억엔의 지원기금을 설정하는 등 협회와 민간단체에 의한 치료는 제공되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제도는 전무한 상태이다.

원폭을 투하한 미국 역시 '승전국이 배상금을 지불한 사례는 없다'며 당시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원폭2세 환우공대위'는 "UN인권소위원회 결의 제1995/35호는 가해국과 피해자의 본국이 다를 경우, 피해자의 본국이 불처벌의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국제적 의무를 선언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원상회복에 대한 권리와 배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 헌법 10조 등에 나타난대로 원폭2세 환우들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폭2세 환우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원폭2세 환우에 대한 전국적 실태조사 ▲체계적 의료지원체계 마련 ▲체계적 생계지원체계 마련 ▲일본과 미국에 대한 배상 요구 등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공대위는 향후 한일 양국에 분포되어 있는 원폭2세 환우 실태 조사작업에 우선적으로 착수할 예정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연대하여 원폭2세 환우의 허약체질이 방사능과 관계 있음을 규명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며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과 더불어 원폭 피해자에 대한 국/내외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법률적 문제 등을 상의할 예정이다. 또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는 원폭피해자 기구 등과 연대하여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전 11시 30분경 원폭 2세들에 대한 인권보장과  인권실태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위에 접수했다.

김세옥 기자 kso@ngoitmes.net    
사진=이정민 기자 jmlee@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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