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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르치크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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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르치크의 아리랑
  • 장준희
  • 승인 2003.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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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르치크의 아리랑

일찍이 1980년대 구소련 중앙아시아 지역을 두루 둘러보았던 대구대학교의 김연수 선생님은 우즈베키스탄의 치르치크 강변을 방문한 뒤 '치르치크의 아리랑'이란 문학선집을 발간하였다. 치르치크 강변에 중앙아시아 꼬레사람들이 많이 분포되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강변의 집단농장이었던 '깔호즈'를 개간하면서 아리랑이란 노래가 민족의 정서를 담은 노동요(勞動謠)의 성격을 가지면서 일대에 울려 퍼졌었음을 김연수 선생님은 현장답사를 통해 일찍이 갈파했기 때문에 '치르치크의 아리랑'이란 말을 생각해 내었을지도 모른다.

타쉬켄트 지역은 우즈베키스탄의 동부 천산(天山)에서 발원한 치르치크강(江) 중류 좌변에 위치해 있다. 타쉬켄트는 치르치크가 시르다르야(江)를 만나기 직전에 드넓게 형성된 평균 해발 480미터의 오아시스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지역은 동부의 천산산맥 지류와 북부의 카자흐 평원으로 이어지는 축축한 늪지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타쉬켄트 오아시스'라고도 불리 운다. 타쉬켄트 오아시스 지대는 북쪽의 유목지대와 남쪽의 농경지대 사이의 경계로 일찍이 동서무역의 통로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해 왔다. 이러한 입지조건은 정치적 격변기의 주요 장으로 중개무역의 교차지역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타쉬켄트의 자연과 지리환경은 해발 3천 미터 급의 천산산맥 지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치르치크와 시르다르야 두 강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치르치크는 천산산맥 서쪽에서 형성된 크고 작은 지류들이 우깜계곡을 형성하면서 남류해 생긴 작은 지류들이 만나서 생긴 강이다. 타쉬켄트에서 동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가잘켄트시(市)에서 치르치크는 시작된다. 치르치크는 투르크어로 '빠르다', '소용돌이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당초 치르치크는 하늘이란 뜻의 '파락'에서 파생되기 시작하여 '치르치크', '치르'에서 다시 현재의 '치르치크'로 명명되었다. 지금도 치르치크를 두고 치르라 칭하는 지역 주민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중세에는 한때 타직어로 '오브초치(水石)'란 명칭으로 불리어 지기도 했다.

1940년대 강제이주 당한 독일인들이 많이 살았던 가잘켄트에서 타쉬켄트 꾸일륙 지역까지 비교적 물살이 빠르게 흘러간다. 지금도 '악삭아타사이'와 합류하는 가잘켄트 지역의 물살은 물을 만난 물고기 마냥 급하게 흘러간다. 매년 빈번한 익사사고가 나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천산지류에서 눈 녹은 물이 매년 5월이면 범람하기 시작해 칠 팔 명의 유목민들을 익사시키면서 중앙아시아에서는 보기 힘든 수재해(水災害)를 안겨다 주고 있다. 그래서 악삭아타는 '흰다리 아저씨'란 의미를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들에게 있어 흰다리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우(障碍友)를 지칭한다. '사이'는 작은 강(천; 川)을 말한다. 이에 반해 검은색은 중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민족적 긍정적 신화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원래 악삭아타사이와 관련된 의좋은 두 형제 악삭아타와 누락아타에 관한 전설은 가잘켄트 치르치크 지역의 전승신화에 속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열 번째로 긴 강인 치르치크(155㎞)는 타쉬켄트의 자연환경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천산에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과 치르치크로 흘러내리는 강물의 수량에 따라 타쉬켄트의 여름은 따가운 때약볕에도 푸른 녹지를 적셔주고 있다. 매년 9월이면 가장 저수량이 적은 한때를 보내게 되는 치르치크로써는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물살은 거북이 걸음을 시작한다. 다행히 가을은 타쉬켄트에서 우기(雨期)의 시작에 해당한다.  

치르치크 지역은 우즈벡 민족의 땅이라고 하기에는 카자흐, 키르기즈 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카자흐 민족적인 땅들 중의 하나이다. 강을 따라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의 여느 영토와는 다른 지질적 자연적 특징을 보여주는 곳 중의 하나이다. 드넓은 반사막 스텝지역에서 계곡과 산악지역이 만나는 이곳 치르치크의 발원지쪽으로 가장 더운 여름이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우즈베키스탄의 자연환경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토요일 정오경. 우리는 먹을 것들을 준비해서 '낚시금지구역'이자 '낚시금지기간'을 어겨가며 치르치크로 향했다. 은어(銀魚)의 일종인 '말링까'를 낚기 위해서라기 보다 뜨거운 여름을 피해 천산의 차디찬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치르치크 강물에 온몸을 식혀 보겠다는 일념에서였다. 이미 강변 곳곳에 위치한 작은 별장마을에는 겨울내 만들고 다듬고 수리해 왔던 여름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텃밭을 가꾸기도 하면서 중앙아시아의 여름을 나고 있었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강물의 큰 줄기가 아닌 작은 천이 있는 쪽으로 가 흐르는 강물에 몸을 담그며 달구박질을 해나갔다.

가잘켄트 조금 못 미쳐 위치한 지역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유난히 물이 차고 맑았다. 이렇게 깨끗한 천산의 눈이 녹은 물에만 산다는 말링까를 잡기 위해서 작은 삼각형 그물 낚싯대를 드리우고 바닥을 흩어내려가는 방법을 되풀이했다. 그 와중에 큼직한 눔을 한 마리를 건저 올렸지만, 그만 작은 그물을 빠를 물살에 놓치고 말았다. 강변에 외롭게 자란 이름모를 작은 나무 그늘아래에 쭈구리고 앉아 보드카를 오이와 고추장을 안주 삼아 들이마셨다. 그 사이 잡은 말링까는 준비한 초장 속에 푹 담구어 두었다가 회를 쳐 먹었다.

시간도 정지한 듯한 치르치크 강변의 이름모를 곳에서 구경나온 카자흐 민족 남녀 어린이들과 함께 물장구를 치며 자멱질하든 시간도 어느 듯 중앙아시아의 어두 침침한 밤하늘아래 들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에 나타나는 무수한 별들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저녁을 해 먹으로 작고 아담한 컨테이너 별장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우리는 온갖 맛있는 양념들 - 감자, 햄, 돼지고기, 양파, 마늘, 파, 오이, 토마토, 고추장, 고추 등 -을 넣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을 만들어 또다시 보드카 한잔과 네모난 빵을 썰어 먹었다.  

저녁이 되고 취기가 돌자 어느 듯 모기와의 전쟁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떨어지는 별똥별을 주워 담으로 또다시 강물가로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별들이 있었다니, 저 선명하게 빛나는 반가운 북두칠성이며, 은하수는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오직 우주(宇宙)는 아름다운 무지개 강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얗게 뿌려놓은 은하수를 헤아리고 있을 때 별들의 이동은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함께 했던 꼬맹이 녀석은 이리 뛰고 저리 뛰던 한낮의 발랄함은 간데 없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우주의 파노라마를 치르치크의 모래 땅에 누워 바라보는 진지함을 보여 주었다.

중앙아시아의 강변과 여름밤은 온세상의 사람들보다 아니 지금껏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별들을 깨끗하게 불빛으로 점찍은 에메랄드빛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축복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흔치않을 것이리라. 어찌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이 아닌 겨울에 이곳의 이웃나라 키르기즈의 산촌나라에서 '보쌈싸기'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여름이 아닌 겨울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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