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와 함께 하는 '준비된 영사'
상태바
동포와 함께 하는 '준비된 영사'
  • 오재범 기자
  • 승인 2007.01.26 1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3회 발로 뛰는 영사상 수상자 정상기 총영사

올해‘발로 뛰는 영사상’수상자는 끝내 수상자 인터뷰를 지면에 담아낼 수가 없었다. 마감까지는 불과 하루 남기고 어렵게 연결된 수상자가 “상을 받는 게 부끄럽다”며 본인이 받기보다는 “총영사관이 수상할 수 없겠느냐”고 한사코 사양한 때문이다. 

수상자는 “더 열심히 뛴 일선 영사들과 직원들 앞에 부끄럽기 때문”이라며, 수상 대상을 ‘개인’이 아닌 ‘기관’으로 바꿔줄 것을 수차 요청했다. 하지만 본지는 ‘발로 뛰는 영사상’ 제정의 본래 취지가 일선 영사들을 격려코자 한데 있으므로 수상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상기 총영사를 수상자로 발표키로 했다.(편집자 주)

지난 2004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 부임한 정상기 총영사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분야는 총영사관과 동포사회와의 쌍방향 의사소통이었다. 간혹 재외공관과 동포사회가 긴장관계가 있는 경우도 발생했고, 일각에서는 공관이 동포사회에서 ‘군림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의 모든 영사들이 동포들과 대화채널을 늘려 고충을 들어주는 등 영사관 문턱을 낮추는데 지속적으로 주력해 왔다. 또한 업무 중점사항으로 ‘신속, 정확, 편리한 영사서비스 제공’이란 기치를 내걸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런 결과,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은 현재 각종 현지언론과 동포 사이에서 영사업무가 매끄럽기로 정평이 나 있다.

얼마 전 외교부 장관표창 수상 통보를 받은 강영미 영사도 민원업무 처리 만족도 조사에서 이용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것에 기인한 것으로 정 총영사의 노력의 결실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또 동포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2세들의 한글교육과 동포단체들의 문화활동 지원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고 있는 노인 및 장애우 등 소외그룹에 대한 지원을 유도하는데도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왔다. 이번 ‘발로 뛰는 영사상’ 후보 추천 과정에서 다수의 소수자그룹이 앞장선 점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동포단체 행사에 참석 뿐만 아니라 매 주말마다 일정표를 짜 한글학교와 한인종교단체를 차례로 방문해 그곳 실태를 살피고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동포사회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자세를 지켜왔으며, 동포사회 안정을 위해 공관, 동포단체, 종교단체 간 협력관계 구축에도 부단히 노력해왔다. 동포사회 단결과 화합을 위한 자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전형적인 ‘발로 뛰는 영사’인 셈이다.

정상기 총영사는 1954년생으로 1977년 외무고시(11회)를 통해 외교관이 된 후 1982년 주대만 2등서기관겸 공사를 시작으로 싱가폴, 중국, 동북아2과장, 주스리랑카 참사관을 거친 뒤 1999년에는 청와대 의전비서실 행정관, 이어 주일대사관 공사참사관을 지냈다. 또 2002년 8월부터 본부 아태국 심의관, 아태국장을 역임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2004년 8월 부임해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