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미래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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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미래의 관건이다
  • 정길화
  • 승인 2007.01.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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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방송 PD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이하 ‘100년사’)가 발간되었다. 재미작가 이자경 선생의 역작이다.

멕시코 이민 100주년의 해는 2005년이다. 100주년에서 비록 2년이 지났지만 마침내 산고 끝에 ‘100년사’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5년 여에 걸쳐 이 책을 쓴 이자경 선생은 이미 1998년에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를 낸 바 있다. 상하 2권으로 이루어진 이번의 ‘100년사’는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를 모태로 해 이후 새로이 발굴된 자료들까지 거의 완벽하게 망라해서 집대성한 최종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가 멕시코 한인 이민 후손들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 작가의 개인적인 집필의 소산이었다면 이번 ‘100년사’는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과업의 결과로 알고 있다. 기념사업회가 한인회관 복원, 기념비 건립, 한멕 우정병원 개원 등 많은 사업을 벌이면서도 잊지 않고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기로 한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

이는 드높은 역사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집필자로 이자경 선생이 선정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선생의 열정과 성실성이 아니었다면 ‘100년사’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본 필자가 지난 2005년 제작, 방송한 MBC의 ‘멕시코 이민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 <에네껜>도 선생의 역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래서 이번 출간 소식에 더욱 반가움을 느낀다.

지금으로부터 102년전인 1905년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일단의 한인들이 생면부지의 땅 멕시코로 이민을 떠났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메리다의 에네껜(henequen 우리말로 어저귀, 영어로는 사이잘 sisal. 선인장의 일종으로 섬유질을 추출하면 선박용 로프의 원료가 되었다. 종전 ‘애니깽’으로 알려진 것은 잘못된 표기) 농장에 1,033명 내외의 한국인 노동자가 이주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멕시코 이민은 기만적인 ‘사기광고’에 의한 것이었다. 온갖 감언이설로 이루어진 당시 광고를 다시 보면 이런 허튼 수작에 농락당한 100년전 대한제국의 수준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때의 한국인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로 인해 야기된 4년간의 농장 채무노동은 ‘사실상 노예’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수난과 고통의 점철이었다.

멕시코 에네켄 이민은 이미 2년 전에 시작되었던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과도 현저히 다르다. 단 한 번의 이민송출로 끝났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리라는 꿈을 안고 이역만리로 떠난 그들은 모국에서 잊혀진 채 멕시코에서 가혹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반세기 이상 우리에게 잊혀졌다. 1905년 을사조약에 이은 35년간 일제의 식민통치,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분단,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격류 속에서 이들은 모국과 단절되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현지에 동화되어 갔다.

에네껜 이민 후손들의 존재가 비로소 국내에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여권으로 멕시코 유학과 이민을 가게 되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이들의 디아스포라와 고난에 찬 행로는 김상열 선생의 연극 <애니깽>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언론의 현지 르포, 학계의 연구가 이어졌다.  참으로 만시지탄이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본 필자는 이민 100년을 맞아 예의 다큐멘터리 <에네껜>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3번에 걸쳐 앙코르 방송되었고, 멕시코 카날온세 방송을 통해서 스페인어판으로 멕시코 현지에서도 방송되었다. 이민 100주년의 의의는 우리만이 아닌 멕시코인들과 공유할 소중한 가치일진대 이 프로그램이 멕시코에서 방영된 것은 사뭇 뜻있는 일이라고 자평한다.

이자경 선생의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에네껜 한인들이 멕시코와 쿠바 일대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을 역사서로 정리한 것이다. 구석구석 현지를 답사하고 자료를 발굴하여 온몸으로 기록해 내려간 역작이다. 이처럼 기록할 줄 아는 역사의식은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이 책의 부제(副題)는 ‘에네켄 가시밭의 100년 오딧세이’다. 그야말로 ‘100년사’는 에네껜 한인들의 영고성쇠와 간난신고를 그린 장엄한 서사시이다.

정부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과 초기 이민사 등 해외에서 활동한 동포들의 유적 및 물품 등에 대한 발굴, 보전작업을 통합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재외동포신문 기사 참조).  외교부,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국가보훈처 등 해당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해외소재 한인유산관리 위원회’의 출범을 환영하며 조국이 어려울 때 독립운동 성금 모금을 했던 에네껜 한인 이민들의 역사와 기록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를 소망한다.

한민족의 강인함과 생존력을 보여준 에네껜 이민 100년을 회고하며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책무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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