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은 변하라(와다하루끼)
상태바
총련은 변하라(와다하루끼)
  • weko
  • 승인 2002.12.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공작원에 의한 일본인 납치가 사실로 드러난 이래 재일한국·조선인 전체가 큰 괴로움을 겪고 있다. 납치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을 마음으로부터 동정하고, 북한의 권력 범죄가 일본인에 미친 것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래도 일본인이 납치사건에만 집중해, 식민지지배가 가져다 준 피해와 고통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의 속내를 보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런 것이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계의 재일조선인이다. 총련으로부터 이탈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지방 출신으로, 조상의 묘도 친척도 그곳에 있다. 고향에 살 수 없어 일본에 건너왔고, 전시중의 강제연행으로 끌려와 탄광 및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사람과 그 자식, 손자들이다. 전후에도 일본에 남아 어떤 이유에서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입장이 되고, 조련을 거쳐 총련에 속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에 가족 일부가 일본에서는 뜻을 펼 수 없다며 ‘귀국’이라는 명목으로 북한에 이주해가는 것을 배웅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조상·친척은 한국에, 자신과 가족은 일본에, 아들 딸 및 자매는 북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신체가 3개로 나눠진 인간들이다.

이 사람들은 북한의 국민과 똑같이,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왔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북한의 국가 범죄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로, 너무 창피해 얼굴도 제대로 들 수 없는 처지다. 다른 한편으로 자식들은 등하교 길에 일본인들로부터 위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자신과 총련과 북한의 관계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내가 강연을 했던 여성 집회에서 한 재일조선인 여성 교사가 일어나 고충을 호소했다. “정말 충격을 받았으나 이제까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닌가, 조직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있던 내가 나빴다”고 그 여성은 말했다. 모두가 생사를 걸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총련도 큰 궁지에 몰려 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납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온 것을 사죄하는 사고를 한번 냈을 뿐이다. 남승우 총련 부의장은 납치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지만, 총련이 납치에 관여한 듯한 공격에 대해 자신들은 납치와는 관계없다고 언명했다. 그러나 일본우익 언론들의 총련 공격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총련이 이제까지 북한의 주장을 100% 받아들여 반복해온 행태를 바로잡을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총련과 북한의 관계에 일종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의 경축일, 예컨대 김일성 주석 생일 등에는 총련의 축사가 <로동신문>에 게재된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축사와 한묶음으로 실린다. 한민전은 본부가 어딘지, 책임자는 누군지도 명확하지 않은 북한계열의 한국혁명단체다. 재일조선인 10만명 이상이 속해 있는 민족단체가, 이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지하의 음모조직과 동렬로 취급돼 온 것은 이상하다. 총련은 일본 헌법 아래서 살고, 일본 사회의 일원인 동시에 북한의 재외공민이란 자각을 가진 사람들의 단체라고 한다면, 북한 내부의 사회단체와는 당연히 다른 성격의 단체여야 할 것이다. 정치적 자유, 비판의 자유 보장 아래 북한의 체제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비로소 일본 사회에서 일본 단체와 협력해 갈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이해와 동정, 북-일간의 협력지원을 일본인들에 호소하고 설득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납치 문제가 명확하게 밝혀진 지금은 그런 자세가 특히 필요하다. 지금 일본의 텔레비전, 주간지의 북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정도를 벗어난 차원에 올라 있다. 대북 비방이 지나치다. 재일조선인에 관해 왜곡된 일본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이 균형감 있는 진실을 분명히 제시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북-일 평양선언은 전적인 북한 네거티브 캠페인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요한 뼈대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협력관계 구축을 명확하게 내세운 것이다. 나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을 제안해 온 사람이지만, 이 선언을 보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확신했다. 북-일 정상의 합의에 의해 한번 밖으로 나온 사상은 꺼질 수 없다.

그런데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것은 역내의 모든 국가에 살고 있는 코리언이다.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조선인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때가 왔다. 그 근거는 평양선언에서도 제시돼 있다.

11월 중순, 일본에서의 ‘공동의 집’ 구상의 또 한 사람의 제창자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심포지엄 ‘코리언 네트워크’를 열었다. 의미깊은 실험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각국에 사는 한국인은 자신들이 동북아시아의 인간적 협력을 위해 일할 가능성을 가진 주체라는 자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주체가 돼 일할 역량이 준비돼 있는가를 물었다. 우리 일본인은 재일 코리언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희망과 좌절을 경험했는가. 그러나 동북아시아의 최후의 희망은 한국에 걸려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