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외체류자 투표권 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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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해외체류자 투표권 논의’를 생각한다
  • 정길화
  • 승인 2006.12.29 09: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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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문화방송 피디)
해외체류국민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논의되는 모양이다.

현재 논의중인 대상은 주로 일시해외체류국민이라고 하는데 그 대상자가 100만 명 내외라고 하니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우리는 몇십만 표 이내로 당락이 갈리는 박빙의 대선을 이미 겪은 터다.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정가의 주판알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필경 정치권은 정권도득(政權圖得)의 차원에서 유불리와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외교관 등 해외에서 근무중인 공무원은 물론 해외 주재상사원·사업가·유학생 등 한국국적을 보유하고 국내에 주소지를 둔 사람 중 해외에 일정기간 체류하고 있는 자에 대선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권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주소가 말소된 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니 일부 영주권자들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어느 정당에서는 1백84만 명에 달하는 해외영주권자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든 아직 논의의 단계고 확정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면서 우려의 시선을 거둘 수 없다. 모국인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드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우리 교민사회는 작금 논의에서처럼 투표권이 부여되면 필경 정치적 입장이나 한국내 연고와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될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역사적으로도 해외 동포사회의 분열상은 분단과 한국의 엄혹한 독재정치 상황 등으로 첨예하게 드러나 고착화되어 있다. 투표권이 없는 지금에도 그런 마당에 향후 이같은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해외체류국민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영주권자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같은 우려는 방송 프로그램 취재차 여러 번 외국을 갔다온 바 있고, 또 해외연수도 다녀온 바 있는 필자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우선 한국인들의 과도한 정치지향성이다. 이민을 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인의 정치지향성은 이민자 특유의 보상심리 속에서 인정투쟁, 감투싸움으로 나타난다.

일부 교민들은(어디까지나 일부다) 현지 주류사회에의 성공적인 진입보다 한인 사회 내에서의 감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대한무슨회가 있으면 비슷한 명칭의 한국무슨회가 있다. 한국에서 예산이 지원되는 기념사업 같은 것이 있으면 유사 단체가 여러 개 만들어져 헤게모니를 다투고 줄대기도 치열하다. 어떤 나라에서는 그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한인회가 활동중이었는데 마침 그 지역 이름을 단 한인회가 없자 재빨리 그 도시명의 한인회를 만들어 틈새를 공략하는 광경도 직접 본 일이 있다. 그렇다고 앞서 말한 한인회가 해당국에서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교민들의 이익을 위해 뚜렷한 활동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결국 자리싸움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보니 유력 대선 주자들이 해외 현지를 방문하자 그때마다 교민사회가 크게 출렁였다. 지연, 혈연, 학연, 정치적 입장 혹은 사업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이런저런 지지모임이 출몰하고 눈도장을 찍으려 줄을 선다. 그리고 지지자가 다른 사람끼리는 서로 상종도 않으려 하고 심지어 삿대질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일시 해외 체류 교민들(상사 주재원, 유학생 등) 중의 일부는 마침내 투표일엔 불안해 보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기 위해 분연히 한국을 들어가는 이도 보았다. 열성적인 지지자라면 못할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대선 와중에 심각히 드러난 교민사회의 분열상이었다. 현지에서의 활동보다 떠나온 한국의 선거에 일희일비하는 한인들의 행태가 주재국에서 어떻게 비칠지도 궁금하다. 지금도 그럴진대 투표권이 부여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납세나 병역을 이행한 일시 해외체류 국민들이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은 참정권에 관한 국민의 엄연한 권리다. 현지 주류사회에의 관심과 정착이 더 소망스러운 영주권자와 달리 일시 해외체류 국민들은 주재기간이 끝나면 혹은 유학생활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올 사람들이고 그러기에 자신의 정치적 의견과 이해관계를 투표행위로써 실현해야 할 필요와 당위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후 야기될 이 명백한 재외 한인 사회의 분열을 어떻게 할 것인가.

투표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절차이며 선거는 거대한 정치적 축제이니 그 결과로 어떤 후유증이 있더라도 이는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할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 해외 교민사회가 진정으로 그런 비용을 늠연히 감당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작금 해외체류국민 투표권 부여를 논의하는 정치권에 이 질문을 진지하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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