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실체 가늠케 한 그들만의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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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실체 가늠케 한 그들만의 송년회
  • 임용위
  • 승인 2006.12.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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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스타 팬클럽 행사 참관기
▲ 겨울연가의 남자 주인공 배용준 어빠(?) 팬들의 모임
권상우, 배용준, 안재욱, 강타, 장동건. 한국의 톱스타들 이름이다.  이들에게 무한한 열정을 보내며, 확고한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모두가 멕시코인이다. 새파란 젊은 청년층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중 장년층에 나이어린 소년 소녀들도 많이 눈에 띤다.

한류열풍이 멕시코에 조용히 밀려들기 시작한 게 어느덧 5년 세월이다. 한국 공관이나 한인회가 부추겨서 생긴 결과도 아니고, 그 열풍에 부채질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늘 모여서 한국을 동경하는 프로젝트를 구성했으며 좀 더 새롭고 특별한 한국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왔다.

지난 주말, 센트로의 한 원주민 식당에서 벌어진 그들만의 송년회는 그동안 그들이 갈고 닦아온 한류의 실체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도 남았다. 한국의 톱스타들과 한국 자체를 갈망하는 총 7개 팬클럽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화려하지는 않지만 알차고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날(?)을 방불케 하는 축제를 벌였다.

물론 모든 경비는 그들 팬클럽 회원들의 호주머니에서 갹출된 돈으로 충당됐다. 양대 한인신문사가 노래자랑의 시상품으로 몇 가지 선물을 마련해 증정했고, 한국대사관의 공보관이 다 차려진 밥상에 객식구로 참여했을 뿐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제법 큰 잔치일 수밖에 없었던 한류의 총집결 페스티발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크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범위에서 한국인 스폰서를 찾아 나섰지만 성공하지를 못했다. 한인문화원이 사물놀이 팀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수락했고, 두 한인신문사가 극히 서민적이고 소탈한 큰 규모의 식당을 계약할 수 있도록 함께 동행해주었다.

한동안 대사관이 욕을 먹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행사가 원만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공관이 저버렸다는 소리도 흘러 다녔고, 최소한의 성의마저 무시했다는 원성의 질책까지 떠돌았다. 물론 떠도는 얘기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했지만 그 떠도는 얘기가 한류의 대세를 엮어가는 팬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이라 잠깐잠깐 신경이 거슬리기도 했다.

이 공보관이 그의 재임기간 얼마나 이들 팬클럽 회원들에게 정성을 다하며 애지중지했는지를 알고 있던 터라, 몇몇 회원들의 돌출된 의견이 여과 없이 부풀려나간 낭설일 거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이 공보관의 멕시코 재임 말년이 구설수로, 그것도 그가 그렇게 아끼고 보살펴왔다는 팬클럽 회원들에게 허튼소리로 장식돼는 게 우려가 돼 몇 가지 좀 더 신중해 주었으면 해서 여쭤봤을 뿐인데, 행사 현장에서의 이 공보관의 해명이 그리 썩 명쾌하지 않았다는 것이 외려 알쏭달쏭한 의문부호를 가져다주고야 말았다.

어찌됐건 행사는 나무랄 요소 한 점 없이 실속도 알차고 겉보기도 훌륭했다. 한국음식처럼 풍성한 상차림은 없었지만 손님을 맞이하기에 부족함 없는 먹거리로 대접했고, 그들이 스스로 배워 날밤을 세워 만들었다는 맛없는 김밥이 참으로 독특한 메뉴로 인기 몰이를 했다.

퍼즐놀이에 빙고게임으로 틈틈이 테이블간의 흥미진진한 경연대회로 흥을 돋웠고,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한국어 노래자랑대회'에 앞서 공연된 양국간 민속공연이 외려 더 수려한 하이라이트가 되어 주었다. 격렬한 몸놀림과 불꽃놀이가 희귀한 주술 주문이 돋보였던 인디오 춤과, 예전에 비해 훨씬 하모니가 세련되어지고 가락과 장단이 출중해진 한인문화원의 사물놀이 공연이 서로 동적이며 정적인 무대로 대조를 보이는 가운데 200여명의 팬클럽 회원들을 신나게 사로잡았다.

멕시코는 한류 열풍만 있는 곳이 아니다. 오리엔탈을 숭앙하며 찾아나서는 팬클럽의 역사는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나 그 층이 각각 길고도 두텁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점은 그런 팬클럽에 대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본과 중국의 문화원이다. 올 봄에 레포르마의 한 호텔 전시장에서 베풀어진 일본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멕시코인 팬클럽 모임에 필자가 참관한 적이 있었다.

역시 외관상으로 그리 화려하고 장중한 맛은 없었다. 그러나 행사장의 요소요소에서 연출되는 ‘일본 알리기’에 일본 대사관과 문화원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가꾸고 애쓰는 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멕시코인 팬클럽 회원들에게 바둑과 꽃꽂이를 즉석에서 가르쳐 주고 전통 공예(극히 소박한 장식물)와 서예를 잠시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과 함께 일본의 유수한 기업을 홍보하는 일까지 겸해서 일거양득을 취하고 있는, 그야말로 문화와 상업을 동시에 소개하는 상술을 발휘하고 있는 면에서 우리가 넘볼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나도 모르게 심취했던 경험의 날이기도 했다.

행사 당일 식당 내부에 빼곡하게 드리워진 한국의 톱스타 브로마이드들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뭐일까? 그 개운치 않은 여운은 아마도 한국인인 나만 가졌던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중요한 공관에서의 회의를 놓치고 여기서 아까운 시간을 까먹고 있다.”는 말만 공보관에게 듣지 않았어도 그런 느낌은 덜했을 거라는 생각을 도무지 떨쳐버릴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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