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2면.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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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2면. 최종)
  • 홍제표
  • 승인 200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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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내 한 광고문, "쌤 안냐세요? 꾸벅. 철수, 하이루. 방가방가?"
빛 바랜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의 한 페이지. 앳된 모습의 학생이 선생님께 인사하고 있다. 옛 향수를 자아내는 그림이지만 표기법은 요즘 세태를 따랐다.  
무슨 뜻이냐고? 그런 분들을 위해 광고주가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 어릴 적 이렇게 배웠나요…공익광고협의회"
그런데 그 아래서 "까르르" 웃던 여고생들의 대화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물론 사정상(?)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다. 비속어와 은어가 한데 섞여있기 때문이다. 비어나 속어는 듣기에 따라서는 욕에 가까운 말이다.
반면 은어는 특정계층이나 집단내에서만 통하는 일종의 암호. 학교 또는 군대시절의 은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중딩(중학생)과 고딩(고등학생)은 비교적 유명한 은어이고 '왕따'는 표준어급 대우를 받는 '성공한 은어'다. 심지어 법조나 의료, 금융계 등 '점잖은' 계층에서 오히려 은어가 애용되는 편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어린 학생들의 언어생활만 탓하기는 어렵다. 은어가 꼭 부정적이지만도 않다. 어차피 계층과 연령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은어의 태생적인 한계다. 이를테면,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학생때의 은어는 쓰고싶어도 쓸 수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언어의 '탈선'은 도를 넘어선 감이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해독 불가능한 통신언어까지 등장했다. 극단적인 줄임말에다 --*(째려보기)나 -_-;;;(당황해서 진땀빼는 모습) 같은 기호까지 뒤섞여있다. 오죽하면 '외계어 해독기'라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을까.
여기에다 비속어까지 혼용될 경우 사정은 심각하다. 사이버상이라고는 하지만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을 문자로까지 옮길 필요가 있을까. 말이 거칠어지면서 문법이 파괴되는 것도 문제지만 인격파괴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4.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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