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와 영암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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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와 영암의 교훈
  • 김병태
  • 승인 2006.12.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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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태(본지 편집위원)
변화의 새바람이 한반도 상공을 돌다가 돌연 핵폭풍이 다가서면서 6자회담이 결렬되었다. 다행히도 강경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수습되어가는 모양이다.

올 한해동안 국가보안법 사학법 언론관련법과 과거사위원회 설치로 정국이 결렬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역시 과거는 흘러가도 들추면 복잡한 일이 생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속 썩이고 지낼수 는 없기에 우리사회의 성숙함에 맞추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수 년전에 만난 최병권 선생으로부터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오래된 비석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유명한 도시인 프라이부르크의 포도주마을에서 보았던 비석은 지역주민들의 뼈속 사무치는 회한의 기록이라 했다.

그 비문은 “그때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로 시작하면서 옛날에 신교와 구교의 기독교 전쟁으로 인하여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3대에 걸쳐 살육과 보복으로 서로를 해쳤던 마을의 역사를 담담히 기술하였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은 복수의 칼날 속에 피폐해진 자신들을 돌이켜 보면서 이제는 광기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화해와 관용을 기원하는 비석을 마을 가운데 광장에다 함께 세운다는 내용의 비문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참으로 가슴이 아리고, 한편 뜨거운 마음이 시공을 넘어서 느껴지는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한편의 휴먼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鳩林)마을의 <평화와 화해의 위령탑 건립추진>이 그것이다.

이 마을은 6.25 한국전쟁때 좌익과 우익에 의해서 죽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고 그로인해 수십 년의 갈등이 상처로 남아있는 현실을 딛고 서로 용서와 화해의 길에 주민 스스로들이 나서서 마을의 역사책을 출간하고 위령탑을 만든다는 것이다.

<비둘기숲에 깃든 공동체 호남 명촌 구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에서 주민들은 그동안 동네사람들도 쉬쉬하며 얘기하지 못했던 군경 등 당시 우익이나 국가권력에게 희생된 주민 70여명의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또한 그 학살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서 수십 년간 억울하게 살아왔던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다.

주민들은 더 나아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6.25 한국전쟁 시기의 불행을 딛고 넘어서기 위해 좌우익을 불문하고 전쟁과정의 희생자 137명 전원의 넋을 함께 위로하는 화해의 위령탑을 건립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과거사를 정리하려고 나서지만 찬반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적 이해득실로 역사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공동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는 영암 구림마을 주민들의 용기와 사랑이 새사회 건설의 초석이 되리라 본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그때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비석이 혼돈과 폭압의 한 시대를 정리했듯이 한국 영암 비둘기숲의 위령비는 우리나라 분단사의 비극을 마감하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평화로 나아가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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