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에 푹… 배우는 이유도 가지가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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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사랑에 푹… 배우는 이유도 가지가지<이란>
  • 주태균
  • 승인 2006.12.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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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란 남부 석유 관련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대거 참여하고 한국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 한글에 대한 욕구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 대사관에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없느냐는 문의가 쏟아지면서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테헤란 한국학교에 부설 주말한글 학교를 올 9월에 정식으로 개교하게 되었다. 때마침 재외동포재단에서 이곳 이란 주말한글 학교의 개교를 축하하고 지속적인 한글 교육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일부 해주면서 그 첫 단추를 기분 좋게 낄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채널을 통해 한글학교 개교 소식이 알려지자 이곳저곳에서 수강생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과연 수강생이 오겠느냐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조였으나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의외로 많은 수강생이 몰려왔다. 처음엔 초급 중급반 정도 편성해 가르치려고 했으나 수강생 일부 중에는 한국에 3~4년간 산업 연수생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도 있고 한국 남편을 둔 이란 여성들도 있어 할 수 없이 상급반까지 편성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 시작은 다소 미약했으나 자원 봉사자인 한글 지도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가 빛을 발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은 초급반 15명 중급반 10명 상급반 4명 정도로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계속 문의해오는 현지인들이 있으나 학기 중간에 들어와 진도를 맞출 수 없어 다음 해 신설반이 개설될 때 수용하기로 하고 일단 미루고 있는 상태이다.

신기하게도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지 3달이 지나면서 많은 현지인이 한글사랑에 푹 빠져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출석하고 있다. 배우는 이유도 갖가지다. 현재 한국 기업 사무실에 근무하는 수강생은 앞으로 한국을 좀 더 알고 기회가 되면 한국에 연수 유학을 가기 위해서란다. 어떤 이는 앞으로 한국-이란 간 무역이 더욱더 활성화되면 전문 통역원이 되기 위해서 한글을 배운단다.

삼성전자, 엘지, 대림 등 한국 유수 기업에 근무하는 수강생이 절반 이상이다. 한글에 대한 열정이 있으니 배우는 속도 훨씬 빠르다. ‘ㄱ,ㄴ’부터 배우기 시작한 초급반 수강생 중 일부는 신기할 정도로 우리말을 잘 한다.

인사는 물론 생활 회화를 척척 하는 것을 보면 한글학교의 책임자로 그 보람을 마음껏 누리는 것 같다.
필자가 학교장으로 전체 관리와 여건 조성에만 주력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상급반을 맡아 지도하면서 이란에 대한 사랑과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금 음미해 보는 순간이 되었다.

상급반 4명은 대부분 한국과 인연이 많은 수강생으로 우리말을 곧잘 한다.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에서 편찬한 한국어 8단계 교재 중 제2권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체계적으로 한글을 배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말은 되는데 읽기 쓰기가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귀로 들은 풍월들이 있어 읽기는 날이 갈수록 발전을 해 현재 분당 150자 정도는 독해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쓰기도 병행해 지도하고 있다. 한국인 남편을 둔 마르전 새색시는 한국 풍습과 호칭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다. 시아버지 시는 무엇을 의미하며 밥을 왜 진지라고 하는지 질문도 가지가지다. 또 설날 추석 풍습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조른다.

정통 아리안 페르시안 새색시다. 까만 머리 그리고 기다란 눈썹, 동양인 1.5쯤 큰 동그란 눈과 오똑한 코는 우리가 보기엔 확실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런 그녀가 우리말을 또박또박 배워가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페르시아어에는 ‘ㅇ’받침이 없다. 또 ‘ㄱ’ 발음 대신 ‘ㅋ, ㄲ’ 발음이 대부분이다. 이런 자음이 들어가는 말을 가르칠 때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수영장’이란 단어를 읽을 때 ‘ㅇ’ 발음이 안 되니 항상 ‘수년잔’이라고 읽는다. 결국은 훈련이 필요하겠다 싶어 코를 꼭 잡고 ‘ㅇ’ 소리를 계속 내도록 하고 입 모양을 둥글게 해 응 소리를 길게 내도록했더니 지금은 거의 정확한 소리를 내고 있다. 또 ‘갑니다’를 이들은 ‘걉니다’ 혹은 ‘캽니다’로 소리를 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말 중에 ‘갸르단(이다, 되다)’이란 단어가 하도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에이브람은 한국에 3년간 목수 연수생으로 일하면서 한국 아가씨를 자기 부인으로 맞았다. 우리 말 수준이 이란 사람 중에는 거의 최고이다. 간간히 필자 통역을 도와주고 있다. 아직은 한자어로 된 어휘력은 부족하나 일상생활 회화는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내년에 한국어 인증시험에 응시해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를 간직한 이란인들이 한글을 한 자 한 자 배워가는 모습은 정말 신기롭기 만하다. 땅 속에 무진장한 기름통과 가스통이 가득한 이란에 한국을 알리고 두 나라간 문화 교류의 매개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한글 주말학교가 더욱 더 열풍을 일으키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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