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지역 한인 신문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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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지역 한인 신문약사
  • 구본규
  • 승인 200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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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일제의 탄압을 받아 언론활동을 제대로 펴지 못했던 한말·일제강점기에 러시아지역 한인언론은 민족의식 고취와 계몽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러시아지역 최초의 한인신문은 1908년2월26일 블라디보스톡 구개척리에서 창간되어 3개월간 일간으로 발행된 '해조신문'. 실질적 창립자는 한인사회의 유력부호였던 최봉준이었고 발행인과 편집인은 최봉준의 조카 최만학(최레프)과 러시아인 듀코프, 주필은 장지연이었다.
해조신문에 이어 '대동공보'가 1908년11월18일 같은 지역에서 창간되었다. 창간 당시 사장은 차석보였으나 1909년1월31일 한인사회 최고원로인 최재형이 사장에 취임, 1910년5월5일까지 활동했다. 발행인겸 편집인은 유진률(유가이 니콜라이), 주필은 이강이었다. 주2회 발행된 대동공보는 1910년8월18일 '대동신보'로 개칭하기도 했으나, 한국을 강제병합한 일본의 압력을 받은 러시아당국에 의해 1910년9월1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 후에도 한인신문 발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1910년초 대동공보의 속간을 주도했던 청년들은 1911년 근업회를 결성하고 러시아당국에 신문발간허가를 수차례 청원한 결과 1911년6월18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대양보'를 주2회 발간할 수 있었다. 발행인은 대동공보의 발행인이었던 유진률, 주필은 신채호였다. 얼마후 대양보가 재정난에 부딪히게 되자, 근업회측은 이종호의 권업회발기회측과 통합하고 운영권을 이종호에게 넘겼다. 그러나 대양보는 유진률과 이종호가 대립하는 와중에 인쇄기가 도난되면서 사실상 정간되었다.
대양보를 계승, 1912년5월5일 발행된 '권업신문'은 1911년12월19일 창립된 최초의 한인자치기관 권업회의 기관지였다. 주1회 순한글로 발간되었으며 주필은 신채호, 김하구, 이상설, 윤해 등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간행된 신한민보, 신한국보와 함께 1910년대 해외한인의 대표적 항일언론으로 이름을 떨쳤던 권업신문은 제1차대전 발발로 1914년8월29일 126호를 마지막으로 러시아당국에 의하여 폐간되었다. 같은 시기에 자바이칼주의 치타에서는 월간잡지 '대한인정교보'가 대한인국민회시베리아지방총회의 기관지로 1912년1월2일 창간되어 1914년6월까지 총11호 발간되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후 언론자유가 허용되면서 '한인신보'와 '청구신보'가 발간되었다. 한인신보는 권업신문을 계승하여 항일논조가 강했던 신문. 1917년7월8일 신한촌민회의 기관지로 주1회 발간되었다. 발행인은 한용헌(한안드레이 콘스탄지노비치), 주필은 장기영, 김하구였다. 1917년7월5일 현재의 우수리스크에서 창간되어 주1회 간행된 청구신보는 러시아국적취득자들인 원호인들로 조직된 전로한족회중앙총회의 기관지였다. 창간위원은 최봉준, 문창범, 전보리스, 주필은 조완구, 박은식, 윤해, 남공선 등이었다. 1918년 체코군 봉기이후 연합군이 체코를 승인하게 되자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한족상설의회로 바뀌면서 청구신보 역시 '한족공보'로 개칭하였다. 하지만 연합국의 무력개입으로 시베리아내전이 시작되어 일본의 협력을 받은 백위파가 러시아극동지역을 석권하면서 이 두 신문의 발간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전체 한인사회를 상대로 한 신문 발간이 재개된 것은 시베리아내전이 끝난 1923년의 일이다. 1923년3월1일 신한촌에서 3·1운동 4주년을 기념하여 '3월1일' 이 창간되었는데, 주필은 이백초였다. '3월1일'은 4호부터 제호가 '선봉'으로 변경되었고 발행기관 역시 전동맹공산당 해삼현(블라디보스톡현)당간부고려부로 바뀌었으며 발행장소도 블라디보스톡 시내로 옮겨졌다. 1929년4월 발행기관이 전동맹공산당원동변강위원회와 직업동맹원동변강쏘베트로 바뀌면서 하바로브스크로 이전하였다가, 1933년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옮겨 1937년9월12일까지 발행되었다.
선봉은 1937년 강제이주후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로 이전하여 사실상 폐간되었다. 선봉은 '레닌기치'로 제호를 바꾸어 서재욱을 주필로 1938년 5월 15일 복간된 이후 50여년을 '레닌기치'란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1978년 알마타로 이전한 레닌기치는 구 소련의 개혁개방이후 1991년초 고려일보로 개칭되어 자유신문이 된 후 오늘날까지 간행되고 있다.(1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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