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범 주 상원의원 재독동포 격려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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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범 주 상원의원 재독동포 격려 강연
  • 황성봉 재외기자
  • 승인 2006.11.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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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에서 세번 째가 신호범 의원, 그 왼쪽이 김두한 유럽기독실업인회 총회장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오른 한국인 입양아 출신 신호범(71) 박사가 지난 18일 독일 뒤셀도르프와 19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 '한민족의 21세기 나갈 길'을 주제로 강연했다.

신 의원은 유럽기독실업인(KCBMC·총회장 김두한)이 주관하고 KCBMC 뒤셀도르프지회(회장 김인식)가 주최한 이번 집회에서 '거리의 깡패소년'에서 미국 주 상원의원으로 진출한 신 의원의 간증을 듣고자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신의원은 193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되어 고아 아닌 고아로 길거리를 헤매던 중 6·25때 미군을 만나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다 군의관 Paul씨에게 입양돼 18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교수가 된 후 미국 상원 부의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양아버지인 Paul씨의 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원래 성씨(姓氏)인 신씨를 고집하는 대신 양아버지의 성을 이름으로 쓴다(미국 이름).

69년부터 대학교수로 일하다 92년 정계에 입문했다.

워싱턴주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98년 11월에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도전,“나는 한국전쟁 고아 출신의 입양인으로 이제 미국에서 은혜를 받은 만큼 봉사하고 싶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선거기간 중 하루 11시간씩 강행군을 하며 지역구내 2만7000가구를 모두 방문한 끝에 백인이 93%에 달하는 지역에서 승리했다.

2002년 11월 재선에 성공, 2005년 워싱턴 주 상원의원 부의장이 된 뒤 금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또 다시 당선되어 3선 주 상원의원이 되었다.

KBS가 선정한 해외동포특별상과 2003년 전 미국 최고 해외이민자상, 최우수 상원의원상, 세계YMCA 공로상, 재외동포재단 '자랑스러운 한민족'으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기적의 역사' 와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거리 소년에서 상원 의원까지' 등이 있다.

한편 신 의원은 지난 27일 한국을 방문, 충남 공주대에서 수여하는 명예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주대는 신 의원이 전 세계 입양아들을 위해 헌신하고 재미 교포들의 권익과 지위를 크게 신장한 점을 높이 평가, 명예교육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신 의원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랜 외국생활과 정치활동 등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강연내용 요약>

저는 1954년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한국을 떠날 때 어렸을 때 너무 많은 고생을 하여 침을 뱉고 떠났습니다. 양부모는 참으로 친절했지만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부터 하나님을 믿고 항상 기도를 했습니다.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데 어렵습니다. 도와주세요, 나중에 제가 도와 드릴께요’ 라고 기도를 했으며, 양부모 님의 도움으로 1년 4개월만에 합격했습니다.

1994년 연방하원 선거에 이어 96년 워싱턴주 부지사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자, 저는 시름을 달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홀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조선아' 할머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는데,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항거하다 무참히 살해됐다고 합니다. 항상 조국을 그리다가 딸의 이름을 '조선아'라고 지어줬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의 역경을 어찌 제가 미국에 와서 고생한 것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곳을 떠나며 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정치권력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민족 출신의 정치인을 양성시키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50개 주가 있는데 한 주에 한 명씩 만들어서 50명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있었던 상·하원, 주지사 선거에서 한인이 14명 당선되었는데 그 중 3명이 제 제자입니다. 정치에 진출할 것을 조건으로 학비를 지원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恨)을 풀려면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정치인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날 밤 10시에 다들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저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1.5세 학생들 두 명이 찾아와서 감사 드리러 왔다고 말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부모님께서 이민 오게 되어 따라왔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정치는 꿈도 못 꿨는데 당신이 성공해서 우리에게 꿈을 주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때 결심을 한 것이 이런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겠다고 생각해 장학회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은인은 ‘서두수 박사님’이십니다. 서툰 한국말을 월·수·금 매일 3시부터 5시까지 3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서두수 박사님이십니다.

유태인들은 19세기 미국에 와서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금융경제를 거의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채 600만 명도 안 되는데 당당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시의원과 연방까지 18퍼센트가 유태인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뭉쳐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종교적 모임에 자주 가는데 모자를 쓰고 인사를 하며 그들의 족보를 낭독합니다. 아픈 과거를 낭독하며 ‘우리는 해야 한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영리한 것은 아니나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21세기에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계는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19세기는 어딜 가나 좋은 농장을 찾았습니다. 그 다음 20세기에는 공장을 찾았고 21세기엔 아이디어를 찾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Why' and 'How'(왜 그리고 어떻게)를 반복하여 무한한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 한민족이 살아가야 할 길입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씨를 뿌리면 고국의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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