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재정지원은 상징적<독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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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 재정지원은 상징적<독일편>
  • 황성봉 재외기자
  • 승인 2006.11.0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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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역에 35개 한글학교 산재

▲ 재독한글학교교사연수회 기념촬영, 앞에서 두번째 줄 오른족에서 다섯번째가 윤인섭 주독한국교육원장, 그 왼쪽이 강여규 재독한글학교장협의회장(겸 하이델베르크 한글학교장)
현지 실정에 맞는 교재와 교수방법 독자 개발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 동안  중부도이칠란트 올페의 청소년수양관에서 재독한글학교 교사연수회가 열렸다.  이 연수회는  주독한국교육원(원장 윤인섭)이 주최하고 삼성유럽본부(본부장 양해경 사장)가 후원하여 해마다 10월 하순에 열린다. 

이번 연수회 역시 예년과 다름없이 베를린, 킬,  함부르크, 하노버, 뮌스터,  도르트문트, 복흠, 뒤셀도르프, 본,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칼스루에, 하이델베르크, 자알란트, 뮌헨, 프라이부륵 등  도이칠란트 전역에 산재해 있는 35개의  한글학교에서 약 90여명의 교장·교사 등 관계자들이 열성을 보이며 참가했다.  특히 가장 남쪽인 뮌헨한글학교(이명옥 교장)에서는 왕복 16시간의 먼길을 무릅쓰고 3명의 교사가 참가하는 대단한 열의를 보여 주어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한편 한국 국제교육진흥원에서 이형섭, 조영기 강사가 초빙되어 왔고,  주프랑스 한국교육원 김차진 원장이 특별히 방문하여 재독한글학교 교사 연수에 깊은 성의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재도이칠란트한국동포사회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파상적으로 독일에 온 7963명의 광산근로자들과 1965년부터 1976년까지 독일에 온 10032명의 간호사들을 근간으로 형성되었다. (이중 상당수는 카나다·오스트랄리아 등 제삼국으로 옮겨가거나 귀국하고 현재는 약 3천명의 광산근로자 출신 교민들과  약 5천 명의 파독간호사 출신 교민들이 도이칠란트에 살고 있다.)

60년대 후반까지는 3년 고용계약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계약조건으로 인하여 한글학교는커녕 교민회조차 형성되지 못했지만,  60년대 말부터 성실한 근무실적이 인정되어 근무계약을 연장하고 체류허가도 무기한으로 연장되자 파독광산근로자들과 파독간호사들의 결혼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물론 독일인 이성과 결혼하는 한독가정도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초에는 도이칠란트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부분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었기에 자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쳐 줄 시간은커녕 함께 놀아줄 시간도 매우 부족했다.  또 한독가정의 한국인 배우자들은 자녀들이 도이칠란트 말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또는 아버지)나라의 말도 함께 배우기를 원했다. 

▲ 하노버 한글학교 학생들이 추석날 송편 빚는 법을 배우고 있는 광경
이런 필요에 의하여 1973년 3월 당시 한국인 광산근로자가 가장 많았던 도이칠란트 중서부지방 아헨에 한글학교가 최초로 세워졌다.  한 도시에 한국인 유학생이 상당수 있었던 아헨공대가 있었기에 한국어 교사를 구하기가 다른 도시에 비해 수월했기에 한글학교 설립이 가장 빠를 수가 있었다.

이어 같은 해 4월에 한국인 간호사가 많이 근무하고 유학생이 많은 쾰른에도 한글학교가 세워졌다. 이 두 학교의 설립에 자극을 받은 각 지역의 한인동포들이 잇달아 거주지역에서 한글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75년에는 마인츠(1월)·함부르크(8월)에,  76년에는 프랑크푸르트(1월)·복흠(11월), 77년에는 뒤셀도르프(8월), 78년에 하노버(4월)·도르트문트(8월)·크레펠트(10월), 79년에 뮌헨(10월), 80년에 베를린(8월)에 각각 세워져 도이칠란트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한 자녀들에게 한글교육을 병행했다. 

그러나 재정의 어려움으로 도이치란트학교의 교실 서너 개를 주말에 빌려 사용하는 주말학교에 불과했으므로 교육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못했다.  교실은 무상으로 빌려 썼지만 교실의 난방비와 전기요금의 일부를 부담해야 했고, 또 대부분 유학생인 교사의 봉급도 만만치 않게 재정을 압박했다.

도이칠란트 경제가 좋았던 80년대 초까지는 도이칠란트 교육단체 또는 교회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한글학교도 있었지만 대부분 학부모들이 재정을 분담하는 한편 주독한국대사관을 통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재독동포사회의 요청에 따라 1981년 8월 당시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주독한국교육원>을 설치하고 장학사급의 교사를 원장으로 파견해, 한글학교 지원 업무를 제도화했지만, 재정지원의 규모는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해 한글학교 관계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원을 통해 교육부가 지원하는 교재 역시 현지 실정과 맞지 않아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교재를 개발하는 어려움이 있다.

▲ 유럽한글학교협의회 결성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
주독한국교육원은 한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열흘간의 <한국어·문화 집중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교사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가을에 <교사연수회>를 열고 있다.
이 교사연수회에서는 교사들이 현지 수업 경험을 통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수업방식 또는 교재들이 발표되고 그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가려 뽑아 시상도 하고 있다.  

또 한글날을 기념하여 온 라인 상에서 도이칠란트 전국의 한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글짓기·그림·서예의 솜씨를 겨루는 <한글날 기념 우리 솜씨 자랑대회>를 열어 한국을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한편 도이치란트 전 지역에 산재해 있는 한글학교 관계자들은 교육원 설치와 더불어 교육원의 업무 파트너 필요성에 입각해 35개 한글학교교장들이 업무를 협의하는 <재독한글학교교장협의회>를 결성해 교육원과 함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재독한글학교장협의회는 해마다 3월 첫 토요일에 재독한인총연합회가 주최하는 <삼일절 기념 재독한국청소년 우리말 웅변대회>를 지원하며,  5월에는 35개 한글학교가 참여하는 <한글학교 연합운동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재독한글학교장협의회의 성공 사례를 기반으로 지난 4월 7일부터 9일까지 도이칠란트 뮌헨에서 유럽한글학교협의회준비위(위원장 강여규) 주최로 열린 <제2회 유럽한글학교 교사세미나>에 참가한 유럽 9개국에서 온 1백여 명의 한글학교 교사들이 <유럽한글학교협의회>를 결성하고,  강여규 재독한글학교교장협의회장(하이델베르크 한글학교장)을  회장으로, 이명옥 뮌헨한글학교 교장을 사무총장으로 선출했다.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강여규회장은 “유럽한글학교협의회를 통해 교사자질 함양, 재정확보 등 각국에서 한글학교들이 개별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유럽의 한국인 2세 청소년들에게 한국문화, 한국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청소년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원진은 부회장에 박장희 파리한글학교 교장(프랑스), 지성구 에이븐 한글학교 교장(영국), 최미경 이태리한글학교 교장(이태리), 송영선 암스테르담 화란한인학교 교장(네덜란드), 김성환 마드리드한글학교 교장(스페인) 감사에 곽찬순 로테르담한글학교 교장(네덜란드), 길호갑 앙카라 갈라디아학교 교장(터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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