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코리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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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코리아’를 생각한다
  • 정길화
  • 승인 2006.10.1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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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코리아’는 정부가 한국의 국가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하여 2002년 이후부터 내건 슬로건이다. 아마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선풍에 전세계가 매료되자 이를 재빨리 포착해서 차제에 생동하는 한국의 국가이미지로 포지셔닝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지나간 역사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은자(隱者)의 나라였고 아침이 조용한 나라였다. 그리고 가을하늘이 맑고 푸른 나라였다. 산업화가 늦어 이 땅에는 오래도록 들을 파헤치고 산을 깎아내는 폭파음도 없었고 공장기계가 돌아가는 굉음도 없었다. 그저 동창이 밝았으니 노고지리 우짖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저개발국가에 달리 내세울 것이 없으니 고작 하늘 타령만 했을 따름이다. 은근과 끈기가 자신들의 미덕이라고 자임했으나,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퇴영과 무기력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랬는데 이제 스스로 일러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칭한다.

사실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어도’ 한국이 다이나믹한 것은 맞다. 잿더미만 남은 전쟁을 치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마침내 치열한 투쟁 끝에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원조를 받던 처지에서 이제는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전직 대통령이 수갑을 차는가 하면 사형수 출신이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외환위기에는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고, 붉은 악마와 촛불 시위가 광화문 거리를 가득 채운다. 그런가 하면 전혀 다른 이유로 시청앞 광장이 성조기로 뒤덮이기도 한다. 5년에 한번씩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주요 포스트의 인력이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진다.

어떤 정책은 냉탕과 온탕을 무시로 반복한다. 반년도 안 되어 아파트 가격이 십 몇 억씩 오르고, 국회 다수당을 차지했던 여당이 2년 만에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기도 한다. 쓰나미가 있는가 하면 싹쓸이도 있다. 정말 이보다 더 다이나믹한 나라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이런 조변석개, 좌충우돌의 현상을 본 모 외국 인사가 하도 신기해서 덕담으로 한마디 했다고 한다. “한국은 참 다이나믹한 나라군요...” 이걸 진심으로 하는 칭찬인줄 알고 덜컥 ‘다이나믹 코리아’를 채택한 것은 아닌지... 또는 이 슬로건의 등장은 한국인들이 이제 뻔뻔스러워졌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나 이렇게 살래 어쩔래...하는. 어떻든 이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수사(修辭)에 우리 사회에 미만한 불안정성과 집단광기 혹은 쏠림 현상들이 묻혀버리고 합리화되는 것은 아닐까 저어스럽다.

지나치게 역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제(諸) 소용돌이 증후군을 한국 사회의 다이나미즘으로 규정하고 환원시킬 것 같아 적잖이 우려된다. 거칠게 말해 ‘다이나믹 코리아’는 우리 사회가 지향할 만한 가치체계는 아닌 것 같다. 기존의 현상에 그럴듯하게 지위부여를 하는 브랜드네이밍의 소산일 따름이다. 이 작업을 한 어떤 카피라이터는 쾌재를 불렀겠지만 억지 춘향격이다.

철학이 없는 곳에는 효율과 기능만이 있다. 난자윤리와 논문조작에 대한 정직하고도 치열한 고민이 없는 황우석 줄기세포는 한국적 다이나미즘의 귀추를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대중들에게 환상을 심고 역동적인 이슈 파이팅과 코디네이팅을 통해 남보다 먼저 결승점에 가서 수십, 수백조의 국 익을 취하겠다는 옹기장수 계산의 셈법이 결국 어떻게 파산했는지 우리는 처절하게 목격했다. 여기에 한국의 권력과 학문과 언론과 대중들은 피해자이기 이전에 사실상 공동정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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