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경 한번 잘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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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경 한번 잘 했네
  • 구본규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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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을 재발견한다-도심순환코스>
아침 10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동화면세점 앞. 1만원으로 표를 사서 시티투어버스에 올랐다.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웃으며 맞는다. 좌석마다 있는 자동안내기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다섯 나라 말로 손님들이 지나는 곳을 설명해 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승객은 경상도에서 서울구경 왔다는 노부부 뿐이다.
드디어 출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도심순환코스는 광화문을 출발해 남대문시장을 거쳐 전쟁기념관과 미군기지로 내려간다. 다시 방향을 틀어 명동과 남산골한옥마을을 지난 다음 남산서울타워에서 멈춰 잠깐 쉰 다음 북쪽으로 올라가 동대문시장까지 간다. 거기서 종로를 가로질러 인사동까지 둘러보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매주 월요일을 빼고는 1년 내내 운행하지만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운행한다.
손님들은 안내지도를 보고 원하는 곳에서 내려 관광을 할 수가 있다.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가서 다음 버스를 타면 된다. "차표 한 장 손에 쥐고" 하루 종일 시티투어버스를 탈 수 있는 셈이다.
남산타워를 오르는 길에 접어들자 기사가 왼쪽을 보라고 알려주었다.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수궁에서 탑승한 마이클 루이스씨가 남산타워에서 내렸다. 호주에서 이날 아침에 도착했다는 루이스씨는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을 보고 시티투어버스를 알았단다. 그는 미국가는 길에 잠깐 짬을 내서 서울관광길에 나섰다. 가이드는 외국인 중에 그런 경우가 많다고 귀뜸해 줬다.
시티투어버스를 타는 사람은 무척 다양하다. 시티투어버스에서 일하면서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부자부터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탄 초등학생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가이드 이종선씨는 그래도 "한국에서 입양한 자식들에게 그들이 태어난 곳을 알게 하려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부모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시티투어버스가 운행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관광명소가 된 곳도 있다. 퇴계로 부근 애견상점이 모여있는 곳이 대표적이다. 일부 승객들은 정류장이 아닌데도 중간에서 내리겠다고 떼를 쓰기도 한다.
장충체육관을 지나자 교통정체가 시작됐다. 청계천복원공사 여파인데 동대문시장까지 거북이 걸음을 했다. 강남지역을 운행하지 않는 것도 교통정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시위가 있는 날이면 정체가 더욱 심해지는데 외국관광객들 중에는 잦은 시위 때문에 한국관광이 꺼려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동대문 시장은 쇼핑을 즐기려는 일본,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 아니나다를까 남산에서 탔던 일본인들은 모두 동대문시장에서 내렸다.
"서울에 사는 분들도 시티투어버스를 타보고는 '어, 서울에 이런데도 있네'하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이드 이종선 씨의 말처럼 시티투어버스는 서울사람도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도심재발견코스이다. (7.1매) 구본규 기자

<서울의 역사를 느낀다-고궁코스>
12시30분 고궁코스를 운행하는 버스에 올랐다. 고궁코스는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비롯해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거기에 서대문독립공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14개 정류장 가운데 역사와 문화 관련 코스가 7곳이나 되는 말 그대로 고궁코스이다. 가이드 신현진 씨는 미주나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노선이라고 일러주었다.
버스는 남대문까지 내려간 다음 유턴을 해서 북쪽으로 올라간다. 시청에서부터 세종로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2002한일월드컵 당시 붉은 축제의 물결로 뒤덮였던 곳이자 촛불시위가 밤하늘을 밝혔던 곳이다. 시청에서 세종로를 거쳐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로 이어지는 선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의 중심을 놓지 않으려 한다.
고궁코스 가이드들이 가장 권하는 곳은 창덕궁이다. 전문안내원들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안내를 해주기 때문이다. 1997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은 조선의 세 번째 임금인 태종이 1405년에 지은 궁궐이다. 1610년부터 정궁으로 쓰기 시작해 1868년까지 2백58년 동안 조선 정치의 중심 구실을 했다. 그런 창덕궁도 일본의 침략과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쇠락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창덕궁에 현재 있는 건물은 대강 3백90칸 정도. 이는 원래 있던 1천8백39칸에 비하면 십중팔구의 건물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그나마 다른 궁궐들에 비하면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까.
창덕궁의 가장 큰 볼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수문장교대의식이다. 조선시대 왕궁을 지키는 수문군이 임무교대하는 장면을 볼 수 있고 수문장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청와대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특히 내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청와대 입구 정류장에는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청와대의 역사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남경의 별궁이 있었고 조선시대 들어와 세종이 경복궁의 후원으로 삼았으며 왕이 손수 농사를 지어보이던 친경지로 사용되었다. 그 후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가 경복궁내에 청사를 새로 지으면서 1927년 총독관저를 이 곳에 지었다. 청와대 본관은 바로 이때 세운 것이다.
청와대 관람은 절차가 복잡하다. 30명이 넘을 경우 단체관람을 신청해야 하는데 희망일 2주전까지 관람객의 인적사항을 제출해야 한다. 일반관람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시간이 정해져 있고 매회 50명씩 관람하도록 되어 있다.  
서대문독립공원은 고궁코스의 마지막 행선지. 서대문형무소가 있던 자리에 조성한 이곳은 일제시대 일본의 잔혹함과 항일운동가들의 고난의 핏방울이 스며있는 곳이다. 가이드 신현진씨는 "간혹 불쾌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고 귀뜸해줬다.
고궁코스는 자녀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어 하는 재외동포들도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창덕궁을 제외하곤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 서울의 500년 역사속으로 들어가는 길에 길잡이가 없다는 건 1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도시 서울답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강국진 기자 (7.3매)

<동포 인터뷰 : 고궁코스에서 만난 제시카 김(16), 제니 김(14) 자매>
오전 도심순환코스의 가이드는 자녀들에게 고국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재외동포들이 방학기간 중 시티투어버스를 많이 이용한다고 귀뜸 해주었다. 그 말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오후 고궁코스에서 어머니와 함께 서울 관광에 나선 제시카(16)와 제니(14) 김 자매를 만날 수 있었다. LA 부근 오렌지카운티의 풋힐 하이스쿨에 다닌다는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동포2세. 창경궁에서 내리는 세 모녀를 따라 같이 고궁관람에 나섰다.
딸들에게 부모가 나고 자란 곳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 서울시티투어 버스를 탔다는 두 자매의 어머니는 "편안하게 서울의 명소를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아이들이 고궁과 박물관도 가보고 시장에서 쇼핑도 하면서 한국을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2주전 한국에 온 이들은 사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8년전 한국에 난생 처음 왔지만 너무 어렸던 탓에 제대로 기억을 못한다. "한국 갔다온 친구들이 무척 재미있었다고 자랑하는 걸 듣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졸랐죠." 고등학교 1학년인 제시카는 "한국 얘기를 해주면 미국 친구들이 아주 관심있어 할 것 같다"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창경궁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사진 찍는 것인 취미라는 동생 제니는 미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고궁의 낯선 전각들과 품계석이 마냥 신기한 듯 디지털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들이 한국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포장마차에서 순대나 떡볶이를 사먹는 것. 한국방송프로그램에서 봤는데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조금 시끄러운 것만 빼면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볼 것도 많고 쇼킹한 면도 있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요." 이들 자매의 신세대다운 한국 방문 소감이다.
30분 동안의 아쉬운 관람을 끝내고 세 모녀는 곧바로 도착한 버스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창덕궁으로 향했다. (4.7매) 강국진 기자

<가이드 인터뷰-청일점 가이드 김종윤(33)>
서울시티투어버스에는 모두 9명의 통역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영어 4명, 일본어 2명, 중국어 3명이다. 하지만 남자는 단 1명이다.
서울시티투어버스의 청일점 가이드 김종윤(33)씨가 그 주인공.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그는 회사원 생활을 하다 서울시 관광통역안내원 모집에 선발돼 지난 2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 8시간 동안 고궁코스는 5회, 도심순환코스는 3회 탑승을 한다. 사이사이 30분간의 휴식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버스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른다.
"관광을 마친 승객들이 잘 구경했다고 말해줄 때 일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공이 중국어라서 중국에서 온 승객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게 되는 차별(?)은 어쩔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 선호하는 관광코스가 다르다는 것. 고궁코스는 중국인들에게는 큰 흥미를 주지 못한다고 한다. 중국에는 더 크고 화려한 궁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대신 이들은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 명동과 같이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일본인들도 쇼핑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주나 유럽지역의 관광객들은 이와 반대로 고궁이나 남산 한옥마을 같이 한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어려운 점도 있다. "가끔씩 승객이 정류장에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다는 항의가 들어옵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근처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있었던 거죠. 어쨌든 그런 불만이 생기면  가이드들이 참 난처합니다."
전문 가이드가 추천하는 서울 관광코스는 어디일까?
"창덕궁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궁의 아름다움을 감상한 다음 근처 인사동에 들러 전통한식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 전경을 보고 저녁에 이태원에서 쇼핑을 하면 서울 구경 잘 한 거죠."(4.9매) 구본규 기자

<운영 어려움 겪고 있는 시티투어버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아셈회의, 한국방문의 해,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서울시가 2000년에 기획한 관광상품이다. 운영은 공모에서 선정된 민간여행사가 맡고 있으며 서울시에서 재정지원을 해준다. 관광코스는 1차로 선정된 서울시내 명소 100곳 가운데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30곳을 가려 뽑았다. 운행중인 차량은 모두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천연가스버스이다. 초창기에는 요금이 좌석버스보다도 싼 1달러였으나 지금은 성인 1만원으로 현실화했다.  
2000년 10월13일 사업을 시작해 그 해 1천5백72명이 시티투어버스를 탔다. 2001년엔 8만5천5백명, 작년에는 8만9천5백명이 이용했다. 하루 평균 250명이 이용한 셈이다. 이중 45%가 외국승객이다.
하지만 올해는 6월까지 2만6천명만 이용하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티투어버스 사업본부 김철호 소장은 "작년엔 월드컵도 있고 해서 손님이 많았지만 올해는 이라크 전쟁에 북핵 위기, 거기다 사스파동을 겪으면서 외국 손님이 많이 줄었고 경기도 바닥이라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면허기간이 만료되는 올 9월13일 이후 서울시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나온 것. 김 소장은 "그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업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놨는데 국제행사 다 치르고 나니까 독자 생존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속보이는 처사"라며 "최소한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만이라도 지원을 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3.6매)구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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