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방문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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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방문 예절
  • 조기붕
  • 승인 2006.08.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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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막 결혼을 했을 때 이야기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후배들에게 늘 주문처럼 말을 하던 한 선배는 내게 일단 결혼을 하면, 최소한 석 달 열흘은 12시가 넘어서 귀가하라고 했다. 그래야 버릇이 제대로 들지, 그렇지 않으면 마누라 버릇 나빠져 평생을 두고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석 달 열흘 동안 속칭 건수가 없어서 일찍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면, 아주 당연하다는 투로 대문 앞 담장 밑에서 기다리더라도 12시는 넘겨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말을 그대로 곧이듣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선배와 정서 하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수시로 밑도 끝도 없이 방문을 해대는 선·후배들의 등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과일이나 소주 몇 병 사들고 집에 쳐들어오면 마누라가 얼른 옷 갈아입고 웃는 낯으로 손님을 대접(술자리가 다 파해 집에 가든, 아니면 좁은 신혼집에서 같이 자든)해야 미덕이었고, 늘 그러한 일은 돌림병처럼 술자리 끝 호기롭게 "우리 집으로 가자"고 손을 이끄는 게 세상사는 재미였던 시절이 있었다.

형제간 같이 친한 친구한테 방문을 예고하는 그런 몰인정하고 계산적인 방문은 정말 피하고 싶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안 가고 말지 했다.

요즘은 세월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어 그런 무식하고 간 큰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당사자는 물론 같이 간 친구들도 좋은 낯으로 대접받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 세상을 달구었던 해외 친지방문에 따른 해외동포들의 고충이 화제가 되었다.

국내 거주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흥미로운 일이었고, 또 앞으로 내 스스로가 접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관심 있게 보았다. 더욱이 요즈음 해외여행이란 게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 지방도시 소재 고등학교에서도 일본이나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가격 또한 국내보다 비싸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간절히 나를 원했던 21세기 초입에서 20세기 중, 후반을 치열하게 살아(가치관의 측면에서) 온 나로서는 합리적이고 정확한 처신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도, 우리가 우연히 아주 낯 선 거리를 배회하는 파격과 정말 마음에 있어 하는 친구를 머나먼 땅에서 우연히 조우하는 즐거움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서로 소통 가능한 상태가 전제돼야 할 것이지만 해외 가는 게 옆집 잠깐 들르는 것이 아닌 바에야 상대방 처지나 문화가 같지 않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상대 입장을 배려하고, 자기의 감정과 행동을 결정하는 조금은 조심스럽고 어려운 방문이 되어야 할 듯하다.

이국의 그리운 얼굴을 찾는 데도 예절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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