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익’이 ‘애국’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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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익’이 ‘애국’하는 길
  • 이종태
  • 승인 2006.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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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증오의 시대인가 보다.

FTA반대범국민운동본부의 대규모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지난 12일, 이에 맞서는 또 하나의 집회가 개최됐다.  이른바 ‘애국우익’이라는 분들이 종로5가에서 진행한 ‘한미FTA 추진지지 국민대회’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날 아주 충격적인 발언이 나왔다. ‘애국우익’ 세력의 대표적 매체로 자부하는 한 인터넷언론이 자랑스레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집회의 연사였던 박근 한미우호협회장이라는 분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FTA에 찬성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김정일과 친북세력들이 이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정말 노골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다. 이건 애국도 우익도 아니다. ‘FTA에 찬성하는 이유’가 ‘자유무역에 따른 국부증대’도 아니고 ‘대미수출에서 중일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함’도 아니라 고작 ‘친북세력들이 반대하기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우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면서 애국까지 하시려면 적어도 이순신 장군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자신을 탄압한 선조와 서인 주전파에 반대하기 위해 서해에서 일본군의 북진을 막지 않았다면 이 나라는 그때 망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애국우익’이라는 분들이 각종 과격한 주장을 펼쳤던 ‘교리’의 핵심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세력이 ‘친북좌파’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FTA에 반대하는 것이 ‘친북세력’이라면,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의을 가지고 강행 중인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반북우파’? 박근 회장은 이른바 ‘애국우익’ 세력의 교리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발언을 한 책임을 기꺼이 져야할 것이다.

하긴 어쩌면 머잖아 ‘애국우익’ 세력은 노무현 정부가 반미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일부러 한미FTA를 추진했다는 시나리오를 발표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애국우익’의 교리상 모순이 해결되지 않겠는가.

증오는 바람직한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 상당히 생산적일 수는 있다. 예컨대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이 일본을 증오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현실판단, 그리고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않는 증오는 억지에 가득 찬 코미디를 생산할 뿐이다.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유니폼이 인공기를 모방한 것이라는 한 ‘애국’ 인사의 발언, 오세훈 서울시장, 이재오 의원, 뉴라이트 같은 분들까지 위장 좌파로 몰아가는 기막힌 편벽성 등은 블랙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애국우익’을 자처하는 분들에게 당장 ‘증오’를 벗어 던지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세계관의 중심이 ‘친북좌파’인 분들이 이를 포기한다면 그 후에 올 것은 아노미 상태밖에 없으니까. 다만 ‘애국우익’의 다음 집회를 조금 더 생산적으로 치르시려면 인터넷만 뒤져도 산더미처럼 널려 있는 한미FTA 관련 자료라도 읽어 두시기를 권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그리고 한미FTA에 대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주제는 ‘정적 말살’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미러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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