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미FTA, 국민에 길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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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미FTA, 국민에 길 물어라
  • 박상석 편집국장
  • 승인 2006.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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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이 이렇다 할 진전 없이 파행으로 끝났다.

미 협상단이 우리정부의 ‘건강보험 약값 책정 적정화 방안’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판을 깨고 나선 것이다. 협상에서 얻은 것이라면, 두 나라 간 입장 차를 확인한 정도다.

그렇다 해도 서둘러서는 안 된다. 미국은 협상시한을 내년 6월말로 스스로 정하고 있다. 빠른 타결을 유도하는 미 대표단의 의도가 곳곳에서 읽혀진다.

이는 핵심 쟁점 중 ‘의약품, 스크린 쿼터, 쇠고기 수입, 자동차 배출가스 등 4대 전제조건이 결코 협상대상일 수 없다’는 오만과 자신감에서 비롯한다.

정부는 1998년 9월 체결한 한-일신어업협정을 교훈 삼아야 한다. 일본의 일방적인 1차협정 파기선언 이후 준비 없이 끌려다닌 끝 8개월만에 협정타결을 발표하고, 다시 4개월만에 실무협상마저 허겁지겁 봉합한 결과가 오늘 어떤 상황을 빚어내고 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협상단이 ‘내 손으로 깃발 한번 꽂으리라’고 마음먹는 순간 역사는 다시 한번 뒤틀릴 게 뻔하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업고 협상테이블에 나온 미측 대표단에 맞서 우리대표단이 예상보다 훨씬 신중하고, 당당하게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여느때와 달리 협상단과 각 부처, 정부와 국회, 청와대 간 엇박자도 눈에 띄지 않는 점이 낯설고, 또 희한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지나친 평가일까?

협상기간 내내 ‘FTA 반대’목소리가 거셌다. 정부는‘FTA 반대론’과 ‘FTA 신중론’주장이 ‘과장 왜곡돼 있다’면서 ‘망하자는 정부가 어디 있냐’고 항변한다.

반대진영에서는‘FTA는 곧 한-미간 경제통합을 의미하며, 그것은 사회·문화·정치적 종속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정부를 맹공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춤을 춘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정부를 포함한 찬성론자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반대론자나 신중론자를 편들지도 않는다. 혼란스러워 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해 “다음세대를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라 한다. 개방을 통해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제도를 선진화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김현정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과 미국 간 경제고속도로를 놓는 일”이라고 비장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김 본부장의 소신과 믿음 때문에 ‘한 번 믿고, 힘을 실어 달라’고 버티는 건 무책임에 다름없다.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국민과 하나 되어야 한다. 가슴 열고, 국민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FTA로 선진자본과 기술유입이 이루어지고, 대외의존도 70%의 구조적 한계로 고전중인 우리경제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데 어느 국민이 반대하겠는가. ‘망하자는 정부’가 아니라 하면서, 설마 4500만을 ‘망하자는 국민’이라 의심이라도 하는가?

FTA가 우리경제에게 약이 될 지, 독이 될 지 확신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누구라도 이러저러한 계산식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동성을 상당부분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예측에 불과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그래서 함부로 계산키 어려운 복잡 다양한 요소들이 오히려 더 많기 때문이다. 경제 외적 부문의 경우, FTA의 손익계산 자체가 애당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정부는 각계 이해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중지를 모을 수 있도록 멍석을 편 다음 협상장으로 나가도 늦지 않다.

경제통합에 앞서 취하겠다는 분배 시스템 정비도 좋고,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강구하겠다는 중소기업 대책도 좋다. 일자리 창출과 사회 안정망 구축 등 FTA 시행 전의 점검과제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다 좋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국민에게 FTA를 묻지도 않았고, 국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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