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국적과 노무현화법 읽기
상태바
이중국적과 노무현화법 읽기
  • 한겨레
  • 승인 2003.07.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설명) 병역 기피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상징이 돼버린 가수 유승준씨. 병역 기피 '얌체족'에 대한 분노를 넘어, 모든 재외동포와 비한국계 외국인을 동등 대우하는 차원에서 이중국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입국 금지조처가 일시 해제된 유씨가 지난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


‘미국 시민’이란 특권을 이용해 병역을 기피하는 얌체족을 규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단일한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는 민족에 대한 신화가 세계화 속에서 약화하는 현상으로 이중국적 문제를 바라볼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한, 이중국적 문제는 민족 내부만이 아니라, 외국인 이주노동자로 대표되는 비한국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성찰도 나왔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지난 26일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적 정체성’을 주제로 마련한 개원 25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발표문 ‘세계화, 계급이해와 민족정체성’에서 “언어와 문화를 토대로 한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은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는 이민자들의 급증, 해외 거주 교포들의 국내 유입 등 이른바 ‘디아스포라’(민족 이산)에 따라 점차 그 의미를 잃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런 민족 정체성 약화 현상은 민족 개념이 간직하고 있는 ‘통일성’을 훼손하는 위계적인 차이가 드러남에 따라 더 촉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교포들이 미국·일본·유럽·독립국가연합·중국 등 거주지역에 따라 남한 안에서 각기 다른 제도적·심정적 대우를 받게 되면서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이 ’실체적인 차별’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헌법 불합치 판정으로 올해 말까지 개정해야 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은 99년 시행 이후 △경제활동 자유 △의료보험 혜택 △부동산 취득·이용 등 시민권을 주는 형태로 사실상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재외동포 범위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거나 그 직계비속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으로 규정해, 중국 조선족이나 독립국가연합 해외교포들은 적용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에 대한 실천적인 대책도 나왔다. 한도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사회학)도 발표문 ‘민족주의와 이중국적의 불안한 동거’에서 “문제는 주변국들과 외교마찰을 줄이면서 사실상의 이중국적을 미주 동포만이 아니라, 전체 재외동포에게 어떻게 허용할 것이냐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한 교수는 이중국적이 미주 지역 동포와 다른 지역 동포의 문제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법적으로 동등한 외국인인데, 한국인의 혈통만을 같이한다는 이유로 특혜를 준다면 ‘인종차별’을 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주 동포들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처지를,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비한국계 외국인의 처지를 ‘역지사지’하는 태도가 부족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 교수는 “이중국적 문제를 민족주의 틀에서만 바라볼 경우 ‘우리만의 잔치’에 그친다”며 “인종·종교·성별·연령·신념에 의한 차별 금지라는 보편적 규범에 따라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정윤재 정신문화연구원 교수(정치학)는 직설·직접토론·유머가 특징인 이른바 ‘노무현화법’을 권위주의 정치문화 청산을 위한 노 대통령의 전략적·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 교수는 발표문 ‘대통령과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노 대통령이 온갖 비판에도 특유의 어법을 지속하는 이유를 △보수적 기득권 세력의 ‘침묵의 문화’ 약화 △엄숙한 어법으로는 부정적 정치문화를 혁파할 수 없다는 판단 △상대적으로 빈약한 ‘권력자원’의 보충으로 꼽았다.

그러나 지나친 발언 횟수와 다혈질적인 언사, 막말이나 비속어 사용 등 무절제한 언행이 계속될 경우 역효과를 부를 위험을 정 교수는 경고했다.

조준상 기자 sang21@hani.co.kr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