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국민 담화 통해 미국을 늑대라고 비꼬아
상태바
푸틴, 대국민 담화 통해 미국을 늑대라고 비꼬아
  • 백동인
  • 승인 2006.06.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푸틴의 대국민 교서, 분석과 전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 10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러시아의 대외정책의 명확한 진로를 밝혔다.

푸틴의 이번 담화를 전체적으로 분석했을 때, 러시아는 당분간 미국과의 급격한 긴장 관계를 지양하되 과거 구소련에 속했던 현 독립국가연합(CIS)과의 외교관계를 계속해서 러시아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반미 안보 기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의 성격에 관해서는 그 미래에 관해서 확신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푸틴은 지난 주, 한 비공식 모임에서 상하이 협력기구의 미래적 성격에 관해 EU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며 그것이 장차 참가국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다자간 경제협력기구로 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따라서 상하이 협력기구가 푸틴이 의도한대로 장차 유라시아 모든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자간 경제협력기구로 발전할 경우, 우리 정부도 미래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이 기구에의 가입을 타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는 중앙 아시아에 있어서 지역 패권을 놓고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이 기구의 잠재적 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당분간 러시아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는 형태로 이 기구와의 외교적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0년 발표된 대국민 담화에 이어, 이번에 천명된 러시아 대외정책의 변함없는 원칙은 한 마디로 실용주의 노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을 좀 더 세분해서 표현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러시아는 러시아 국민의 이익을 최고 선으로 간주한다고 함으로써 국제사회 일각에서 제기한 것과 같은, 현 러시아 정부가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반민주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비판을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다음 러시아 대외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언급하며 러시아 외교는 국제사회에 그 방향을 미리 알릴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것은 옛 소련이 급작스럽게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결정하고 실행함으로써 그 동안 옛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외교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국제사회에서 비판받아 오던 것에 대해 반성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러시아는 국가 이익을 두고 갈등 관계에 있는 미국이나 기타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군사력을 동원한 직접적인 충돌에 의한 문제 해결보다 국제법에 근거한 평화적인 갈등 해소를 지향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다음은 푸틴의 대국민 담화를 요약하고 분석한 내용.

푸틴은 이번 교서에서, 러시아 국방정책에 관해 언급하면서 “러시아 국민이 어떤 위험에 처해질 수 있는 것인갚를 화두로 해서, 국민의 안정이 러시아 대외정책의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그것은 지난 2000년도에 발표한 국방정책과 비교해서 뚜렷한 변화가 없는 것이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이 흐름을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재차 천명한 것이어서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푸틴은 이날 러시아 국방의 잠재력에 관해서, 러시아의 국방력을 미국과 유럽의 군대와 비교해서 눈길을 끌었다. 현재 유럽국가 가운데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으로서, 푸틴은 현재의 러시아가 이들 국가보다도 적은 국방비를 채택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경향을 부인했다.

푸틴에 따르면 냉전시대에 러시아 국방비 총액은 미국과 비슷했으나 현재는 1/25 수준이라는 것. 그에 반해 "미국이 여전히 많은 국방비를 안보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잘하는 일"이라며 이례적으로 미국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계속된 언급에서 “미국인들이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며 “미국은 늑대”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푸틴은 “그 늑대가 누구를 잡아먹을지 아는구나”라는 어법으로 이라크 침공에 이어 북한과 이란에 대해 강공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대외 전략을 비꼬았다.

9천 km가 넘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주도한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더 3세는 13년간 지속된 자신의 치세 기간 중 단 한 건의 전쟁도 발생시키지 않았다. 러시아 역사에서, 평화 시대를 주도한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는 러시아의 가장 믿을만한 동지는 러시아의 군대와 함대라고 했다. 그 영향으로 스탈린과 브레즈네프는 육군과 해군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날 푸틴은 “러시아 군대는 병든 상태”라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푸틴은 “군대는 적어도 방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러시아 국방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가 러시아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쉽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누구도 우리를 향해 명령할 수 없도록 대외적으로 자율적인 정책을 펼 수 있어야 한다”고 러시아 외교의 독자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푸틴은 "그러나 현재 많은 나라들이 우리 운명을 향해 명령할 수 있다”며 러시아의 민주주의 제도에 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CIS 소속 국가들을 대상으로 소위 오렌지 혁명을 보급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잘 알려진 대로, 현재 독립국연합으로 불리는 구소련에 소속되었던 국가들이다. 지난 5백년 이래로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해왔다. 1913년의 러시아의 영토는 거의 지금의 두 배에 달했으며 스탈린도 그것을 계승해서 서구 일부와 우크라이나 및 밸라루시까지 포함하는 대 소련연방을 구성했다.
그런데 1991년 구소련 체재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러시아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지난 해, 푸틴은 “러시아가 겪은 가장 비극적인 상황은 소련의 붕괴”라고까지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 날 푸틴은 “우리는 다시 구 소련과 같은 연방을 구성할 수는 없으나 독립국가연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와 같은 경제적 협력 체제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거의 한 나라나 다름없는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현재 독립국가연합에 소속한 대부분의 정부는 재정 상태가 대단히 열악하다. 그 동안 학계에서는 만일 러시아가 독립국가연합을 다시 정치적으로 흡수하려 들면 그것이 제국주의로의 회귀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그러한 시도를 자제할 것을 경고해왔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소위 “문화적 사회적 수단의 동원".

러시아 학계는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나라’라는 정체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만일 러시아가 독립국가 연합과 “문화통일”에 성공하면 현재 러시아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혼란도 쉽게 극복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어쨌거나 러시아 외교안보의 최우선 대상 국가들은 독립국가연합이며 미국이나 중국, 기타 아태 지역 국가들 및 그 밖의 국가들과는 많은 대화가 전제되어야 그 다음 단계의 협력이 가능한 만큼 현재적으로는 최우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독립국연합국 가운데 러시아와 가장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는 국가로는 아제르바이쟌과 우크라이나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독립국가연합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고 독립국가로 남으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러시아와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밸라루시와 아르메니아로서 그 가운데 밸라루시와는 현재 구체적으로 국가통합을 논의할 만큼 양국간의 연대가 강화되었으나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를 놓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루카센코 밸라루시 대통령 사이에 한 치의 양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실제적인 국가통합에로의 진입은 현재로 봐서는 난망 상태이다.

두 번의 집권에 성공하고 세 번째 임기에 들어선 루카첸코 밸로루시 대통령은 젊은이들이나 즐길 법한 하키 경기를 국가 대표 수준으로 치을 만큼 강한 체력과 자신감이 충만한 인물로서 그는 최근 벨로루시와 러시아의 통합국가의 대통령 자리를 푸틴에게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내외에 선언함으로써 양국간의 통합논의가 갑자기 시들해지고 말았다.

러시아는 최근 중국과 상하이 협력기구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현재 이 기구의 협력 시스템은 유럽연합에 비할 때 매우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중앙 아시아 국가들은 소련 해체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외교적 선택을 놓고 많은 고심을 해오다가 2002년에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함으로써 친중국 노선으로 선회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중국은 이들 국가들에게 최근, 9억 달러 규모의 경제 원조를 신용차관 형식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기구에서 한 발자욱 멀리 서서 중국의 안보적 태도를 지켜보고 있는 푸틴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이 기구의 장래에 대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갔다.

푸틴은 이어서 러시아가 상하이 협력기구보다 더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EU와의 협력조약에 관해서 언급했다.

러시아와 유럽연합은 지난 1994년에 10년 기한의 협력조약을 맺은바 있다. 이 조약은 1996년에 시작되어 올 해 말에 그 효력이 끝나게 되므로 러시아와 유럽연합은 다시 이 조약의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이 날, 푸틴은 내년의 새 조약이 어떤 형식이 될지 아직 모른다고 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EU의 회원국은 급격히 늘어나 현재 가입국이 25개국이나 되므로 만장일치를 지향하는 EU의 조약 승인 관례상 러시아와 유럽연합은 조약 갱신을 위해서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EU가 겪고 있는 외교전략의 위기는 큰 국가가 겪을 수 있는 위기와 그 성격이 동일하다. 현 EU 지도부는 대 러시아 외교에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EU 내부의 전략부재가 러시아와의 조약 갱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 파장이 주목된다. 그러나 2007년 발효될 러시아와 유럽연합간 새 조약의 성격에 따라 양국 관계는 급속한 변혁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은 미국과의 관계를 간단히 “중요하다”고만 언급하고 세부적 언급은 생략했다. 그러나 미국 군사력의 배치와 운용에 관해서는 잘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을 특별히 언급했다기 보다 여러 나라를 언급하는 중에 미국에 관해 잠깐 짚고 넘어가는 형식이어서 러시아가 현재 미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하고 지나갔으나 어떤 식으로 협력할지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그러나 인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외교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며 특별히 힘주어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태지역 국가들에 관해서는 “아태지역 국가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면서 “러시아와 아태지역 국가들은 협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정도로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날, 푸틴의 대국민담화를 분석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소속 무따기로프 D. Z 정치학 교수는 결국 러시아와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중국과 미국은 "전략적 경쟁자" 관계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1969년의 우수리 강 지역에서의 우발적인 총격전 이외에는 오랜 기간 동안 서로 전쟁 없이 지내온, 역사적 선린관계의 경험이 있으므로 앞으로도 양국 관계는 순탄하리라고 예상했다.

푸틴은 UN은 러시아가 존경하는 기구라고 UN에 대해 좋은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이것이 존속되어야 세계가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국내 여론 일각에서 주장하는 러시아의 WTO가입은 러시아가 그렇게 시급히 바라는 사항이 아니다. 이 날 푸틴은 러시아 국내에 이의 가입을 놓고 극단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강력한 그룹이 있음을 언급했으나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푸틴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정치학자들은 WTO를 반대하는 러시아 국내 세력은 바로 마피아나 범죄집단에 연관되어 있는 러시아의 기득권 세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미국 국무장관 콘돌라 라이사는 “러시아는 머잖아 범죄조직과 혼돈이 될 만큰 파국으로 치달을 나라이므로 러시아와 같이 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극단적으로 러시아를 폄하했다.

이에 뒤질세라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도 “부패는 경제의 암세포와 같은데 러시아는 국내 부패가 극심하므로 속병(암)을 제거하고 그 다음 대외관계에 치중해야 할 것 같다”고 쓴 소리를 남겼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이 현재 러시아가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무질서를 푸틴 탓으로 돌리지 않고 푸틴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러시아의 원래적 문제라고 보는 점은, 다른 나라의 정치환경에 비교해서 보았을 때 러시아의 정치 행태를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다둘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러시아 민주주의의 담론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화자되는지에 관계없이 푸틴이 원하기만 하면 그의 3기 대통령직 연임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으로 판단 된다.

이 날 대국민 담화에서 푸틴은 2년 정도 남겨 둔 차기 대선에서의 자신의 거취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의 정치적 선택을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러시아 정치학자들은 그가 외국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 결국 차기 대통령직을 포기하고 동향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 후배이기도 한 메제베제프 제 1부총리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고 퇴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쉽게 발설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러시아 정치문화의 현주소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