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캐딜락 지렁이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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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캐딜락 지렁이 박
  • 임윤식 (캐나다 거주)
  • 승인 2003.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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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지렁이 박!
토니 정춘성이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옛날 옛날 얘기가 아니다.
최근의 일이고 또 너무도 일상적인 게 아니라서, 어디서 그 얘기 듣고 나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무릉도원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 캐나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나라로 이민 가방과 컨테이너(Container)로 이민 짐
끌고 이민 온지 몇 년 안된 우리 동포님들이 상당히 많다.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이민 온 이민연수 오래된 분들과는 달리 그분네들
대부분은 서울서 올 때 돈을 좀 두둑이 가져왔다고 알려진다. 적게는 몇
십만불부터 말이다. 집과 가게 구입자금 정도는 양복 안 포켓에 넣고 왔다고!
그래서 오자마자, 아니 도착도 하기 전에 토론토 넘버-원(Nunber one) 학군이라는
노스-욕(North York)에 주택 아님 값이 제법 비싼 콘도-아파트(Condominium
Apartment) 산다.
정춘성이 얼마 전 만나 친해진 박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도 남들 하는 대로
따라했다.
나이 쉰 다섯 되도록 일에만 파묻혀 살았다는 박사장!
물론 일도 열심 했지만, 술과 담배, 그리고 여성편력에도 누구 못지 않게
몰입했었다고 박사장은 털어놓는다. 그는 <잘 나가는 한국 중년 남성!>의
표준형이었다고나 할까?
"정형! 내가 이 얘기하면 믿어지지 않을 거요!"
그가 말문을 연다.
"내가 지렁이 잡았다면 누구든 믿지 않을 거요!"
"아니! 박형! 지렁이는 왜?"
그가 캐나다에 와서 우연치 않게 얻은 별명이 바로 <캐딜락 지렁이 박!>이란다.
자녀들이 다 큰 박사장은 오자마자 고급 스포츠-유틸리티(Sports Utility)와 최신
모델 캐딜락(Cadillac)을 구입했다. 내 돈 있어도 고급 외제차 사기가 좀
눈치보이는 데가 서울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큰 맘 먹고 캐딜락을 샀다.
이른 봄에 토론토에 도착한 박사장은 몇 달을 그저 허송세월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지렁이 잡으실 분 구함> 구인광고를 본 것이다.
오래 전에 캐나다에서의 지렁이잡이 얘기를 얼핏 들은 적 있는 박사장은 그렇게
해서 지렁이잡이 아저씨(Worm picker)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날 하루하고서는 두손 들어버린다는 지렁이잡이다.
밤새도록 앉은뱅이 걸음 걸으면서 두 손을 재빨리 놀려야만 그 날쎈돌이
지렁이들을 잡아 뽑아 올릴 수 있다. 군대에서 기압 받는 오리걸음자세이다.
첫날 갔다와서 반 송장이 돼버린 박사장!
그러나 그는 다음날 또 다시 초저녁에 집합장소로 나간다. 이를 악물고서 말이다.
온몸 어디 안 쑤시는 데가 없다.
"내가 여기서 지금 주저앉으면 이제 내 인생은 끝장나는 거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캐딜락 몰고 간다.
그는 돈이 아쉬어 돈벌이로 지렁이를 잡는 게 아니다. 캐나다외환은행에는
기십만불 돈 예치돼 있다. 몇 년간은 아무 일 안하고 놀고 지내도 되는 형편이다.
또 얼리-리타이어먼트(Early retirement) 해도 될 그의 나이이다. 또한 아직도
서울과 고향 경기도 평택에도 그의 소유 부동산이 상당히 있다.
"정형! 나 참 지독한 놈이지?"
"예, 그래요! 결국 박형은 말이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게 아니겠소?"
"정형! 내가 그 지렁이잡이를 그 해 씨즌(Season)이 다 끝날 때까지 만 5개월간
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아니? 그 이틀 하고 그만둔 게 아니구? 정말 대단한데! 박형!"
"정말이라니까! 서울 친구놈들이 들으면 정말 놀랠 거요."
"맞아요! 모두들 기절초풍을 할 거요. 아마도 박형이 캐나다 이민 가더니
외국생활에 적응 못해 살콤 돌아버린 게 아닐까 염려들 할 것 같은데...
하-하-하-"
토니 정이 웃어 재킨다.
"그래 잘 보았어! 이 박아무개가 제 정신 아닌 걸로 들 알게 틀림없지! 그렇구
말구! 하-하-하-"
박사장도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 놓고 큰소리로 웃어댄다.
둘이서 한참을 웃고 난 다음 박사장이 나직히 묻는다.
"정형!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내 별명이 캐딜락 박이 됐는지 알겠어?""
"그야 뭐, 캐딜락 박형이 타고 다니니까."
토니가 당연하지 않느냐?는 어조로 말한다.
"응, 반은 맞았어!"
박사장은 동료 지렁이꾼들에게 자신의 차가 캐딜락임을 모르게 하려고 꽤 신경을
썼다. 그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별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무슨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박사장은 집합시간에 늦어버렸다.
서둘러 집결지에 갔더니 멸치잡이 고깃배, 아니 지렁이 밴-트럭이 이미 떠나
버렸다. 15분쯤은 기다려 줄 걸로 알았던 박사장은 셀룰라-폰(Cellular
phone)으로 전화 건다. 그 날의 행선지를 알아내서 달린다. 구엘프(Guelph)
근처의 골프장이다. 마침내 그 지렁이 밴을 골프장 근처 시골길에서 따라 잡았다.
골프클럽 파킹-랏(Parking lot)에 주차된 낡은 고물 풀-싸이즈 밴-트럭(Full-size
Van truck),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최신 모델 캐딜락!
그로부터 지렁이꾼들 사회에서 <캐딜락 지렁이 박>은 전설적인 존재가 됐다는
옛날 얘기이다.
"정형! 그게 98년도 얘기야! 벌써 5년이 됐네 그려!"
"참! 박형도! 정말 지독하구만! 박형! 다음에 또 어디로 옮기게 되면 꼭 저 북쪽
에스키모(Eskimo) 동네로 가쇼! 박형의 의지력과 끈기라면 거기 가서도
이글루(Igloo) 얼음집 짓고 오래 오래 잘 살 거요 내 보증하리다. 박형!"

2003. 5. 29.
임윤식,
캐나다 토론토 근교, 엘로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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