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만난 영국공인중개사 조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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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만난 영국공인중개사 조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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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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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인중개사 자격증 한인 최초 취득 조태현(59)
   
▲ 영국 공인중개사는 건물주와 구매인·임차인 사이에서 상업용 혹은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 건물조사, 교섭, 계약추진 등 중개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재영한인 가운데는 자격증을 갖고 상업용 건물을 중개하는 재영한인은 조태현씨가 유일하다.
“재영한인과 영국 잇는 다리가 되렵니다”

"부동산 전문 코스인 CEM(The College of Estate Management) 3년 과정 이수를 위해서는 1년에 4과목씩 총 12분야를 공부해야합니다. 매 학기 6번의 과제물 제출과 6번의 시험을 치러 모두 통과(pass)해야 비로소 합격인데 시험이 아주 어려워요. 매 학기 시작 전 라면상자 크기에 가득 담긴 교재들을 받아 볼 때면 앞이 깜깜했습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밤새워 공부하다 나도 모르게 바닥에 쓰러지곤 했지요”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해 한인 최초로 Dip Surv(Diploma in Surveying=영국 공인중개사)자격증을 취득한 조태현씨가 주인공이다. 첫 만남에서 그가 내민 명함에는 Tae Hyeon Cho ’Dip Surv’가 아로새겨져있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가 땀흘려 일궈낸 값진 타이틀이다.

머슴살이 설움에 ‘자격증 따자’

조씨가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지난 2003년.
1998년 부터 현재까지 영국 중개회사에 근무하면서 여러 건의 협상을 성사시켰지만 점차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는 모든 일에 일정 자격을 갖추어야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자격증 없이는 일에 대한 독자적 판단에 따른 거래를 할 수 없었던 것. 다년간의 뼈저린 ‘머슴살이’는 그에게 자격취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어주었다.

주경야독 3년 끝에 ‘합격’통지

이를 악물고 시작한 공부였지만 일과의 병행이 쉽지 않았다.
먼저 학교를 등록했다. 레닝대 CEM컬리지 3년 과정은 한국의 방송통신대학과 같이 직장인들을 위한 코스임에도 일반학생들이 하는 것과 동일한 교과과정을 밟는다. 회사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으면 10분도 안돼 고개가 떨구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어 부인이 흔들어 깨운 적도 많았다. “이렇게 가족들에게 걱정을 주느니 공부를 포기해야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묵묵히 그를 보듬어주었다.
기다림은 곧 그들에게 합격을 회답해 주었다. “합격이다! 합격을 했다” 젊은 현지인들도 힘든 과정을 한번에 통과한 것이다. 오는 7월 15일 그는 학위를 수여 받는 동시에 RICS(Royal institute of Chatered surveyors=영국황실공인중개인협회)의 회원이 된다.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은 이르지만 적당한 시점에 (회사로 부터)독립할 계획이 있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힌다.

한인 부동산중개 ‘내 손안'

영국회사에서 8년 경력의 어엿한 중개사로 일하는 동안 재영한인들의 설움을 누구보다 많이 지켜본 그다. 한국인은 영국중개사를 찾아도 언어, 문화, 사고방식의 차이 등으로 인해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란다.
“건물 소개 중 (영국인과)소통이 잘 안되 부당대우를 당한 한국인에게 한국말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주었더니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그럴 때 마다 느끼는 긍지와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답니다”. 이런 한인들에게 조씨는 어려울 때 나타나 도와주는 ‘슈퍼맨’ 같은 존재다.
현재까지의 실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코트라, LG 등 굵직한 주재상사 건물 중개만 70~80건, 교민들을 위해 20여건 등 100건 정도를 성사시켰다. 80%가 넘는 재영 주재상사 건물이 그의 손을 거친 것을 보면 재영한인과 영국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맡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많은 일을 맡다보면 실수가 있을 법 한데도 그에게는 중개에 대한 불만도, 문제제기도 거의 없다고. 영국회사에서 익힌 관행과 실무경험으로 서비스를 하기 때문이다.

은행지점장에서 실업자로..
또 중개사로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그의 영국생활 곳곳에도 가시밭길과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98년 동화은행 런던 지점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는 IMF 한파에 직장을 잃었다. 동화은행이 현 신한은행으로 합병되면서 한 순간 잘나가던 은행 지점장에서 실업자로 전락한 것. 구직활동을 시작했으나 나이 많은 외국인에게 기회를 주는 영국회사는 없었다.
그러던 그가 은행 재직 중 인연을 맺고 있던 지인의 제안으로 현재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또 지난 2003년에는 둘째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등 여러 역경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영국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물심양면으로 도움
을 준 재영한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끝없는 도전,
제2의 인생 기로에 서서


조씨는 이제 받은 것을 돌려주고자 한다. 부동산 관련분야에서 한인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영국에서 한인 주재상사나 교민들이 필요로 하는 부동산을 확보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중개가 필요하면 주저없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신뢰받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남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
그는 또 “영국 땅에서 한국의 위상은 아직 낮은 것 같다. 여러 미개척 분야에서 각각의 전문인들이 배출되어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며 젊은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예순. 손주를 품에 안은, 은퇴한 우리네 할아버지 모습이 어울릴 법한 나이. 그러나 그에게 나이는 이미 아무 의미 없는 숫자다. 교회에서는 장로로, 한인회에서 부회장으로, 영국회사에는 ‘잘나가는’ 공인중개사로. 또 Dip Surv자격증 취득 까지. 끝없는 도전은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사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서는 청년의 기상과 포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영국 속의 한인들과 사회를 이어주는 어떤 다리(bridge)보다 더 견고한 연결고리가 될 겁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듯 했다.
< br><코리안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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