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 길영숙씨 관련 심리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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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 길영숙씨 관련 심리 열려
  • 임경민
  • 승인 200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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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사고버스 피해자 몸 위로 지나갔다" 공통된 증언

지난 해 7월 시드니 도심에서 버스에 치어 사망했던 길영숙씨의 사망경위와 관련한 심리(hearing)가 지난 6일과 7일, 12일 글립에 위치한 검시관 재판소(State Coroner’s Court)에서 열렸다.

검시재판관이 심리를 주재하고 검시재판관이 지정한 법정변호사(Coroner’s Advocate)와 피해자측의 변호사가 차례대로 증인들에게 질문을 하는 형식이었다.
길씨는 지난 해 7월 시내의 리버풀 스트리트를 건너다가 중국인 운전사가 몰던 관광버스에 부딪히면서 바퀴에 깔려 큰 부상을 입고 인근 세인트 빈센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곧 사망했었다.

이 버스는 중국 관광회사가 다른 회사로부터 렌트해서 쓰고 있던 것이었다. 유가족과 지인들은 당시 “가해차량의 운전사가 의도적으로 두 번 치어서 사망케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었다. ‘중상이거나 장애인이 되었을 경우보다 사망 사고인 경우에 보상 등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는 호주법을 악용했다는 것.

이를 규명하기 위해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지난해 9월 한달 간 매주 월요일 저녁 사고 현장에서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였었다. 이 소식은 한국의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에 소개되어 호주 법을 비난하는 수천개의 답글이 올라오기도 했었다. 또한 MBC는 지난해 9월 23일 시사 프로그램 ‘W’를 통해 “영숙이는 죽지 않았었다”라는 제목의 추적 리포트를 방영한 바 있다.

피해자의 아버지 길덕기씨는 심리가 열리는 6일 아침 시드니에 도착했다. 길씨는 “이번 시드니 방문이 일곱번째며, 지난 해 4월 7일 시드니에 왔다”고 했다.

길씨는 “운전사와 중국 관광회사 사장이 한번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면 나 역시 이렇게 재판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무남독녀 외딸을 잃은 내게 중국인 사장은 자기야말로 내 딸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라”고 분개했다.

3일에 걸친 심리의 핵심은 당시 숨진 길씨의 바로 옆에 있었던 친구 이정민씨의 증언.

자신도 당시 차에 부딪혀서 팔꿈치에 멍이 들었었다는 이씨는 검시재판관측 Joshua Walsh 변호사의 날카로운 질문에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대답하다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씨는 “횡단보도 쪽으로 길을 건너려는데 버스가 회전하는 것이 보여 일단 멈추어 섰다. 버스도 서기에 우리 보고 먼저 건너가라고 양보하는 것으로 판단해 다시 움직였다. 짧은 호주 생활에서 나온 경험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도로에서 자동차가 일단 정지하면 보행자가 먼저 빨리 건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당시 두 사람은 횡단보도 쪽으로 향하면서 길을 건너가고 있던 중으로 사고 발생시 횡단보도에서 1m 정도 떨어진 차도에 있었다. 이씨는 인도를 걸을 때 끼고 있던 길씨와의 팔짱을 풀고, 건너편 인도로 달려가던 중 팔꿈치의 통증과 함께 순간적인 충격을 느끼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길씨를 찾았다고 한다.

“영숙이는 차 앞바퀴에 오른쪽 가슴의 일부분이 끼인 채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괜찮다는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저는 이대로 붙잡아서 빼면 빠져 나올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서 영숙이를 붙잡고 끌어내려고 했습니다만 옷이 바퀴 밑에 깔렸는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운전사 쪽의 창문을 두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키가 작아서 그 밑의 동체를 두드리며 ‘Stop!’ ‘Back!’을 외치고 있었는데 일단 멈추어 섰던 버스가 그 순간 다시 앞으로 움직여 바퀴가 영숙이의 몸 위로 완전히 구르더니 다시 뒤로 움직여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씨는 울먹이기 시작하면서 증언을 계속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던 영숙이의 눈동자가 갑자기 풀리면서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이씨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다른 목격자들도 이씨와 거의 똑같이 증언을 했다.
아랍계 알카티브씨도 “버스의 앞바퀴가 길씨의 몸 위로 두세 번 왕복했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버스가 길씨 몸위를 지난 간 적이 없다고 증언했던 이태리계 마이클씨도 나중에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여 버스가 길씨의 몸 위로 지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버스 운전사인 리동핑씨도 자신이 길씨의 몸 위를 넘어섰다가 다시 후진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당시 당황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절대 고의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운전자에 대한 형사 사건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운전자의 고의성 여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호주에 1년 체류했다가 타이완으로 돌아간 목격자 제시 첸씨는 이날 국제전화를 통해 증언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시 첸씨는 다른 증인들과 마찬가지로 버스가 두 한국 여성과 충돌한 후 일단 멈춰서 선 상황에서 이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Back!”을 외치는 데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앞으로 나가다가 다시 뒤로 물러섰다고 진술했다.

또한 제시 첸씨는 버스에서 내린 운전사가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두 여성이 버스로 뛰어 들었다”며 “절대 내 책임이 아니다”고 중국어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전화통화가 끝난 뒤에도 운전사는 피해자 근처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종이와 펜을 들고 목격자 확보에만 열을 올렸다고 제시 첸씨는 말했다.

검시재판관측의 Joshua Walsh 변호사는 “이번 심리의 목적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길씨가 죽은 상황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데에 있다”며 “길씨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한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길씨측의 S. Dixon 변호사는 “명확한 진상규명이 끝나고 검시재판관의 판결이 나온 후에 이를 토대로 법률적인 판단을 해서 민사소송을 시작할 것”이라며 “형사소송의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절대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시재판관(Senior Deputy State Coroner Magistrate)인 J. Milledge 판사는 이번 심리를 통해 당시 사건에 관련된 여러 목격자들과 경찰관들의 증언을 청취한 후 경찰에게 재조사를 요구했다. 이번에 공개된 경찰측의 자료에 여러 가지 허점이 드러난 것. 또한 이번 심의를 통해 드러난 사실관계를 가지고 교통관련 전문가들에게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결정했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한 검시재판관의 최종판결은 이상의 보고서와 조사기록이 새롭게 정리되어 종합되는 오는 8월 1일, 피해자측의 변호인과 검시재판관측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내려지게 된다. 이 판결을 토대로 이후 민사 또는 형사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경찰측은 운전자의 과실이 없는 것으로 조사를 종료했다가 당시 운전자에 대한 음주 측정을 하지 않았고 또 목격자 확보에 소홀했다는 유가족측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미 한차례 재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심의에 제출된 경찰의 현장도면 등도 여전히 부정확한 점이 많은 것으로 검시재판관에게 지적되어 다시 처음부터 조사를 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번 심리가 진행되는 3일 동안 재판정에는 길씨의 부모와 증언을 했던 이정민씨 이외에도 호주에 남아있던 김선자씨 등 길씨의 친구들, 김석민 목사, 이봉행 영사 등이 참석해 심리과정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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