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 친구들은 돈 좀 땄을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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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 친구들은 돈 좀 땄을래나?
  • 원코리아
  • 승인 2006.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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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반경 50M 이내에 대형 빠찡코점이 4개나 있습니다. 꽤 많다고 할 수 있지요. 뭐, 아무래도 전철역과 가깝기 때문이겠지만 전철역을 상권으로 하고 있는 지역 특성을 감안한다면 또 그렇게 많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일본의 빠찡코 산업은 그야말로 과장 좀 보태서 한집 건너 하나 꼴입니다.
 
어제는 저녁 늦게 자정쯤에, 잠도 안 오고 해서 캔맥주나 하나 마시고 잘까 하고 편의점을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이게 버릇이 됐습니다.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는데 두 명의 젊은이가 빠찡코점 셔터 앞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요즘은 한국도 꽤나 춥다고 하던데요. 일본(도쿄)도 요 몇일 바람이 장난이 아니게 거셉니다. 자연히 기온도 많이 내려가 쌀쌀한 날씨입니다.
 
그 추운 날씨에 한명은 담요를 둘둘 말고, 또 한명은 파카 차림으로 그렇게 누워 있더군요. 대단한 청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이른 줄서기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침 6~7시에 100여명씩 줄서기 하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만, 빠찡코점이 밤 11시에 영업을 끝냈을 테니까 영업을 마치자마자 그 앞에 죽치고 있는 줄서기를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빠찡코에 푹 빠져 사는 청춘들이거나 아니면 어제 좀 과하게 잃었거나 뭐 둘 중에 하나겠지요.
 
제가 일본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은 따라하지 않아도 좋겠다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빠찡코 산업입니다. 우리 정부가 절대로 허가해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우리 언론에도 가끔 가십성 기사로 오르내리곤 하지요. 엄마가 어린애를 자동차에 혼자 남겨두고 빠찡코에 간 사이 아이가 질식사했다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이런 것은 아주 특이한 사례라고 보여지구요.
 
문제는 일반 국민들에게 폭 넓게 퍼져 있는 빠찡코 중독증세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삼아 하는데 어떻겠느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 정말 오락 정도로 빠찡코를 하는 분들은 거의 보지를 못했습니다.
 
한번 재미 붙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져 버리더군요. 심한 경우에는 애 분유 값은 못 줘도 다음날 빠징코할 돈은 양말 속에 꼬불쳐 놨었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한 마디로 가정이고 뭐고 눈에 안 들어온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빠찡코를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하루 빵 값을 기계 속에 쳐 넣고 정작 자신들은  배를 곯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배고픔의 악순환이지요.
 
물론, 그 속에서라도 희망을 찾고 싶어하는 그 심정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그리고 제 주변에도 일본으로 돈 벌러 온 한국분들 많이 계시는데요. 뭐 요즘은 돈벌이가 예전만 못해서 다들 힘들어 하시지만 그래도 열심히들 살고 계십니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한달에 40~50만엔 버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고들 했는데, 그래서 그때 유학했던 가난한 유학생들은 돈을 벌 것이냐? 공부를 할 것이냐?로 고민깨나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은 어림없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일본에서 돈을 벌고 계시는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버는 족족 한국으로 송금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주로 연세 좀 있으신 분들이 그렇게 사시는데요. 눈물 나는 것은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전액 송금하시는 이유가 한국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서 랍니다. 게다가 자식을 위해 그렇게 고생 고생하시면서도 열이면 열, 입만 열면 자식 자랑으로 침이 마릅니다. 저도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참 많이 반성합니다.
 
하지만 역시 많은 분들이 벌어 놓은 것 하나 없이 그렇게들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벌어 놓은 것 하나 없고, 일본에 계속 있자니 돈 벌이가 시원치 않고 그래서 고민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한 때, 돈 잘 벌지 못했던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다들 예전에는 돈 깨나 벌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요. 하루 15~16시간씩 일 하고, 개중에는 이 악물고 하루에 두 군데서 일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요. 헌데, 그 돈은 다 어디 갔냐구요?
 
빠찡코와 술, 여자 또는 남자.
 
다 외로움이란 단어 뒤에 따라 붙음직한 것들이지요. 그 중에서 으뜸은 빠찡코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 심리란게 참 묘하지요. 도박으로 잃은 것은 잘 생각 안 나고, 딴 것은 꽁돈인 듯 싶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가끔 이런 경우도 있지요. 친한 선후배 또는 친구가 술 한잔 하러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자신이 쏘겠다는 거지요. 왜냐구요? 빠찡코에서 돈 좀 땄으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는 어제도 그제도 계속 잃었거든요. 모처럼 한번 따 놓고는 마치 그 돈이 꽁돈인 듯 생각하고 팍팍 쓰는 거지요.
 
그렇게 잃어서 마이너스가 되고, 따도 남는 것이 없게 되니까 빠찡코에는 결코 플러스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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