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일보 DB작업중인 김상헌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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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일보 DB작업중인 김상헌씨 인터뷰
  • 김제완
  • 승인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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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발행되는 고려일보는 동포언론으로서 가장 오랜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23년 연해주에서 '선봉'이라는 제호로 창간됐으나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시에 편집진들이 중앙아시아로 함께 이주해왔다. 이곳에서 이름을 레닌의기치로 등록해서 창간한 뒤 소련공산당의 기관지로 발행돼 오다 소련이 무너진 뒤인 91년에 고려일보로 다시이름을 바꿨다.

이같은 시기에 김상헌박사(35)가 서울에서 고려일보 80년치 기사를 CD로 제작하고 있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발행된 영인본은 북한과 일본에서 펴냈다는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한국이 얼마나 소흘히 했는지가 드러나고 있다.
23년부터 37년까지의 발행된 선봉은 95년경 영인본으로 제작되어 일본의 북한계 고려서점에서 판매됐다. 61년부터 81년까지의 축쇄판은 일본인들이 모스크바에 보관된 레닌기치를 찾아내 96년경에 영인본을 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언론재단에서 장지연언론상 수상자로 고려일보를 선정했으나 가장 중요한 영인본작업은 해내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겼다. CD 작업을 하고 있는 김박사는 현재 카자흐스탄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상철씨의 친형이다. 6월초 재외동포신문사를 방문한 김박사를 만났다.

=고려일보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작년 8월 3주간의 예정으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갔다. 정통부에서 파견한 해외인터넷 봉사단 대원 4명중 한명으로. 이때 카자흐스탄대학 한국학과장 김게르만 교수와 함께 고려일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서고에 들어가보니 60년이 넘은 신문들이 쌓여있었는데 바래고 낡아서 만지면 부스러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김교수와 함께 자료보존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한국정부기관에서 나설 일이 아니었나?
작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관련 정부기관들에 이 문제를 알렸다. 10월초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 비용을 부담할 테니까 복사해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복사기로는 대판 신문을 복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형 평판 스캐너를 2만 달러에 구입해서 화물로 보냈다. 알마티의 고려일보사에 도착하기까지 꼭 한달이 걸렸다.
그뒤 고려일보사에 보관된 54년부터 2002년까지의 신문을 스캔해서 그림 파일로 만들어냈다. 총 5만5천쪽의 지면이 파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외에 신문기사 제목 목록작업을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1년치신문이 시디 두장에 담겨져 총 103장의 시디로 만들어졌다.

=글자인식 프로그램으로 텍스트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은가.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글자가 옛날 서체이고 기사내용도 현대 문법에 맞지 않아서 프로그램의 인식율이 너무 낮게 나왔다. 결국 일일이 타자를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일손이 들어서 현재로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고려일보에 없는 53년 이전의 신문은?
38년부터 53년까지의 신문은 카자흐스탄 국가기록보관소에서 찾아냈다. 당시 이름이었던 레닌기치는 소련공산당에서 펴내는 신문이어서 국가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간의 신문도 파일로 만들어져서 며칠전에 서울에 도착해 시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이 시디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6월말에 있는 고려일보 80주년 행사 전에 마치려고 계획했으나 부득이 7월 중순에 마무리될 것같다. 영인본 제작은 예산 문제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작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CD로 만들어 판매를 하려고 한다.  

고려일보 신문 파일은 곧 인터넷을 통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인터넷 사이트도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김제완 사무간사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조대기 회장은 최근 '재외동포신문 인터넷 구축 사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하고 그 첫 번째로 고려일보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한달여동안의 준비를 거쳐 8월초에 오픈 할 예정이다. 김제완 기자 9.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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