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타일업계, 한인이 주도하는 개혁 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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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타일업계, 한인이 주도하는 개혁 바람 분다
  • 한국신문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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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타일업계에 한인이 주도하는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시드니 타일업계 종사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한인 타일러 수는 2000여명으로, 이들이 뭉쳐 해묵은 과제인 작업 단가 인상을 쟁취하기 위해 단결력을 과시한 것이다.

이번 주 화요일(26일) 리드컴 소재 카톨릭회관에 모인 한인 타일러는 120여명. 그리고 건설업계의 큰 손으로 통하는 레바논계, 이탈리아계에서도 대표진을 보냈다. 또한, 네팔에서 건너온 일용직 노동자들도 작업 단가 인상을 이룩하여 보다 낳은 노동조건을 만들자는 한인들의 주장에 동조를 표했다.

하지만, 한인들과 작업 수주경쟁에서 보완적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중국계 및 베트남계 건설 노동자들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작업 단가 인상을 위한 타일러 단합대회’를 주도한 단체는 호주 건설노동조합(CFMEU: Construction, Forestry, Mining & Energy Union)의 뉴 사우스 웨일즈 지부. 하지만, CFMEU를 움직여 노동 조합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 낸 구심력은 바로 한인 타일러들의 단결력이었다.

앤드류 퍼거슨(Andrew Ferguson) CFMEU 사무총장은 100여명 이상 모인 한인 타일러들의 단결력을 확인하고 이날 채택된 한인 타일러 일동의 결의문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CFMEU가 원청회사를 상대로 전개할 작업단가 인상을 위한 단체 협상안의 뼈대가 바로 한인 타일러들의 손으로 작성된 것이다.

호주 노동조합 역사상 한인들이 대규모로 앞장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견을 표명한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단합회의는 CFMEU가 마련한 노조 지원단체의 활동상 소개부터 시작됐다.

대부분 모르고 있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정보가 제공되자, 한인 타일러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장기근속수당 지급공사’ (Long Service Payment Corporation)의 브랜트 웨일리(Brent Weiley) 부국장이 장기근속수당(long service leave)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설명했으며, CBUS(Construction & Building Union Corporation)의 닉 포더(Nick Fodor) 코디네이터는 조합원들에게 저리로 제공되는 주택융자 서비스에 관한 설명을, 또한 조합의 자문법률 회사인 Taylor & Scott Solicitors에서 파견된 관계자는 한인 타일러들의 비자문제를 의식 457비자 및 이민관계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었다.

회의가 진행됨과 동시에 현장에서 25명의 한인 타일러들은 신규조합 가입원서를 제출했으며, 또한 20여명의 조합원들은 그 동안 납부를 미루어 왔던 체납조합비를 완불하는 등 장래가 다소 어수선했다.

이어 이날 행사를 기획한 이창우 CFMEU 한인 대의원과 신준식 코디네이트가 등단해 회의를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면서 다시 뜨거운 열기가 회의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첫째 안건은 이날 행사의 주제인 작업단가 인상안.
이날 모인 한인 타일러들은 그 동안 타일 현장의 작업단가가 10년 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렴한 가격에 묶여 있어야 했던 것은 누구를 탓하기 전에 한인 타일러들이 벌여온 ‘제살 깍어먹기 식’ 단가 낮추기 경쟁에서 비롯됐고, 이를 악용한 원청 회사의 농간을 뻔히 알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현실을 개탄했다. 바로 단결하지 못하고 제 밥 그릇만 챙길 때 발생하는 적전분열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새로운 각오로 정신무장하는 계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단합대회 준비측에서 제시한 10년간 비교단가표가 제시되자 모두들 한숨을 쉰다. 그리고 현재의 단가표에 이어 한인 타일러들이 제시돤 적정 단가표 요구안이 조합 집행부에서 제출되었으며, 한인 타일러들의 지혜를 모아낸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회의가 끝나고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창우 대의원은 80년대 중반 한인 타일러들이 시드니 건설현장에서 투입되면서 얻은 별명은 ‘천의 손’이란 극찬이었다고 회고한다. 이 대의원은 자신도 오랜 타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인들의 체형과 타일업은 절묘한 조화를 이룰 정도로 잘 맞는다는 것. 그리고 손 기술과 마무리 정신이 뛰어난 한인들은 호주 건설업계에서 빠른 시일에 숙달된 기술자군으로 대접을 받기 시작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났으며 따라서 돈벌이가 좋아졌다. 타일업 종사자들은 이때부터 시드니 한인 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뒤이어 진출한 많은 한인들이 기술도 익히기 전에 제각기 독립하여 단가 낮추기 경쟁으로 계약을 따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청 회사들은 한인 타일러 사이의 분열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일부 원청회사는 재빨리 이를 악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규모 영세 타일 노동자들에게 계약을 따기 위해서 회사(Pty, ltd)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누구나 회사를 만들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pty ltd. 하지만, 이것이 함정이었다. 당시 많은 한인 타일러들은 계약을 따기 위해 명목상으로 만든 회사가 바로 자신들의 경쟁력과 단결력의 발목을 잡게 될 지는 몰랐다고 한다.

원청회사들은 고용인에 대한 산업재해보험(workers compensation)과 연금(superannuation) 등 각종 의무부과금을 영세한 한인 타일 회사 사장들(?)에게 떠넘겼다.

이런 형편에서 세금과 각종 의무부과금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악화되면서, 일부에서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조세와 부과금을 피해가는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타일업계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 벌어지고 만다.

세금을 납부하고 산업재해보험금 및 의무부과금을 제대로 내려는 한인 타일러들은 날로만 내려가는 단가경쟁에서 도저히 살아날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 둘씩 떠날 짐을 꾸리기 시작했으며, 이때를 틈타 유령회사를 앞세운 ‘비양심 세력’이 저단가를 앞세우는 무질서를 일삼게 된 것이다. 유령회사를 차린 타일러들은 세금과 의무부과금을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조사가 실시되면 회사를 문닫고 호주를 뜬다는 식으로, 이른바 막가파식으로 타일업계의 노동 질서를 깨뜨린 것이다.

이창우 대의원은 이제 단가 인상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면서 구체적인 단체행동에 돌입하기 위해 8명의 한인타일러 대표위원들이 선출됐으며, 향후 타일업계의 고용문화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위원 10명이 위촉됐다고 말했다.

고직만 부장
chikmannkoh@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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