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설날과 재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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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설날과 재외동포
  • 이경태
  • 승인 2006.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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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첫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미를 가지지만 설날은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동양사회 특유의 명절이다.

특히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서 설날은 돌아가신 조상과 자손이 더불어 공존하는 신성한 시간이면서 세시풍속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민족최대의 축제 행사라 할 수 있다.

섣달 그믐날 잠을 못자게 하던 풍습인‘야광귀(夜光鬼)’, 설날 새벽에 거리에서 처음 듣는 짐승 소리로 한해의 길흉을 점치던 ‘청참(聽讖))’, 삼재의 액을 면하기 위한 ‘삼재법’ 등등 우리 조상들의 삶과 생활의 지혜를 함축한 풍속이 설날에 행해졌다.

설날은 단순한 민속행사 차원을 넘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해 주고 계승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날 풍속이 대부분 3, 4세 시대에 접어든 재외동포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어떠한 형태로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재외동포 문제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민족정체성이다. 민족정체성의 핵심요소는 공통의 언어와 문화일 것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700만 재외동포 시대에 조선인, 고려인 등 각각의 특수한 이민의 역사에 따라 민족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이 달라져야 하겠지만 한국인이라는 혈통을 환기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민속명절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재외동포들은 민족정체성 유지에 강력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에 실시된 고려인 3, 4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과 러시아간 교류활성화를 희망하는 분야가 무엇인갗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웅답이 전통문화(24.8%)로 경제분야(24.2%)보다 앞서 있는 것은 일례이긴 하지만 동포들이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성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설날, 추석 등 주요 민족명절을 지내는 비율은 조선족 85%, 고려인 65%, 재일동포 46%로써 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비교적 명절풍속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지화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공유하는 전통문화는 줄어들 것이고 민족정체성은 약화될 것이다. 이러한 양상이 지속된다면 결국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간의 명절 풍속이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각국의 재외동포 사회간, 재외동포와 모국간에 이질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통문화 양상에 대해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는 특히 한반도에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풍속의 이질성이 증대되고 있는 남북한에 있어서는 통일을 위한 현안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풍속계승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역작용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전통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가 말하듯이 민속이라는 특수성에서 보편성과 세계성을 찾는 노력들이 적극 전개되고 있고 상당수가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21세기 재외동포 사회에서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 예전의 방식처럼 조국에의 충성심 강조 등 정치적 정체성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여러 가지 위험과 현지적응력 저하 등 부작용이 따를 것이므로 문화적 정체성 강화로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길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설빔과 윷놀이 등 세시풍속이 지구상의 한민족을 하나로 연결해 주고 민족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동시에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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