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공부 좀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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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공부 좀 하시오
  • 정채환 칼럼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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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높은 양반들의 말솜씨들이 무척 거칠어졌다. 우선 대통령 자신부터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고 했다. 이제 이 말은 유행어가 되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왔다갔다 하는 입시제도 때문에 학생 못해 먹겠다"를 비롯 각 직장이나 사회단체 모두 "못 해 먹겠다" 타령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과 지근 거리에 있는 LA동포사회도 마찬가지로 유행한다. 이런 부정적인 단어가 한번의 우스개 소리로 들리면 다행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하는 일이 힘들어 지는 순간엔 이 말이 상당한 파괴력도 가진다. 그리고 일에 애정이 식고 짜증도 나는 것이다. 그리곤 "대통령 노릇도 못해 먹겠다는 데 내가 왜..."하며 자조적인 푸념도 하게 된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말과 행동을 무척 조심해야 한다는 당위이다.

◎ 도올 김용옥과 청와대의 반박
그런가하면 한국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랑하는 석학이며 TV 등에서 노자와 공자에 대한 거침없는 강의로 인기를 드높인 도올 김용옥 씨가 문화일보에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도올은 현재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도올 김용옥 기자의 시국진단〉에서 "盧대통령, 당신은 통치를 포기하려는가?"라는 칼럼에서 아예 대통령을 '그대', '당신'으로 호칭하고 "당신은 이 나라의 국가원수다!"라고 시작하더니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구? 우리도 이제 국민노릇 못해먹겠다. 당신은 정말 대통령 노릇 못해먹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순진을 가장한 미소 속에 당신의 양심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하는가 하면 NEIS, 특검문제, 정상회담, 새만금문제, 등을 예로 들면서 거칠게 퍼부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다시 "한국의 대표석학을 자처해온 도올의 기사로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수준의 표현과 논리로 가득 찼다. 도올의 정제된 고언을 기대한다."면서 비속어 수준의 막말과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고 평했다.
말이란 이렇게 거칠어지기 시작하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법이다. 옛 속담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다. 청와대의 평에 대해 도올도 또 한 말씀하겠지. 그러나 독자의 입장으로 봐서도 좀 더 순화된 언어로 정확한 지적을 했으면 한다. 뒷골목 건달패의 말들을 고위 공직자들이 너무 쉽게 쓰고 있다. 높은 양반들이 이렇게 막말을 해대니까 인터넷 언어도 점차 폭력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선 표준 국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바보가 된다. 예를 들어 '반가워요'는 '방가'로 표현해야만 한다.

◎ 비서실장이 총리를 '질타'하는 세상
이렇게 도올을 나무라는 청와대도 국어 공부는 더 해야하겠다. 노무현 정권 100일을 기념하여 문희상 비서실장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문 실장은 "청와대가 부처 조정기능을 포기했는데 왜 총리실에서 조정을 안하고 있느냐 면서 총리실에서 나서라고 내가 고건 총리를 많이 질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질타를 부탁으로 표현을 바꾸어 달라"고 기자들에게 다시 부탁을 했다는데 문 실장의 내심은 '질타'였던 것이다. 아니, 비서실장이 뭔데 총리에게 질타를 한단 말인가? 국어를 몰라 무식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으로 착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이렇게 위에서부터 사용하던 말들이 엉망이다. 교육부총리의 말도 얼마나 오락가락하고 있는가? 이렇게 비속어와 변명, 그리고 헷갈리는 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니 높은 양반들 모두 이 참에 국어연구소 같은 기관에 들어가 합숙으로 순화된 언어 공부부터 했으면 한다. 프랑스어보다 더 고급이 될 수 있는 한국어가 지금 세종대왕이래 최고의 환난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세종대왕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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