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의 기대
상태바
한·일 정상회담의 기대
  • 코리아나 뉴스
  • 승인 2003.06.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은 이제 '함성의 달'이 되었다. 1987년의 6월은 전두환의 4. 13 호헌 조치에 반발하여 전국적 규모의 항쟁을 일으켰고 이는 마침내 노태우의 6·29 선언을 이끌어 내었다. 그 결과 한국의 군부통치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으며 그 후 2002년 6월엔 월드컵 4강 진입으로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오∼필승 코레아'의 응원가와 '대∼한민국 짝 짝 짝 짜짝'의  엇박자로 두들기는 박수는 참으로 민족의 열기를 뿜어내는 장대한 서사시였다.
다시 6월은 돌아왔고 그 함성은 곳곳에 매몰되어 있지만 언제 또 용광로처럼 끓어 밖으로 터져 나올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6월 7일 한·일 정상회담이 준비되어 있다.
현충일에 일본을 방문한다는 비판도 없진 않으나 그 보다 더욱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정정당당한 외교기술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민들이 많이 실망한 만큼 한·일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여러 가지 기대와 성과를 정상회담 전후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 한·일 축구는 승리로 장식
국가간의 경기에서 한·일전만큼 온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기는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승리하는 것과 일본에 승리하는 것은 그 승리감의 차이가 엄청 다르다. 반대로 다른 나라에 지는 것과 일본에 지는 것과의 패배감도 확실히 틀리다. 이 때의 패배감은 일종의 분노마저 포함하고 있다.
'운동경기는 얼마든지 이기고 지고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감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간 지난 5월 3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있었던 한·일 축구 경기는 후반 종료 몇분을 앞두고 안정환이 1골을 넣으므로 1-0으로 승리를 장식했다. 그리고 이 승리는 4월의 패배를 완전 설욕한 기회도 되었으며 새롭게 사령탑을 맡은 코엘류 감독에게도 신뢰를 보내는 계기도 되었다.
코엘류 감독도 "한일전의 성격에 대해 이해를 한다"며 선수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경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1주일 전이라 마치 전초전과 같은 기분이 들어 뭔가 좋은 조짐이 아닌가 하는 기대도 들었다.

◎ 심심하면 터지는 망발
한·일 축구가 승리로 장식되던 날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조회장은 망언을 쏟아 냄으로서 한국인의 감정에 또 다시 불을 질렀다. 그는 도쿄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의 여권을 받으면 이름에 김(金)이라든가 하는 조선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것을 본 만주 사람들이 '조선인이네'라고 말해 일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인들이 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원래 창씨개명의 시발이었다"라고 주장하고 또 그는 "한글문자는 일본인이 가르쳤으며 의무교육제도도 일본인이 했다"면서 "옳은 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며 충고성 발언마저 아끼지 않았다.
이런 일본 우익계통의 인물들은 주기적으로 발작하는 환자처럼 망언을 일삼고 있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 후안무치(厚顔無恥)할까? 원래 민족성이 그렇게 교활해서일까? 아니면 한국이 우습게 보여서일까? 모두가 조금씩 해당이 되는 이유이겠지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더구나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이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계산된 시나리오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런 발언에 대해 한국 측은 펄펄 뛰었다. 외교통상부에서는 석동연 대변인이 "참으로 실망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고 민주당에서도 "아소 다로의 망언을 규탄하고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했으며 한나라당은 "비뚤어진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요,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흥사단(이사장 김소선)에서는 보다 강경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아소 다로의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의 창씨개명 망언은 개인의 역사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일본 우익의 조직적이고 정기적인 역사왜곡의 연장선상에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그를 "한국사회의 공공의 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 뒤늦게 사과는 했지만
이렇게 말썽이 일어나고 감정이 격화되자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조회장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였다. 그는 "말주변이 부족해 진의가 전달되지 못했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창씨개명이 얼마나 많은 한국 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본인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다만 학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다 말주변이 부족해 진의를 전달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대통령의 방일을 직전에 앞두고 있어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는 시점에서 본인이 유감스러운 발언을 한 데 대해 한국국민에게 솔직하게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정치인도 사람이고 실수는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이런 식의 실수와 사과는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마치 김빼기 작전 같기도 하고 병 주고 약 주는 모양 세다. 그들이 하는 사과가 진정으로 내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 끌기를 위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립서비스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허기야 교과서를 엉터리로 쓰는 사람들이니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아직도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졌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표현만 하지 않고 마음속으론 그런 생각으로 꽉 차 있을 것 같다. 허기야 해방 후에 한국이 하도 혼란스럽고 좌우익 갈등이 심하니까 한국인들도 "그래도 일제 때가 좋았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서민들의 푸념이다. '어이구 죽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자' 등과 같은 일종의 한 숨과 같은 것이다 .이런 류의 투덜댐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발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 관한 한 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말들을 채집하여 또 핑계를 댈지도 모르니까.

◎ 기(氣) 싸움부터 이겨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결과를 두고 이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실력이 없었다고 평했다. 대통령과 보좌진들이 미국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가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질도 그럴 것이다. 정치적 연륜과 경험축적이 주로 노동현장에서 성장하여 미국인들의 속성을 파악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외교만큼 처절한 전쟁이 없다. 흔히들 "전쟁은 무기를 사용한 외교이고, 외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국가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상대방에게 호감도 주면서 실리를 취하고 또 명분도 잃지 않는 노련하고 의연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This Man'이라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에겐 'Easy Man'이라고 칭했다. 이 말의 참 뜻이 친근감의 표현인지 정말 별거 아닌 쉬운 상대라고 말한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들을 때 유쾌하진 않았다. 가까운 과거를 봐도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으로 가는 사람들이 실력이 있으면 당당한 외교를 펼치고 좋은 성과를 가져 왔던 것을 기억한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 방일도 이와 같이 뭔가 국민의 속마음을 확 뚫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참모들과 합심하여 가상 시나리오도 만들어 보고 미리 준비하여 기(氣)싸움부터 이기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전야제 성격의 축제인 축구는 이겼다. 이제 메인 게임인 한·일 정상회담도 축구 승리보다 더 좋은 소식이 날아오기를 모두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