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다도시의 금의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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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다도시의 금의환향
  • 신근수
  • 승인 2005.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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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에 한국에 갔을 때이다. 텔레비젼 개그프로에서 웬 프랑스의 젊은 여성이 나와서 한국말 유모어로 무지 웃기는 장면을 보며 배꼽을 잡은 적이 있었다.

몇해 후에 다시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 프로에 이다도시가 출연하여 진행을 하는 프로를 들었는데, 택시운전사 아저씨가 몇년전의 나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배꼽을 잡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스타가 된 이다도시였다.

10여년이 지난 오늘, 한국인 남편의 프랑스 부인 이다도시는 한국에서 단연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에 소개된 기사에 따르면, 이다도시의 스타 되기는 가위 바위 보로 된 신데렐라가 아니라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된 것이어서 더욱 값져 보인다.

파리의 한국문화원은 이다도시를 초청하여 강연회식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 또한 한국의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으로 이해된다. 이다도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여성, 프랑스에서는 한국 가서 스타가 된 자국 출신의 여성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다도시는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문화대사’의 역할을 두 나라에서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100% 순한국제 스타 프랑스 여인 이다도시(36세)가 지난달 금의환향했다.

파리 한국문화원이 그녀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가졌는데, 300명의 외국인. 한국인. 프랑스인 등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이다도시는 1992년 한국에 신발공장 견습사원으로 갔다가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의 TV 라디오 인쇄매체의 스타가 되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인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한국인 시어머니가 결혼 초기에 한국말로 태교에 대해서 말하는 등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아 스트레스가 굉장했는데, 지금은 설거지를 함께 하면서 농담하는 수준으로 한국말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다도시는 또 ‘외국에서 가장 성공한 프랑스인’으로 뽑혀 일간지 ‘르 피가로’지에도 지난 8월에 소개되는 등 올해가 ‘이다도시 전성기’로 기록되어야 할 판이다. 이 인터뷰에서 이다도시는 자신의 성공 발판이 “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인들에게 겸손하고, 솔직하고, 비판적이 아니며, 거만하지 않고, 단순히 ‘저는 프랑스에서 온 여자 이다도시인데요. 저는 이렇게 삽니다.”라고 단순하게 설명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다도시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외진 해안 ‘페깡’(Fecamp)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바닷가 처녀이다. 대학은 가까운 지방도시 루앙(Rouan) 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식으로 바꾸어서 설명하자면 이는 삼천포에서 고교 졸업한 후 진주의 대학쯤에 진학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프랑스의 외진 바닷가 시골처녀가 한국에 와서 그야말로 대 스타로 약진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그녀가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와 영향력은 최근 한국의 경찰청에 초청 받아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자문을 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파리 한국문화원이 이다도시를 파리에 초청하여 강연회를 갖도록 한 것 또한 한국의 공기관으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다도시는 말한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여진 까닭에 프랑스에 오면 프랑스식 ‘느림느림’ 문화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국에서 열심히 산 뒤에 노후는 ‘천천히 움직이는 나라인 프랑스의 노르망디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다도시는 13년의 한국생활에서 한국인의 귀소본능을 프랑스식으로 배우는 기회도 가졌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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