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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봉사 나누는 삶의 즐거움 3
장혜진  |  manila_seoul@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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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9.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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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중 전 필리핀 한인회장

사마리아 나환자촌을 가기위해 아침일찍 장재중씨를 만나 대기중인 차에 올랐다. 한시간을 넘게 달려 찾은 그곳 딸락에 위치한‘사마리아 나환자촌’ 잘 정돈된 꽃나무들 뒤로 하얗게 칠해진 사마이라 나환자 촌이 눈에 들어왔다.

장재중씨는 이미 선교영화인 "SA KANDUNGAN NG KANGIT"(천국의 요람)"과 ANG LAGUSAN(터널)으로 우리에게 더 친근한 인물이다. 또한 전 한인회장을 지냈으며, 사무실 직원만 150명이라는 중견기업의 CEO이기도 하다. 대부분 이정도의 위치면 편안한 삶을 누릴만도 한데 그는 항상 바쁘다. 그에게 있어서 주말을 즐겨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사치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21년 전인 1984년에 필리핀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2년 뒤인 86년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21년 자신의 황금기인 3-40대를 필리핀에서 열심히 일했고 하던 사업도 잘되었다.

"외국인이 낯 선 이국 땅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무엇이 생각 날 것 같습니까? 저에게 기회를 주었고 편안한 삶을 준 나라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기독교에서 배운 나의 재물과 시간을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는 나눔의 삶, 이웃사랑의 실천이 소외된 이웃을 돕게 된 동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리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현재 그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봉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실천하고 있다.
"전 직원이 다 달라 붙어서 하는 것이지요. 재물도 중요하지만, 우리 직원들의 자기의 휴식 시간을 내어 남을 돕고 있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그는 현재 소록유니사회복지재단을 통한 나환우 사역, 즉 그들의 생활을 지원해주고 스스로의 삶을 정착해 나가도록 훈련 격려 시키는 정착촌 마을 운동을 중점에 두고 있다. 토요일에는 빈민촌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음식을 제공하며, 일요일에는 마닐라 시청 옆에 자리잡고 있는 즐거운 교회 돕는 선교단에서 빵을 굽고 이발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제가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제가 원해서 하게 된 일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참으로 뜻밖의 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는데, 이 일도 저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것을 도망 다니기만 했는데, 결국은 고스란히 제가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사업한다고 바쁘게 쫓아다니느라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사회복지재단까지 운영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가 바라는 희망이 있다.
그는 필리핀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이 이곳 필리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이들보다는 우리의 삶이 좀 낳기에 주위를 한번 돌아보면 너무나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고, 어떤 이들은 너무 많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한곳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시작한다면 7만의 교민사회는 늘 밝은 기쁜 소식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이땅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친구로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우리의 재물과 시간의 조그마한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믿고 실행하기를 그는 간절히 희망한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누가 나환우들에게 와서 같이 살라고 하면 멀쩡한 사람들이 가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오라고 그리고 시키면 꼼짝 못 하고 하게 되어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정이 가고 사랑을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 나환우 형제들입니다. 전염 되지 않습니다. 무서워 할 필요가 없는데.... 그 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지요. 우리 모두가 다 갖고 있는 것 바로 '사랑'입니다."

어쩌면 꿈 많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과 함께 맞이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려대 법대의 꿈을 접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해양대로 발길을 돌렸던 그때부터 그의 미래는 이미 정해 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희망한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우리모두가 좋은 이웃으로 하나되는 사회가 되길.


사마리아 나환자촌 김명학 선교사

1999년에 필리핀에 와서 현재까지 이곳 사마리아에서 나환우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역하는 김명학 선교사는 37년전 형의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뒷산 넘어 있는 나환자촌에 들러는 것을 인연으로 나환우들과의 인연을 맺었다. 나환우들은 형의 쾌유를 위해 기도했고 2개월동안이나 학교를 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형의 피부병은 1주일간의 금식 기도로 말끔히 나았다. 그날 형제는 서로에게 약속했다. 소외 받은 이들을 위해 사는 삶을 살 것 이라고…

김명학 선교사는 소록도에서 나환우들을 사역하는 형인 김명환 선교사와 함께 사역을 했다. 나환우들과 함께 생활을 하던 어느날, 소록도를 벗어나 선교활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나환우를 위한 선교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 3국에서 나환우를 위한 선교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곳이 필리핀이 되어 이곳 '딸라'에 위치한 사마리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현재 사마리아에서 3대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김명학선교사는 이곳에서의 선교활동이 정말 힘들었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들을 처음 봤을 때 그들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듯 보였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있었죠. 또한 주위에서 나환우에 대한 멸시와 배척으로 이 지역에서 사마리아를 몰아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5년간 계속 되었다. 그 5년 동안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계획했던 모든 것은 제자리 걸음을 해야만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것이 작년부터 조금식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지역 주민들이 조금식 나환우들을 이해하는 단계가 되었고, 지금은 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함께 생활을 해나가는 상황까지 관계가 호전되었다. 이로인해 예전에는 계획만 했지 실천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기반까지 갖추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소록유니 빌리지라는 나환자들을 위한 빌리지로 이전을 해 이들이 정착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있다.
하지만 이일도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처음엔 이곳 정부 관계자들이 나환우들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변화의 바람이 부는 듯 하다.

그렇게 완고히 반대를 하던 정부 관계자들도 최근엔 입장을 바꾸었다. 완전히 받아 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사마리아에서 자립을 위해 훈련하고 준비해온 나환우 가정을 하나 둘 옮길 준비를 하는 과정에 있다.

또한 작년부터는 이곳 주민들과 나환우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마리아 바깥지역에 4군데에 교회가 지어졌으며, 여기에 일반인들과 나환우들이 함께 교육을 할 수 있는 직업훈련학교를 건축 중에 있다.

직업훈련학교가 완공이 되면 컴퓨터 교육을 비롯한 실질적인 직업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곳에서는 일반인들과 나환우들이 함께 어울려 교육을 받을 것이다.
현지 주민들과 나환우들과의 관계개선이 제일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이기에 이러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일반 장애인들은 어느 정도는 일반인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지만 나환우들은 그 일반인들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안된 다고 인식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반인들에게 멸시와 천대 대상이 되고 격리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인해 우리와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 그리고 나환우들도 일반인들을 두려워하고 떨어져 생활 하여야만 한다는 생각들이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을 해소 시켜주는 일이 선교입니다.”

그래도 이곳 필리핀에는 나환우들이 정상적인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을 했을 때의 이해도가 한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보다는 빠른 편이다.
접근했을 때 쉽게 하나가 되고 어울린다. 이렇기에 이곳에서는 나환우와 일반인들 서로가 어울려 잘 살아가리라는 확고한 희망이 있다고 한다.

"제 주머니에 돈이 1페소도 없을 때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도와줘야 하고 베풀어야 할 그럴 때에 그들을 위한 약 한 알이 없어서 환우들 자녀들이 죽어 갈 때 그럴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들은 정상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구걸을 해서 삶을 꾸려 나간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나환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격리되어 왔고 나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집을 나설 수도 없었고 삶의 터전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삶을 유지해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의 베품이 전부였다.

이런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에게 충분히 도움을 주고 이들이 훈련과정을 통해 자립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환자들을 위해 많은 도움이 이루어 지고 재정이 뒷받침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지만 재정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필리핀 나환우들을 처음 만났을 때 세상의 낙이라고는 없던 그들의 삶 속에서 내일 어떻게 하면 내가 죽을까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병아리도 키우게 하고 강아지고 키우게 하고 동물들을 통해 삶의 의지를 높였고 사람의 정을 알게 했습니다. 이렇게 이들의 삶이 하나 하나 변화가 되고, 그 변화가 큰 희망이 되어 이제는 이곳 사마리아 전체를 그들 스스로가 가꾸고 자발적으로 정리해 가고 쌀과 조금의 돈으로 생활을 해나가고, 사랑이 자라 결혼을 하고 현재는 10가구 이상의 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가정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변화하는 과정을 볼때는 그 동안의 고생이 봄 날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현재 100여명의 나환우들이 이곳 사마리아를 통해 재활훈련을 받고있으며, 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들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한 37년전 형제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고 지금 그 소망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제겐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는 형님과 함께 세계적으로 국한되어 있는 지역에서 나환우 사역을 펼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핏줄인 북한의 나환우들을 위해 사역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입니다.또한 필리핀, 베트남 등 세계적으로 나환우들을 위한 사역을 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머잖아 휴전선 너머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 올지 모른다. 그가 형님과 함께 북한의 나환우를 위해 열심히 사역중이 라는 소식이.

이새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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