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속초항서 만난 고려인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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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속초항서 만난 고려인 모녀
  • 김승력 편집위원
  • 승인 2005.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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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연해주까지 다니는 배가 있어 러시아에 출장을 갈 때면 자주 애용한다. 배삯이 항공료에 비해 4배 가까이 싸고 3등칸의 사람 냄새도 좋아 나에겐 안성마춤이다.

이번에도 유라시아 대장정 행사 준비차 연해주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배안에서 우연히 만나 말벗이 되어 주었던 30대 중반의 고려인 모녀와 함께 속초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모녀의 비자에 문제가 생겨 출입국관리소 사무실까지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그곳에는 서너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모국의 관리에게 영문도 모른 채 불려 들어와 불안한 모습으로 임시의자에 앉아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에 3개월씩 밖에 비자를 받지 못하는 고려인 동포들은 출입국을 반복하며 이런 경우를 많이 겪는다. 한국말도 서툰데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어렵게 찾은 모국에 발도 못 딛고 쫒겨 나는 수가 많아 입국할 때마다 그들이 겪는 불안감은 공포 수준에 가깝다.

며칠전 일방해고에 퇴직금도 못받고 출국 날짜만 기다리다 자살한 고려인 동포의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월세 8만원짜리 방에서 살면서 자식의 교육비라도 좀 벌어 가려던 꿈은 합법체류 마지막 날 임금체불과 강제출국 불안감 앞에 비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동포가 모국을 찾는데 3개월의 시한 밖에는 안주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가 있을까?
2004년 외국인 불법체류자 중 북미와 일본 유럽등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 불법체류자들 보다 중국 동포와 고려인 동포의 강체출국조치 비율이 20배 가까이 높다고 하니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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