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한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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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류(1)
  • 백동인
  • 승인 2005.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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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란 중국에서 “韓國流行文化”를 축약해 일컫는 말로서 러시아에서는 韓潮(Корейская волна)라고 불리고 있으며 대만을 비롯해서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국가와 베트남 등의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의 대중 문화에 열광해서 일고 있는 한국 유행, 한국 붐을 지칭함과 아울러 한국 문화 자본의 상업적 유통 형식을 총망라하는 애칭이다. 한류 현상은 원래 대만과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시작된 것으로 해당 지역에서의 한국 가수들과 영화배우에 대한 관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연예인 관광 상품이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기존의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관련 문화 정보산업 분야에서 더불어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신한류(新韓流) 현상이 이들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관련 산업의 경제적인 부수입 또한 만만치 않게 되었다.

아직 러시아에서 한류에 대한 학술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보고서나 논문 등이 전무한 상태이지만, 심심찮게 러시아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을 종합해 보면 한류는 민간의 자발적인 상업적인 노력으로 일어난 현상이라기 보다, 한국 정부가 IMF를 겪으면서 기안한 일련의 문화산업정책에 의해서 주도된 지역 문화의 자연스런 월경 현상, 즉 한류를, 미국의 세계 자본주의 전략인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용어를 빗대어 코레아나이제이션이라고 조롱하는 시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류라는 이미지의 문화상품이나 그 유통과정은 순수혈통이라기 보다 큰 자본을 등에 업고 손쉽게 들어온 잡식성의 성질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문화상품 코드가 마치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 만한 미국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유교를 그 정신적 바탕에 깔고 있는 공동체 지향의 동양문화의 요소를 적절히 가미해서 형식적 전통을 고수하되 실질적으로 미국을 모방하려는 러시아를 포함하는 범아시아 젊은이들의 감성에 쉽게 수용되게 하여 기존 할리우드 문화 자본이 차지했던 금단의 영역을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류 현상에 있어서 글로발리제이션과 같은 불순한 제국의 야심은 그 안에 전무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한류는 러시아와 아시아의 자체 문화 수요와 소비의 확산이라는 지역 경제의 활황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러시아와 아시아가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상품을 소화할 수 있는 경제적 실력과 또 이웃 국가의 문화 상품을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수용성을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일단 문화 수용국의 주체적 역량이 성숙한 것이다. 그래서 한류가 주변 국가에서 진행될수록, 한류가 제국주의의 의심을 받고 있는 아메리카나이제이션과 그것의 아류로서 역시 기세를 떨치고 있는 저패나이제이션을 역내에서 제압할 수 있는 유일의 문화자본 전략이라는 우리의 기대와 시각이 그 안에 함께 존재한다. 물론 역내 문화 시장에서의 주류는 어디까지나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 자본이라는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아직 우리 문화상품의 유통 경로는 초보 수준인 것은 확실하다. 한류는 평생 동안 장사 수완이 좋은 주인 밑에서 착실하게 일하며 월급 모으는데 만족했던 머슴이 어느 날, 주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밖으로 뛰쳐나가 가게를 차리고 주인이 평소 해 오던 그 장사 수단과 유통 경로를 따라 돈을 벌기 시작한 경우와 흡사하다. 물론 그 머슴은 이전 주인의 거래처 전부와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가운데 일부와 거래를 튼 정도의 수완을 발휘하면서 앞으로 더 큰 사업을 벌려보겠다고 성실하게 돈을 모으는 중이다.

머잖아 아메리카나이제이션과 저패나이제이션이 주도하는 문화자본의 제국화 질서에 한류, 즉 코레아나이제이션이 비판적으로 조우할 것이냐 아니면 그들로부터 신생 문화권력 정도로 역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착실한 조신을 통해서 당분간 그것의 하위 지분을 차지하는데 만족할 것이냐는 상수로서의 세계자본의 운동 방향과, 변수로서의 우리 문화와 상업의 역량에 다 함께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우리가 벌써 ‘한류‘라는 한국 대중문화의 상표를 가지고 그 바닥에서 몇 대에 걸쳐 떼 돈을 벌어오던 세계 자본의 경제논리에 부분적으로나마 맞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현재 세계경제 체제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은 제국주의라는 오해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무한대한 판로 개척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기업과 그 기업이 속한 해당 국가의 이미지 창출을 통한 마케팅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인수와 합병 형식을 통해 더욱 거대화되고 있는 매스미디어와 그 정보 이미지들은 이제 그 영향력이 상품 구매력 확대에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의 상표라도 생산 제조국이 어디냐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이것은 제조국의 이미지가 어떠한가에 따라 상품에 대한 평가나 구매 의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으로 상품 제조국의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확실히 메이드 인 코리아는 러시아내에서 한국과 한국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 한일 월드컵으로 상승된 국가이미지 제고와 최근 일기 시작한 한류 열풍에 힘입어IT를 포함하는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의 한국제품의 인기가 지난 수년간 계속 상승해 왔다. 삼성 휴대폰 단말기 에니콜은 지난 해, 러시아 시장에서23.1%의 시장 점유율로 모토로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제품은 일간 이즈베스티야와 프라우다가 4만60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바탕으로 선정되는 ‘국민 브랜드’ (Народная марка)가 되었다. 올해 러시아에서 팔리는 휴대전화 10대 중 4대는 확실하게 한국산이 될 전망이어서 러시아에 일고 있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문화적 현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2004년, 러시아 시장에서 5만686대를 팔아 전년도에 비해 무려 3.5 배나 매출액 증가를 이룩함으로써 러시아에서 도요타와 닛산, 혼다 등의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기업들을 제치고 업계 선두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LG전자 휴대전화도 최근 러시아 IT 전문지인 '마빌느이 고로트(영문명 Mobile City)' 6월호에서 "독특한 매력으로 러시아 고객들을 유혹하는" 상품으로서 특히 "경제력이 있는 러시아의 고객들이 LG전자의 프리미엄 휴대전화를 하나의 패션 코드로 인식하고 있다"며 언론으로부터 대단한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부언하고 지나가고 싶은 부분은 러시아에서의 한류는 동아시아에서 발생된 한류의 생성과정과 상이한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한류 유행이 영화, 음반, 비디오, 게임, 출판, 인쇄물, 방송프로그램, 문화재, 캐릭터, 애니메이션, 디자인, 광고, 공연, 미술품, 전통 공예품, 멀티미디어 콘텐츠, 전통의상, 전통식품 등의 문화산업 분야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 등으로부터 출발해서 기타 공산품 매출의 증가라는 공식으로 진행된 것과는 달리 러시아에서의 한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 한류는 우선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동적인 선전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삼성과 LG, 현대와 같은 한국 굴지의 기업들은 월드컵의 러시아 중계를 위해서 러시아 기준으로 보아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대신 지불하고 러시아인들에게 월드컵 전경기 중계라는 인상적인 선물을 했는데, 당시 러시아인들은 한국인들을 만날 때 마다 월드컵을 보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곧잘 하곤 했다. 월드컵 전 경기 중계는 러시아에서의 최초의 일로서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울러 매출액과 기업 순익에서 일본의 소니를 제치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거듭난 삼성전자와 LG와 같은 한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기업 홍보활동에 기인한 바 크다.

영화분야에서는 ‘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같은 김기덕 감독의 독특한 작품 몇 가지가 TV매체와 영화 상영관을 통해서 개봉되어 일부 언론과 마니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그것을 어디까지나 작품성에 관한 그들의 호감으로 그쳤을 뿐 우리가 이야기하는 의미의 한류 현상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밖에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역시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상영되어 다소간 인기를 끌기는 하였으나 중국이나 일본에서와 같이 작품 출연 연예인에 대한 열광이나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어 한국 상품 매출액의 폭발적 신장을 가져오는 결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에서의 대부분의 한류 기사들은 ‘한국 관광공사’가 해외홍보용으로 발행하는 보도내용 그대로 러시아어로 옮겨 쓴 것들로 판명되고 있다. 즉 러시아에서의 한류는, 우리 정부가 러시아를 전략적인 한류 대상 국가로 선택하고 돈과 노력을 쏟아 부은 결과에 의해서 그들이 한류라는 현상을 감성적인 동의가 아닌 객관적인 주변국가에 대한 지식의 하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연예 프로그램이나 스타 마케팅을 통한 순수한 자연발생적 한국 문화상품에 대한 이미지 개선은 적어도 러시아에서 그 파장이 미미하며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민간 기업의 사생결단식 공격적 시장개척에 의해서 한국의 국가와 상품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어쨌거나 그 동안 우리나라는 고대사를 제외하고는 주로 문화와 문물을 수입하는 국가였는데 이제 우리 문화를 다른 나라에 보급하고 영향력을 끼치게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반갑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 동안 한국 경제 위기의 본질은 상품 자체의 품질보다도 세계에 내세울만한 우리 상표나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프랑스 기소르망의 비평처럼, 우리의 위기는 세계에 내세울만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가 없었다는 문화 부재가 그 동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었다. 이제 우리도 문화, 정확히 이야기 해서 문화상품의 수출국이 되었다. 문화(문명)의 수출(보급)은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사회심리적 소득 외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부차적으로 창출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이 현대그룹이 생산하는 자동차 150만대를 판 것보다 많은 이익을 남긴다는 말을 들으면 문화산업이 얼마나 중요한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문화 수용국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의상, 생활 가전에 함께 열광한다. 한국 연예인들이 광고에 출연하는 회사의 상품은 시장에서 큰 매출 신중을 기록하고 연예인들은 평범한 티셔츠와 연예인 사진만으로도 큰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영화 「올드보이」는 해외 판매를 통해서 400만달러를,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3천억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와 약 1천 3백억원 이상의 부가가치 유발효과를 가져왔다. 컴퓨터 온라인게임 「리니지」하나 만으로2003년까지 해외에서 거두어들인 수입액은 약 500억원에 달한다. 배용준이라는 단 한 사람의 배우 이미지로 거두어들이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물론 러시아에서의 한류는 한국의 초일류 기업 이미지를 통한 한류이어서 위의 경우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러시아에서도 조만간 한국의 문화상품을 통해서 러시아인들의 감성을 흔들고 그것이 국가 이미지 개선과 상품 구입의욕의 상승으로 이어질 날도 멀지는 않다고 본다.

문화마케팅 상품은 가치에 따라 문화적, 경제적 효과가 무궁무진하며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한류 배우의 라이프 스타일이 그들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 든다. 한국의 기업과 문화 단체 등은 이들 국가와 접촉할 때 비용을 절감하며 손쉽게 마음을 끌어온다. 일반 상품과는 달리 문화는 일상 생활 자체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쉽게 한국인의 이미지를 가슴에 담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한류 현상에는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류에 대한 담론은 실제보다 부풀려 있다는 지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한류가 진행되는 해당국들로부터는 한국 문화와 연예인들이 종종 언론보도를 통해 심하게 폄하되기도 한다. 한류가 일시적인 사회문화 현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조바심도 일고 있다. 무엇보다 한류를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문화산업의 성공적 구조 정착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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