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한인학회 자료] 한족공동체와 남북통일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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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인학회 자료] 한족공동체와 남북통일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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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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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족공동체와 남북통일문제

                                 강광식(정치학,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소장)

1. 문제의 제기

   21세기에 들어와서 세계화, 정보화추세가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국민국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의와 더불어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상에 관한 논의가 빈번히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영토 밖에 살고 있는 교민집단의 중요성을 새로이 인식, 그들과의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민족공동체 개념은 특정한 지리적 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교민사회까지 두루 포괄하는 초영토적인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인터넷 등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더불어 <가상 공간> (transcendental territory)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한민족공동체의 제문제>라는 공동연구과제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분담 연구과제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민족공동체>란 물론 앞에서 언급한 넓은 의미의 민족공동체로서, 그것은 <한반도>라는 구체적인 지역 개념을 넘어서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한인사회>를 두루 포괄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이른바 <한민족네트워크공동체>라는 가상공간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추상적인 집합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고국>(father-land or mother-land) 개념을 매개로 해서만 응분의 생명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비록 <가상 공간>까지 포괄하는 초영토적 성격의 것이라 할지라도 <한반도>라는 영토적 공간에 터전을 둔 <고국>개념이 실존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는 <기댈 언덕>을 갖지 못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반도에서의 통일된 민족공동체의 형성이라는 <고국> 개념의 완결이 없이는 범세계적 차원에서 모색하는 <한민족공동체>는 응분의 기지를 갖지 못함으로써 한낱 <砂上樓閣>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한민족공동체의 형성이라는 큰 틀 속에서 남북통일문제가 지니는 의의에 주안점을 두고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탐색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우선 민족정체성의 변화를 보는 인식의 관점으로서 최근 세계화, 정보화추세에 따라 현격한 퇴조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영토국가 중심적인 공동체의 한계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고, 그러한 관련에서 미래지향적 공동체상으로서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이른바 <복합적 공동체> 개념의 현실적 함의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모색하는 한민족공동체의 전체적인 지향을 함께 포괄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미래상으로서 남·북한과 세계 도처의 한인사회가 함께 만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사회형태인  새로운 <시민사회>의 지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2. 예비적 고찰: 민족정체성의 변화를 보는 인식의 관점 및 미래지향적 민족공동체의                    지향점

   세계화, 정보화로 특징되는 현대사회의 변동은 기존의 영토국가 중심의 민족정체성이 퇴조하고 대신에 범세계적인 연대성이 강조되는 새로운 공동체적 지향이 보편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낳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되는 민족주의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홉스바움(E. J. Hobsbawm)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소멸론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민족의 단위와 국가의 단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민족국가가 약화되는 이 시점에서 민족주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경우는 특히 새로운 세계사적 전환을 가져오는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조된다.
  다음으로 민족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민족의 종족적 연원을 강조하는 스미스(A. Smith)의 입장에서 잘 파악된다. 민족주의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종족적 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를 매개하지 않더라도 민족주의는 유지될 뿐 아니라 강화된다는 주장이다.
  또한 민족주의가 변질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대표적인 학자는 기든스(A. Giddens)이다.  그는 민족의 정의에 관해서는 겔너(E. Gellner)를 따르면서도 민족주의와 민족정체성을 구별하여 민족과 국가를 일치시키려는 의미에서의 민족주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지만  인간의  <존재론적 안정>을 가져오는 민족정체성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그는 <민족정체성에 입각한 새로운 민족주의>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한 민족주의와 민족정체성을 구별하면서 민족주의를 새롭게 민주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른바 <시민사회론자>로 지칭되는 킨(J. Kean)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에 의하면, 기존의 민족주의는 민족과 국가를 일치시켰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민족정체성과 민족주의를 구별하여 세계화 시대에는 시민사회에 내재하는 다양한 정체성 중에서 어느 한가지 형태의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듯이, 이러저러한 주장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주장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와 민족정체성을 구별한다면 민족정체성은 세계화 시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적 분리 이후에도 여전히 남는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문화의 범세계적 확산추세로 인하여 민족정체성의 고유성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논쟁은 민족정체성의 침식, 강화, 변형론으로 나타난다.
  민족정체성의 침식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정보화사회의 도래가 문화적 동질화를 가져오고 그 여파로서 민족정체성이 침식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하여 민족정체성이 강화된다는 주장은 동유럽 민족주의의 부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민족적, 지역적, 특수주의적 정체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입장은 민족적 정체성은 쇠퇴하고 있지만 혼합적 양상의 새로운 정체성이 등장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는 객관적인 산물이 아니라 주체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것은 세계화시대의 민족주의의 운명에 관해서 일정한 함의를 갖는다.
  먼저,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문화의 세계화와 함께 민족문화가 동질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제3세계 민족주의의 경험에서 보여주듯이 주체의 문제를 간과한다. 민족주의가 특정한 주체에 의해 생산된다면, 세계적인 것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전통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의 문제는 특정 주체가 생산하는 민족주의 담론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세계화로 인해 민족주의가 소멸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잘못된 문제의식이다. 진정한 문제는 세계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누가, 무엇으로 규정하는가의 문제이다. 현재의 세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구성할 때, 문화적 조형물로서의 민족주의는 사라지게 되겠지만, 그것은 세계화에 대응하는 민족 내부의 다양한 주체들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규범적인 측면에서는, 민족주의가 민족정체성, 민족의 자치, 그리고 민족의 통일이라는 사회적, 정치적 질서에 관한 기본 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성 및 인권의 무시, 인종청소 등 부정적인 측면과 결합될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미스의 주장대로 민족주의는 제국의 횡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필요하고, 민족정체성은 사회통합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기능적이다. 따라서 문제는 민족주의의 핵심교의가 제공하지 않는 부분을 특정 주체가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세계화 시대에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이념이라는 주장은 세계를 지속적으로 단일화하려는 다국적 자본과 강대국의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민족주의 내지 민족정체성의 변화추세를 위와 같이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민족정체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 진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규범적으로 무조건 올바른 것도 아니며, 또한 현실의 민족정체성이 무조건 수호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 민족주의 역시 근대의 산물이고, 그후 대내외 환경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용된 것이다. <오천년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신화는 본질적으로 비과학적인 인식이다. 물론 우리 민족이 근대 유럽의 민족들과는 그 근본적 속성을 달리하는 오랜 <전근대민족>으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근대민족으로서의 형성과정이 다른 민족과 본질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민족주의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진다.
  한국 민족주의는 <저항민족주의>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주 지적되고 있거니와, 이러한 사실은 일차적으로 그것이 본질적으로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특히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한 타율적인 분단으로 인하여 민족주의가 남·북한 정권에 의해 동원이데올로기로서 왜곡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북한은 그동안 자체의 체제건설과 지배체제의 합리화를 위해 민족주의이데올로기를 동원명분으로 이용해 왔다. 예컨대, 북한은 최근 식량난과 경제난 극복을 위한 동원명분으로 <조선민족제일주의>,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민족주의 담론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리고 남한은 이른바 <IMF경제위기>를 고통분담론이라는 민족주의담론을 통해서 극복하려 했었던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한국민족주의에 있어 문제는 이러한 위기의 민족주의가 민족주의의 핵심인 <우리> 의식의 정상적인 형성을 불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가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명분으로 자주 활용되었기 때문에, 남·북한의 민족주의는 각기 <우리 없는 우리의식>으로 계속 왜곡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일한국의 장래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민족정체성은 왜곡된 역사과정을  지양, 새로운 방향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요컨대, 21세기의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우리의 민족정체성은 진정한 <우리의식>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열린, 시민적 정체성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통일한국의 장래를 내다보는 우리의 민족정체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에는 앞서 언급되었듯이 상이한 시대적 경험들이 동시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구한말 이래의 계몽주의적 국가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가 하면 탈식민적 반일감정이 중요한 영역을 점하고 있기도 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전근대적 요소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근대화를 향한 서구지향성도 녹아 있다. 그리고 특히 해방 이후에는 남·북 분단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매우 중요한 속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민족정체성에는 이른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 내재하여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의 성격 여하에 따라 다양하게 파악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남북한에 각기 구성되어 있는 독자적인 공동체이고, 두 번째는 남북한을 하나로 통합한 공동체이며, 마지막으로는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한인들의 집합체가 그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인이 현재 지니고 있는 정체성은 대체로 세 가지 차원의 상이한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각각에 따라 정치 사회적 함의를 달리한다는 사실이다. 남·북한의 분단정부와 관련해서는 체제이데올로기의 근간이 되기도 하고, 통일국가라는 미래공동체와 관련해서는 분단체제의 해체 및 극복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한반도 안에서 민족정체성은 정치공동체의 구성논리가 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생각하면 다국적 문화공동체의 원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성격을 지닌 민족정체성의 복합적 측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박명규는, <국민>·<민족>·<한인> 등 세 차원의 정체성에 내재하는 상이함에 주목하되 각 차원간의 불가분의 연관성을 또한 깊이 고려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을 동시에 포용하는 새로운 공동체적 원리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서로 이질적이면서도 동질적인 것,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초점불일치>의 민족정체성으로 인하여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탈북자들의 경우, 그들은 헌법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외국인에 준하는 존재이고 국가보안법상 임의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적성국가의 주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북한주민에 대한 법적 지위의 애매함은 실제 한민족이 처해 있는 특수하고도 다중적인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1998)이 <재외동포재단법>(1997)의 규정과 달리 중국, 일본, 러시아 거주 한인들을 지원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민족차별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한민족공동체의 민족구성원이 이제 정치적으로는 물론 법적으로도 단일한 범주로 담을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우리 지식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복합국가론>이나  <복합적 공동체론>은 미래지향적 공동체상으로서 특별히 주목되는 논의라고 생각된다. 예컨대, 백낙청은 일찍이 남북한의 상이한 체제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다국적 민족으로서의 복합적 특성을 반영하는 복합국가상을 통일의 미래상으로 제시한 바 있고, 하영선은 탈근대시대의 다양한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근대국가의 상과는 구별되는 복합국가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백영서 역시 동아시아의 국가간 체제와 민족별 존재양태를 함께 고려하면서 연방제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복합국가상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박명규는 최근 《복합적 정치공동체와 변혁의 논리》(2000), 《민족정체성과 세 차원의 공동체》(2001) 등의 논문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해서 제기한 바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논의들은 “일견 추상적이고 이상론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우리가 모색하는 한민족공동체 전체를 포괄하는 미래상이나 또는 바람직한 통일국가의 체제론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 매우 요긴한 시사점을 제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서는 특히 “에스니적 요소를 본질로 하면서도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이질적이면서도 동질적인 범주, 다양하면서도 상호연대가 가능한 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3. 남·북한 정치공동체의 기본적 성격과 통일지향적 민족공동체의 지향
  
   <남·북한 정치공동체의 기본적 성격>   민족정체성은 자연스럽게 형성, 전승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교육되고 가르쳐지며 때로는 강요되기도 한다. 민족정체성의 의도적인 구성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단위는 독자적인 정치공동체로서의 국민국가이다. 근대국가는 구성원들이 같은 정치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도록 끊임없이 개입하고 각종 상징과 문화적 활동을 기획함으로써 정체성이 강력한 민족국가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정체성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한반도에는 현실적으로 유력하게 실존하는 정치공동체가 남·북으로 분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남·북한의 두 정권은 그동안 상호불상용의 체제경쟁을 계속해 왔을 뿐 아니라 전쟁상태의 완전한 종식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채 상호 불상용의 대결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단체제 하에서 추진된 남·북한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상호 대립적인 정체성을 주입시키고 내면화하는 기능을 수행한 핵심적인 메카니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체제이념과 주체사상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북한은 일찍부터 교육의 정치적 효과에 주목, 이를 제도화하였다. <반공정신>에 투철한 <자유시민>을 키우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던 남한의 교육 역시 이러한 이념성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의 내용은 국가이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국민윤리와 같은 정치교육이 체제의 정당화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법체계는 물론이고 근대 이후의 역사해석, 특히 분단과정 이후의 역사는 더욱 이런 대립상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로서 남·북한 주민이 현재 갖고 있는 민족에 대한 의식이나 정체성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한 이념교육의 영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받음으로써 왜곡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남·북한간에는 현재 동일한 민족정체성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 공존하기 어려운 정체성의 대립구조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구나 남·북한의 정치적 정체성은 각기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중요한 특성의 하나로 하고 있다. 백낙청은 이를 “분단국민 특유의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처럼 상이한 체제가 재생산해 낸 집합적인 정체성으로서의 대립적 민족의식은 분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단체제를 재생산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상이한 범주들, 즉 남한주민, 북한주민, 그리고 재외국민 등으로 구별되어 각기 상이한 내용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상의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인의 강렬한 민족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통일의 자원으로 작용하리라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민족의식 자체가 언어나 인종의 동질성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공통된 정치적 경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거기에 국제사회의 승인이라는 조건까지 첨가되는 복합적인 것이라 할 때, 이처럼 상이한 역사적 경험의 누적은 남·북한간에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민족의식>이 회복되기만 하면 손쉽게 극복되거나 해체될 수 있는 허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공동체에 의해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교육되고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지향적 민족공동체의 지향: 개방적 시민사회상의 구현>   남북통일은 미처 이루지 못한 근대적 민족국가체제를 완성하는 일인 동시에 아래로부터 새로운 사회문화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를 체제인 동시에 생활세계로 파악하는 하버마스(J. Habermas)에 의하면, 통일은 체제의 통일과 생활세계의 통일을 모두 포함하게 된다. 그런데 체제의 통일과 생활세계의 통일은 상보적일 뿐만 아니라 대립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사실상 통합되어 있는 체제와 생활세계는 서로에 의지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상보적이게 된다. 그러나 체제의 측면에서는 생활세계와 그 주민들을 지배 및 통치하는데 주안점이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갈등 및 대립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남·북한은 그동안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하에서 체제경쟁을 해 왔기 때문에 제도와 규범, 이념과 가치 등에서 엄청난 차이와 이질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의 건설을 목표로 집단주의에 근거한 사회문화를 강조해 왔다. 남한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유·자본주의체제의 건설을 목표로 개인주의에 근거한 사회문화를 강조해 왔다. 그러므로 남·북한간에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 뿐 아니라 사회문화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생활세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최근 급속히 증가되고 있는 남·북교류로 인해 우리는 남·북의 공통성(동질성)과 차이(이질성)를 계속 확인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앞서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통일된 많은 사회에서도 차이 또는 갈등도 존재하지만 그것 때문에 반드시 분열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동질성은 통일의 기초이며 차이(이질성)는 통일의 조건이다. 동질성과 차이의 변증법적 지양은 통일의 미래상이다.  동질성과 차이가 녹아있는 삶의 공동체를 통일된 사회문화공동체라고 할 때, 우리는 최근의 시민사회론에서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시민사회상>을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남·북한이 함께 만나는 <시민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시민사회의 개념은 사람들이 사적 시민으로서 서로 상호작용을 가질 수 있고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율적으로 자기들 자신의 여러 가지 조직을 창조하는 사회생활 영역을 지칭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시민사회와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시민사회는 서로 기본적 성격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자본주의사회의 시민사회는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 바깥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의 사적 또는 자발적인 결사체로 조직되는 사회생활(비경제적, 비정치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비하여 사회주의에서의 시민사회는 현존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의 형식으로 발달하였으며, 국가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한 전체주의적인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의 모든 행위가 포함되는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개념은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체제적 구분을 초월하여 <국가로부터의 시민사회의 분리> 내지 국가에 대해 자율성을 지닌 시민사회를 민주적 질서의 중심적 특질로 여긴다는 데서 미래지향적 의미의 <새로운 사회운동>으로서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 개념은 또한 통일문제와의 관련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사회는 그 속성상 서로 다른 삶의 양식과 이념을 지닌 채 살아오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섞여 살아가게 되는 <통일>이라는 상황에 가장 적절히 대응하는 사회문화적 양식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시민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다원주의적이고 관용적인 문화이념은 남·북한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함으로써 내적 통합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사회 개념은 북한사회의 변화를 전망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함을 알 수 있다. 남한사회가 산업화와 함께 시민사회의 태동을 경험하는 동안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해 개개인이 종속적인 신민으로 이루어진 <신민사회>를 구축해 왔지만, 그러한 사태의 전개과정 하에서도 1980년대 후반기부터는 공산체제하의 동유럽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와 전체주의적 통제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행동양식이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사회내의 비공식적인 요소들이 시민사회의 맹아적 형태인 <제2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것이 직접적으로 체제저항 혹은 체제비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체제 이데올로기의 퇴조 현상에 의한 북한체제 자체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이상, 현재의 남·북한의 분단상황 하에서 시민사회 개념이 지니는 미래지향적 의미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정리해보았거니와, 그것은 또한 남·북한의 체제변화를 전제로 한 통일한국의 미래상에도 직결된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미래상은 남·북한의 현존하는 체제적 속성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공통의 지향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의 고찰에서 남·북한 두 사회가 그 질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진한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시민사회가 확대 또는 형성되는 방향으로 사회문화적 변화를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거니와, 통일한국의 장래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는 바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성숙된 시민사회>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의미의 <시민사회상>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남·북한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시민사회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곧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각기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는 <체제의 통일>을 위한 통일준비노력과 더불어 남·북한 주민이 가지고 있는 <생활세계의 통일>, 즉 사회문화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 변화의 방향을 유도·조정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하버마스가 말하기서는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체제적 차이(이질성)에 기인하는 <분단지탱요인>의 작용력이 극소화되도록 함으로써 남·북한 주민의  생활세계에서 형성·발전되기 시작한 시민사회적 요인이 활성화되도록하는 주도면밀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서두에서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세계사적 변동속에서 민족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며 바람직한 정체성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요컨대, 그것은 한마디로 열린, 시민적 정체성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가 모색하는 <열린 시민적 정체성>은 한마디로 세계시민사회에 기반을 두는 것인 동시에 한국의 시민사회에 기반을 두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한민족은 물론 외부세계의 모든 민족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함을 의미하며, 남북통일문제와의 관련에서는 그것이 남한의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북한의 시민사회까지를 모두 포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민족 전체를 포괄하는 <시민적 정체성>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가 모색하는 <열린 시민적 정체성>은 통일 이전에 우리사회가 갖추어야할 정체성이면서 동시에 통일한국의 장래를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열린 시민적 정체성>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먼저 인본주의적 전통의 재발견이다. 아시아적 가치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근대화와 식민지화, 그리고 오랜 권위주의적 통치 하에서 우리는 인본주의가 서구의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오랜 인본주의적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서구에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는 인권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이 가치는 열린 시민적 정체성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둘째, 자율적 개인의 확립이다. 한국사회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는 공=국가=옳바른 것, 사=개인=잘못된 것이라는 이항대립을 대중들에게 강요했다. 과거 권위주의적 국가는 이러한 이항대립을 통해 시민사회를 통제했으나 부정부패의 만연에서 볼 수 있듯이 '무책임의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책임지는 관료, 책임지는 시민이 부재한 것은 자율적 개인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율적 개인의 확립은 단순히 서구 근대의 개인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근대적 이성에 입각한 개인은 해방적 이성보다는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 의해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자율적 이성이란 서구 근대의 해방적 이성의 구성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전통속에 있는 선비정신의 핵심인 자기규율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자에 의한 강제에 아니라 자기규율에 입각한 새로운 자율적 개인의 확립이야 말로 21세기에 요청되는 한국인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양성과 토론이 함께 갈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가치관이다.
   세째, 참여민주주의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지만, 사회의 복잡성의 증가로 인해 참여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접근해 가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우리 나라의 지난한 민주화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며, 대의 민주주의가 확립된 서구에서 나타난 신사회운동 역시 그것을 보여준다. 특히 신사회운동은 투표라는 소극적인 참여만이 아니라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영역에서의 시민의 자기결정을 주장함으로써 시민을 정부의 수혜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확립하고자 하였다. 참여민주주의 가치관은 시민들이 정부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는 21세기 한국사회를 새롭게 건설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네째, 탈물질적 가치관의 확립이다. 탈물질적 가치관이란 원래 서구의 신사회운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개념이다. 서구에서 물질적 풍요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가치들을 설명하기 위한 탈물질적 가치는 여러 가지 정체성운동, 환경운동을 포괄하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서구적 맥락에 더하여 한국사회에서 탈물질적 가치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사회에서 성장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병리현상은 환경위기만이 아니라 서구보다 심한 물질만능주의를 만들었고, 모든 것은 경제적 이해에 의해 판단되는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따라서 탈물질주의는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임과 동시에 한국적 근대가 만들어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치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연대의식이다. 근대사회가 형성되면서 산업화와 동시화로 인해 혈연, 지연 등의 원초적 관계에 기반한 전통적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서구사회는 이러한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를 시민공동체를 통해 해결해왔으나 관료제의 심화로 인해 시민공동체가 와해되는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가치가 연대의식이다. 그러나 연대의식은 서구에만 기원을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사회는 상부상조의 정신과 같이 지켜야할 훌륭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급속한 산업화로 와해되면서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기형적인 연고주의로 변형되어, 시민사회의 윤리로 재창조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연대의식은 21세기에 새롭게 요구되는 가치이면서도 우리에게 내재한 가치인 것이다.
   여섯째, 민족통합의식이다. 통일을 체계통합과 사회통합으로 구별한다면 독일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체계통합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 사회통합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나 냉전시기동안의 극단적인 남·북한 대립은 상호이해를 추구하기 보다는 상호적대를 추구했다. 따라서 현 시기 민족통일에 대한 관심은 높을 지언정 민족통합의식은 사실상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통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통일이후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민족통합의식을 가진 한국인상의 정립이 요청된다.     일곱째, 세계시민의식이다. 세계화는 이제 세계를 말 그대로 세계를 지구촌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세계화 현상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노력은 주로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에 머무름으로써 오히려 폐쇄적, 공격적인 성격을 띠게되었다. 세계화시대에 세계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교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을 해나가야만 한다. 특히 세계사적 문제에 대한 연대책임의식은 세계시민으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중요한 것이다.

4. 맺는 말

   한반도의 분단은 민족사적 비극인 동시에 세계사적 현상이어서, 안에서 볼 때는 민족분열이지만 바깥에서 볼 때는 두 개의 정치공동체 간의 총체적 대립과 갈등을 반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북한의 통일과정은 장차 이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정치공동체가 발전할 것인지를 선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것이 현행 국민국가체제를 근간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개별국가주의의 강화로 나타날 수도 있고, 이와는 달리 대내외적인 변혁을 통해 새로운 관계와 연대가 확산되는 가운데 새로운 형식의 정치공동체가 등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은 후자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단체제 하에서 이질화된 남·북한의 수많은 차이들에 대한 억압과 무시가 강요될 것임이며,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그 자체가 새로운 긴장과 대립의 소인이 될 수도 있다.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할 수 있고, 다양한 연대가 가능하며, 보편적 인간성에 근거한 자연스런 정체성과 결속이 허용되는 민족공동체, 유연한 경계와 분산된 권력구조, 그리고 다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결합의 망을 통해서 형성되는 <개방적 시민사회>가 그 공동체의 내용이 되는 통일한국의 미래상만이 대내적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평화질서를 기약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단순히 남·북한 지역정부를 유지하면서 상위의 단일국가를 이루자는 <1국가 2체제론> 내지 연방제안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나아가 그것은 내부적으로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지역의 역내질서에서 복합적 정치공동체의 출현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비전과 관련하여 한국사회를 <개방적 시민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내부적 과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유인하는 실천적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의 장래를 내다보는 <비전과 실천>의 지향점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통일한국의 민족정체성이 갖는 함의를 되새겨보기로 한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민족정체성은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한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고 통일된 민족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강력한 자원이자 사회통합의 원리이다. 그러나 강력한 민족정체성은 언제나 타민족과의 구별의식을 강화시키며 종종 보편주의적 연대를 가로막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주체들의 정체성을 억압하는 역기능을 보여줄 수가 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배타적이라거나 또는 자민족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소지가 있다.
   이 문제는 또한 정치공동체에의 귀속과 문화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소수 집단에 대하여 어떤 사회적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에 관한 복합적이고 국제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가의 소수 인종정책과 맞물려 있으며, 점증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성과도 연결된다. 이 점에서도 남·북한 주민을 포함한 전 세계적 한인들의 공동체적 사고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인권의 실현을 향한 공동의 연대를 요청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과 역내 평화질서를 동시적으로 열어가는 주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끝>

※이 논문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2002년도 연구과제로 수행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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