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종교와 민족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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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종교와 민족풍속
  • 양원식
  • 승인 2005.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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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원식 고려일보 부주필 작가
1990~1992년경에 한국과 미국에서 기독교 한인목사,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지금 카자흐스탄 구 수도 알마티에만 무려 40여개의 기독교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 교회들은 하느님의 복음을 전할뿐 아니라 현지인들을 위한 자선사업, 한국어 교육, 고려인 모국방문 등 좋은 사업을 많이 하고있다.

그런데 일부 한국인목사, 선교사들의 설교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다.
구소련의 고려인사회는 망명 원동한인 제2~4세로 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함경도 방언이나마 남아 있고 민족성도 있는 제2세마저도 이젠 70세 이상된, 얼마 남지 않은 고령자들이다. 제2세대부터 벌써 시작된 동화작용은 제3세부터는 뚜렷해졌다.
 

민족성의 기본인 민족언어가 없어지고 그에 따른 사고방식, 생활양식도 전혀 달라졌으니 얼굴생김새만 남고 나머지는 한인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가운데 한가지 기특한 현상은 음식문화와 먼 조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풍속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장례식과 그 후의 제사와 관련된 예식에서 민족 풍속의 요소가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다.

예를 들어 초상이 나면 명정을 반드시 한문으로 쓰는 풍속이다. 그외에도 장례식 직후의 제사, 3일제, 돌제사, 2년, 3년 제사를 반드시 치르고 그후에는 한식, 청명날과 추석날에는 반드시 묘지를 찾아가곤 한다.

그런데 일부 목사, 선교사들은 죽은 사람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술 올리고 절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니 그러지 말라고 설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의 견지에서 아래와 같은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필자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한 친구가 숨져 그 초상집을 찾았다.


여기서도 누가 초상집을 찾아오면 여자들은 곡을 하고 손님은 제사상위에 부조를 내놓고는 술을 붓고 절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친구 초상집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없었다. 고인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후에 알고보니 고인의 친누이가 신자였는데 그녀가 이런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그대신 목사를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 장례를 마친 후에도 제사도 치르지 않았고 제사음식과 술대접도 없었다.


만일 이런 일이 한두번 이라면 문젯거리로 삼을 필요가 없지만 일반화 가능성이 확실히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지? 기독교가 사회주의이념에 젖은 현지인들의 의식개조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좋은 풍속에 수정을 가할 필요까지 있는지? 필자는 ‘좋은 풍속’이라고 의식적으로 강조해 말했다.  이런 저런 민족, 종족, 사회그룹의 풍습, 전통은 그 자체가 수천년을 거쳐 내려오면서 자연히 정정되어오면서 낡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없어지고 좋은 것, 진보적인 것만 보존되어 왔다.

풍속, 전통보존 문제는 모국 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보다 해외에 나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절박하다고 본다.

더구나 언어가 거의 다 없어져 가고 생활양식, 사고방식마저 전혀 달라지고 있는 여기에서 민족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옛풍속 마저 없어져야 하는지? 우리 조상들의 장례예식 풍속은 그것이 아무리 낡은 것일지라도 부모를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모시고 싶어 묘지를 일정한 날 찾아가고 죽은 직후에는 다만 3년이라도 산 사람처럼 대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도리이다.


이런 좋은 풍습, 전통이었기 때문에 얼굴생김과 한글자 성만, 그것도 남의 문자로 표기된 성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이 풍속만은 소중히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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